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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비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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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톤(인돈,린튼)과 인사례 인톤(인돈,린튼)과 인사례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대받은 윌리엄 린튼(한국명 인돈 1891~1960) 선교사는 한남대 설립자로서 근대 한국사회에 큰 기여를 했으나, 널리 알려진 언더우드 선교사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아는 사람들이 적다. 특히 린튼 선교사는 한국의 독립을 위해 앞장선 대표적 선교사이다. 그의 특별한 한국사랑은 후손들에게로 이어져 4대(代)에 걸쳐 한국에서 봉사하고 선교하며 한국 땅에 뼈를 묻은 후손들도 있다.100년 가까이 이어진 린튼 가문과 한국과의 첫 인연은 바로 애족장이 추서된 윌리엄 린튼 목사가 1912년 대학을 갓 졸업한 21세의 나이에 미국 남 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발을 디디면서 시작됐다. 그는 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48년 동안 호남과 충청 지역에서 선교 및 교..
다가정
황학문 암각서 황학문 암각서1712년(숙종 38년)임진년에 전주부 내의 유지들이 강무(講武:조선시대 임금과 신하, 백성들이 함께 사냥하며 무예를 닦는 일)를 위하여 다가교 서쪽 기슭에 4칸의 정자를 짓고, 과녁을 북서쪽 황학대(黃鶴臺:현 신흥학교)에 세우고 천양정이라 명하였다. 이곳 황학대는 신흥학교 본 건물 뒤에 있는 터로, 학교 뒷 건물로 들어가면 황학대를 알리는 황학문(黃鶴門)이라는 암각서가 있다. 그러나 9년 뒤에 홍수를 만나 천양정이 모두 유실되는 아픔을 겪는다.이후 1722년에 전주부 무인 김삼민 등 4인이 발기하고, 유지들의 협조로 다가산 아래 다가정을 김삼민의 소유로 짓게 된다. 그래서 다가정은 천양정의 정신을 이었다고 보는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1830년 다시 사정을 만들 때 전주의 부노들은 당연히 옛..
진환의 할아버지 진휴년 진환의 할아버지 진휴년'삼시세끼’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연예인들이 외딴 시골 마을에 정착해 자급자족하며 하루 세끼를 해결하는 예능. 전북 ‘고창편’이 기억에 남는다. 오리 농법으로 벼농사를 짓고, 고구마를 캐고, 바닷가에서 조개도 잡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한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예부터 고창은 그런 곳이었다. 산과 들과 물이 좋아 사람 살기 좋은 곳. 바다가 가까워 소식도 물자도 빠르게 유입되는 곳. 인물도 많이 났다. 전봉준, 인촌 김성수, 미당 서정주가 다 고창 사람이다.화가도 있었다. 진환(본명 진기용·1913~1951)이다. 지금은 거의 잊혀졌지만, 1930~40년대 진환은 상당히 촉망받는 화가였다. 동갑내기 이쾌대가 가장 의지했던 친구였고, 세 살 어린 이중섭에게 미..
고창 봉황새가 깃드는 '봉강(鳳崗)'과 오락 TV 프로 '삼시세끼' 고창 봉황새가 깃드는  '봉강(鳳崗)'과 오락 TV 프로 '삼시세끼' '삼시세끼'라는 오락TV 프로로 유명해진 상하면 송곡리 여양진 씨 종가인 진동규 시인 집마당(전북 고창군 상하면 송곡리 108)에 봉황새가 깃들 언덕 봉강(鳳崗)이란 표지석이 있다. 집 앞 고갯마루가 봉황새가 날아온다는 비봉재다. 봉강 집안에서 무장초교, 영선중고교를 설립하고, 후손 진환이 홍익대 미대를 창설한 것도 봉황같은 인재양성의 뜻을 실천한 것이다.여양진씨 진환의 조부 진휴년은 1892년 무장읍성 북서쪽 송림산 기슭 비봉포란형 명당에 집을 짓고 '봉황새 언덕 봉강(鳳崗)"이란 당호를 걸고 인재양성을 실천한다. 이 집이 몆해전 오락프로 삼시세끼 고창편 방송으로 유명세를 탄 상하면 송림리 진동규 시인의 집이다.전주예총회장, 한국문인..
익산역, 4·19학생 의거 기념탑 4·19학생 의거 기념탑익산역 광장에 ‘4·19 학생 의거 기념탑’이 1963년 최초 세워졌다. 이 기념탑은 4·19로 숨지거나 다친 국민을 추모하기 위하여 전국 최초로 건립되었다. 기념탑 구조물은 원광대학교 배형식 교수가 제작하였고, 글씨는 익산 출신 고재봉 서예가가 썼다. 기념탑에는 한자로 ‘四一九學生義擧紀念塔’이라 새겨있고 다른 기념문은 없다. 매우 간단명료하다.4·19학생 의거의 공식 명칭은 4·19혁명이다. 1960년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거한 2·28 학생민주 의거와 3·15 부정선거 시위가 1960년 4월에 전국으로 확산하였다.
"구름이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의 운서정(雲棲亭) 과 조기석 ​임실 '雲棲亭'과 '嘉貞門' 편액은 심농(心農) 조기석(趙沂錫, 1876~1957)의 글씨이다. 조기석은 전북 김제 사람으로 당호는 담원당(澹遠堂)이며 벽하(碧下) 조주승(趙周昇, 1854~1903)의 장남으로 아버지의 서화를 이어받아 묵죽에 능하였고, 글씨에도 뛰어났다. 이 운서정 편액 외에도 전주 덕진공원 취향정(醉香亭), 백양사 운문암(雲門庵), 전주 청학루(靑鶴樓) 등의 편액 등을 썼다. 구이면(九耳面 ) 구암마을 지명유래 - 전북 완주군 구이면 이 마을에는 1920년경 물레방앗간이 있었고 바로 옆에는 육당 최남선이 심춘순례를 하면서 들른 집이 있으니 바로 심농 조기석의 집이다. 조기석은 덕진연못에 있는 취향정 편액을 쓴 서화가다. 최남선은 모악산 등정을 위해 전주 꽃밭정이를 거쳐 문정리를 지나..
송사지관, 모양지관 고창 유학자 정익환 글씨 모양지관, 송사지관, 무장향교 동무 ㆍ서무 현판이 전 무장향교 전교, 고창예총 초대회장을 역임하고 덕헌문고 2책을 지으신 유학자 서화가 德軒 鄭益煥 선생 글씨다. 선생께서는 유학자의 겸양으로 낙관을 꺼렸다. 모양성 공북루 현판을 쓰신 창암 이삼만 명필도 이름을 숨겼듯. 무장향교의 동재 서재 현액엔 글씨 쓴 이가 무장사람 아무개(松沙逸民)라고 숨겨져 있다. 전북유도회 본부장과 초대 고창예총회장을 역임헌 덕헌(德軒) 정익환 선생 작품이란다. 조상을 섬기고 훌륭한 선조를 본받는 일은 후손이 마땅히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