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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세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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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비사벌 초사가 기로岐路에 서 있다.<신정일님의 글> 시인의 집 비사벌 초사가 기로岐路에 서 있다. 삶이 고달프고, 절망스러웠던 시절, 가끔씩 읊조렸던 시가 있었다. 신석정 시인의라는 시였다.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라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나의 거룩한 일과이거니,“ 전북 부안이 고향인 신석정 시인은 나와 성이 같은 매울 신辛, 창녕의 영산신씨와 영월 신씨, 그래서 신라면 신씨이다. 를 비롯한 수많은 주옥같은 시를 남긴 신석정 시인이 고향인 부안을 떠나 제 2의 고향으로 여기고 살다가 작고한 곳이 전주시 남노송동이다. 일제와 독재에 항거하면서 라는 시를 남긴 신석정 선생이 1954년 전주고에 교편을 잡으면서 정착했던 자택이 비사벌초사比斯伐艸舍이다. 신석정 시인은 전..
진동규, <댁 건너 대수리를 잡습니다> 서울에서 삼례거쳐 전주.남원. 함양. 산청. 진주. 고성지나 통영으로 이어지던 길이 조선시대 옛길 통영대로였다. 전주에서 전주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서방바위. 각시바위가 있고 색장동을 지난 모롱이 벼랑에 어사 조 아무개. 관찰사 아무개들의 영세불망비가 새겨져 있다. 그들의 후손이 있긴 있을 것인데 아무도 알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서 그랬는지 푸른 달개비 꽃이 스스로 꽃다발이 되어 바람에 하늘 거리고 진동규 시인의 시 한편이 강물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진동규 시인 “살던 집은 텃자리까지 파버렸습니다. 그 이웃까지 뒤집어 파서 앞내 끌어 휘돌아 가게 하였습니다. 깊고 깊은 소를 만들어버렸지만 그때 그 집 주인이 반역했다고, 그래서 전주천 물이 거꾸로 흐른다고, 북으로 흐른다고 소문내고 그런 속셈을 알 만한 사..
가람 이병기의 덕진호반 전주의 변천사와 덕진연못 예로부터 전주를 일컬어 ‘맛과, 멋의 도시’ 라고 일컫는다. 오랜 전통 속에 풍류가 흐르는 도시, 그래서 나라 안에서도 독특한 도시로 자리매김 되고 있는 도시 전주가 근대화의 과정에서 발전의 기회를 놓쳤다. 그래서 더 이상 큰 도시로 비약하지 못한 원인이 가람 이병기의 이라는 글에 담겨 있다. 덕진은 완산팔경의 하나요, 이씨 태조의 선산인 건지산의 한 방축지防築趾로서 옛날부터 명승지였으나 전주시와는 약간 거리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때로 유람객들이 찾아올 뿐이었고, 제법 이렇다 할 만 한 아무런 시절이 없었던 곳이었다. 호남철도를 처음 놓으려 할 때 덕진으로서 오목대梧木臺 뒤로 그 선을 계획하였던 바, 그때 전주의 가장 우지였던 박기순朴基淳 또는 모모某某하는 전주의 명사 수십여 ..
외로운 나그네는 그림자와 동행한다. “나아가고 물러설 때 나를 따르지만 너를 공손타 할 수는 없고 나를 몹시 닮았어도 너는 나의 실상은 아니다. 달이 비끼매 언덕 쪽에 괴수와 같은 형상에 놀라고 대낮 뜰 안에서는 난장이 모습 같아 우습다. 침상에 누어 찾아보면 찾을 수 없다가도 등불 앞에서 되돌아보면 문득 서로 만..
죽는다는 것은 쉰다는 것이다 자공子貢은 학문에 싫증을 느꼈다. 그래서 공자에게 털어놓았다. “좀 쉬고 싶습니다.” 공자는 자공의 말을 일축했다. “쉬다니, 인생에는 휴식이 없는 법이야.” “그러면 저는 쉴 수도 없는 것입니까?” “아닐세, 저기에 있지, 저 무덤을 보게, 높고 가지런하고, 언덕과 같고, 엎어놓..
가장 중요한 것은 느림이다. 나를 비롯한 일부 사람들은 겨울이라고 답사를 나서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겨울 도보답사를 꺼리는 모양이다. 그래서 말은 동안거冬安居라는 표현으로 집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집에 있으면서도 길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때가 많을 것이다. 눈 내리고 미끄럽고,..
사람의 마음은 계속 변화한다. 이천 선생이 말하기를, ‘사람의 마음은 대부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다. 그를 사랑하면 다만 그의 잘된 것만 보게 되며, 그를 미워하면 그의 잘못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처자妻子의 말이 비록 잘못이라도 따를 것이고, 미워..
고칠 수 없는 여섯 가지 병 병원에 가서 조금만 있으면 금세 나 자신도 환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저마다 다른 병으로 입원해 있는데, 그 병에 따라 치료를 하는 의사들도 결국 언젠가는 다 환자가 될 것이고, 나 역시 어느 날엔가는 환자복을 입고 돌아갈 날을 기다릴 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머리가 지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