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쉽죠 (192) 썸네일형 리스트형 수중고고학의 명칭문제 순수한 한국어로 표기 한다면 수하(水下)가 아니라 물밑이겠지요. 나라마다 수중(水中), 수저(水底), 수하(水下), 해양(海洋), 해저(海底) 등으로 다양한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나, 같은 내용입니다. 물밑고고학은 바다는 물론 강이나 호수, 습지의 조사도 수중고고학이라고 하므로, 해양고고학이라고 한.. 해시계를 보는 법은 . 앙부일구란 앙부일구는 조선시대에 사용한 해시계로 그림자가 비치는 면이 가마솥과 같은 반구형으로 되어있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동지에서 하지에 이르는 24절기를 13선의 위선으로 나타내어 절기를 알게 하였으며 수직으로 시각선을 그었고 영침은 북쪽을 향해 꽂았다. 특히 글을 모르는 백성.. 대한문의 명칭은 대한문의 원래 명칭은 대안문(大安門)으로 1904년(광무 8) 경운궁 화재시 피해를 입지는 않았습니다. 경운궁 중건이 거의 마무리되는 1906년(광무 10) 4월 12일 대안문의 수리를 시역(始役)하고 그 명칭을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쳤습니다. 이어 4월 24일에는 상량(上樑)을 하고 현판(懸板)을 걸었습니다. 대안.. 정치사상, 과학기술, 문화와 예술이 녹여 낸 자격루 보루각기」속의 자격루가 573년 만에 그 진면목을 우리 앞에 드러냈다. 1980년대 초반에 「보루각기」 번역으로 시작된 작은 출발이 한국과학재단과 과학기술부의 연구ㆍ개발비 지원으로 이어져 그 모델이 개발되고, 이어 문화재청의 복원 설계ㆍ제작 사업으로 그 웅자가 드러났다. 이번 복원사업은 .. 전통 달력, 그 숨겨진 과학성에 대해 우리가 쓰는 달력에는 음력과 양력이 있다. 전통적인 역법인 음력陰曆이란 달의 운동을 기준삼아 날짜 가는 것이 정해지고, 양력陽曆은 달의 운동은 무시한 채 해太陽의 운동만으로 날짜를 계산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성을 따지자면, 양력보다는 우리의 음력이 보다 월등하다. 전통 달력에 쓰.. 경복궁은 왜 오랫동안 페허로 있었나 5 경복궁은 왜 오랫동안 폐허로 있었나? 임진왜란(1592)이 일어나면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모든 궁궐이 불에 타버렸어요. 선조 임금님은 임시로 지금의 덕수궁에서 머물렀는데, 궁궐을 다시 지을 때 경복궁은 짓지 못하였습니다. 규모가 커서 재료와 인력을 동원하기 어렵다는 이유와 자리가 좋.. 청와대 자리도 원래 경복궁이었다는데 사실인가? 청와대 자리도 원래 경복궁이었다는데 사실인가? 지금의 청와대 자리는 옛날에 경복궁 후원이 있던 자리입니다. 북쪽 문인 신무문 뒤로 후원이 있었는데 후원에서는 왕과 신하들이 활쏘기를 하거나 나라의 인재를 뽑는 과거시험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남산에 있던 총독부를 경복궁으.. 경복궁의 처음 모습은 어땠을까? 그리고, 지금과 무엇이 다를까? 처음에 경복궁 담장 안에 만들었던 건물이 약 780여 칸 정도라고 합니다. 경복궁 안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건물들이 점점 늘어나게 됩니다. 경회루, 교태전 등이 추가로 지어진 건물들이죠.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지 270여년 뒤인 고종 임금님 때 다시 지어집니다. 이 때는 330동 7,200칸 정도 되었답니다. .. 이전 1 2 3 4 5 6 7 ··· 2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