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환의 할아버지 진휴년
'삼시세끼’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연예인들이 외딴 시골 마을에 정착해 자급자족하며 하루 세끼를 해결하는 예능. 전북 ‘고창편’이 기억에 남는다. 오리 농법으로 벼농사를 짓고, 고구마를 캐고, 바닷가에서 조개도 잡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한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예부터 고창은 그런 곳이었다. 산과 들과 물이 좋아 사람 살기 좋은 곳. 바다가 가까워 소식도 물자도 빠르게 유입되는 곳. 인물도 많이 났다. 전봉준, 인촌 김성수, 미당 서정주가 다 고창 사람이다.
화가도 있었다. 진환(본명 진기용·1913~1951)이다. 지금은 거의 잊혀졌지만, 1930~40년대 진환은 상당히 촉망받는 화가였다. 동갑내기 이쾌대가 가장 의지했던 친구였고, 세 살 어린 이중섭에게 미술적 영감을 물려준 선배였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미술전’에서 당당히 입상해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한국 근대미술사의 쟁쟁한 이름들이 세간에서 잊혀지고 있는 것이 당연시되는 요즘이지만, 진환이 그리된 것은 매우 안타깝다. 짧지만 빛났던 그의 생애를 이야기하려 한다.
◇봉강집 후손
진환은 고창군 무장면에서 1남 5녀 중 독자(獨子)로 태어났다. 태어난 집은 무장읍성의 남문 ‘진무루’ 근처였다. 진무루는 전봉준이 동학혁명을 처음 일으켜 포고문을 발표한 장소로 유명하다. 전봉준과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 바로 진환의 할아버지 진휴년이었다. 그는 동학의 소용돌이를 직접 목도하면서, 교육만이 나라를 구할 유일한 방책이라 여겼다. 그는 1892년 가학(家學)을 위해 ‘봉강(鳳崗)’을 세웠다가 곧 호남 최초의 사립 ‘동명학교’를 설립했다. 1909년 개교한 무장보통학교의 전신이다. 재밌는 점은 동명학교의 산실이 된 ‘봉강집’이 바로 ‘삼시세끼’ 고창편을 촬영한 그 집이라는 사실. 계속 리모델링을 거쳤겠지만, 이 집은 여전히 여양진씨 집안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현재 진환의 조카 짐동규시인이 관리하는 집이다.
‘흥학구국(興學救國)’을 추구한 진휴년의 뜻에 따라, 진환 일가 중에는 교육자와 독립운동가가 많았다. 진환의 아버지 진우곤은 무장면의 첫 중등교육기관인 무장농업중학교를 설립했다.
진환이 고창고보를 다닐 때 그의 후견인이던 조고모부 은규선은 고창청년회를 이끈 독립운동가였다. 1930년 전후 고창고보 학생이던 진환이 서정주와 함께 교내 독서회 비밀결사 단원이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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