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작가의 이름과 호 탐구
하반영(河畔影), ‘냇가 논 반마지기에 어룽거리는 그림자’
'동양의 피카소' 하반영(河畔影, 1918~2015)화백의 서화 작품을 연중 전시하는 공간이 전주에 생겼다. 최근들어 전주 영화의거리 인근 전주 관광호텔 건너편에 문을 연 '하반영미술관(이룸 카페 갤러리)' 은 80평의 공간에 자리한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하반영화백의 원래 이름은 김구풍이란다. ‘하반영’은 ‘냇가 논 반마지기에 어룽거리는 그림자’(河畔影)라는 뜻이다. 원래 부모는 만석꾼 부자였으나 집을 나온 나는 가난한 화가의 길을 걷고 있으니 이 이름이 잘 어울린다 싶어 그렇게 지었단다.
토림(土林) 김종현
'토림(土林)'은 하늘로 치솟은 흙기둥들이 마치 숲을 이룬 것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읍출신 토림 김종현(金鍾賢. 1912-1999)은 처음엔 다양하게 산수, 영모, 화조, 인물 등을 잘 그렸다.
후에 산수설경이 널리 알려지면서 심향 박승무 이후 설경을 제일 잘 그리는 화가로 한국 화단에 큰 획을 그은 작가로 평가를 받았다.
벽천(碧川) 나상목
벽천 나상목(碧川 羅相沐 1924-1999)은 1924년 6월 6일 김제시 용동 316번지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본관은 나주 이다. 김제는 예부터 많은 선비나 서예가를 배출한 고장으로 유명하며 고조부와 조부도 한학을 한 선비 집안이다.
'벽천(碧川)'의 아호는 김제의 옛 이름인 벽성의 ‘碧’자와 조부의 아호인 우천의 ‘川’자를 따서 (벽천이라는 아호를) 할아버지로부터 받게 된다.
‘벽(碧)’의 의미는 ‘벽산(碧山, 푸른 산)’이나 ‘벽성(碧城, 신선이 산다는 성)’ 등이 될 수 있는데, ‘벽산’ 정도로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석전(石田) 황욱
고창출신 서예가 석전(石田) 황욱(1898∼1993)은 붓을 움켜쥐고 쓰는 악필(握筆)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서예를 공부한 뒤 담담한 듯 단아한 서풍을 선보여온 그는 수전증으로 붓을 잡는 게 어려워지자 악필법을 개발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석전(石田)'은 '석전경우(石田耕牛)'의 의미가 아닐까. 거친 돌밭을 갈아나가는(耕) 소(牛)처럼 묵묵히 강한 인내심과 의지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목표를 달성해 나간다는 의미이다.
완주군 삼례읍 석전리의 '석전'이라는 지명은 돌밭이 많아서 '석전(石田)'이라고 한다.
현림(玄林) 정승섭
우리 시대 최고의 수묵화 거장 현림(玄林) 정승섭(鄭承燮)화백이 2024년 11월 26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현림(玄林)은 '깊은 숲'이라는 호이다. '검을 현' 자는 불투명한 검은색이 아니라 우주처럼 깊은 빛깔을 뜻한다. '천지현황(天地玄黃)'은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 하늘은 위에 있어 그 빛이 검고 땅은 아래 있어서 그 빛이 누렇다는 뜻이다.
주흥사(周興嗣)의 '천자문(千字文)'은 4언(四言) 250구의 총 1,000글자로 이루어진 장시(長詩)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천지현황은 그 첫 번째 구절이다.
'천'은 '현'과 상응하고, '지'는 '황'과 상응하여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천지현황은 뒷 구절의 우주홍황(宇宙洪荒:하늘과 땅 사이는 넓고 커서 끝이 없다)과 연결되어 천지와 우주의 광대무변함을 나타낸다. 이는 고대 중국뿐 아니라 동양의 우주관을 함축하여 드러낸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강암(剛菴) 송성용 선생
전주시 강암서예관과 전 송하진 전북도지사의 부친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1913~1999년) 선생이 살았던 ‘아석재(我石齋, 전주 천동로72)'가 있다.
김제시 백산면에서 태어난 선생은 1965년 이곳 ‘아석재’에 터를 잡고 35년 동안 거처하면서 서예술의 꽃을 피웠다.
'아석재'는 ‘물과 돌이 있는 데서 유연하게 살리라’라는 뜻을 담고 있는 주자의 시구절 ‘거연아천석(居然我泉石)’에서 유래한다.
거문고 켜고 책 읽은지 사 십년에
거의 산중 사람 되었네
하루는 띠풀집 지어져
나의 산수에 고요히 서 있네
琴書四十年
幾作山中客
一日茅棟成
居然我泉石
[朱子全書,卷66, 武夷精舍 雜詠(무이정사 잡영)]
'아석재'는 선생을 위해 친구들이 마련해준 집이다. 이 글씨는 소전 손재형이 썼으며, 남취헌은 일중 김충현이 썼다.
별반 특별해 보이지 않는 소박한 한옥일 뿐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콘텐츠가 무궁무진하다. 현판은 추사 김정희 선생을 비롯한 당대의 대가가 휘호한 것이고, 집 안 곳곳에는 평생 상투와 한복을 입고 고집스럽게 전통을 고수하고 산 선생의 지조가 어려 있다.
강암은 일제가 막 이씨 조선을 병탄해 국가와 민족이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져 있던 1913년 7월 9일 김제군 백산면 상정리 요교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병약했던 그는 '신체적으로 굳건하여라(剛菴)'는 뜻에서 아버지 유재 송기면(裕齋 宋基冕,1882-1956) 선생으로부터 호를 강암으로 부여받았다고 한다.
고하(古河) 최승범
시인이자 수필가인 고하(古河) 최승범(崔勝範, 1931-2023)은 전북의 정신적 어른의 역할을 충실하게 담당해온 한국문학계의 산증인이었다.
그는 1931년 6월 24일 남원군에서 출생, 초등학교 입학 전 할아버지로부터 ‘추구’를 배웠고, 할머니로부터 고전 소설을 듣고 자랐다.
남원농업학교에 가기 전 순창공립농업학교(1951년부터 순창농림고)에 다녔다.
고모의 도움으로 남원농고에서 학업을 이어갔으며, 1949년 명륜대학(전북대 전신)에 입학했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대전에서 복무한 후, 전북대에 복학, 가람 이병기선생을 모시고 학업에 열중했다. 1954년 전북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전북대학교 상장 제1호로 총장상을 받았다. 1953년 전북대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학부 때부터 기자로 일해온 대학신문사 편집주임을 맡았다.
신석정 시인의 맏사위이기도한 그는 “이제 전북을 위해 무엇을 한다기 보다는, 앞으로 후배 문인들에게 무엇인가를 물려줄 수 있는 자산을 생각할 때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의 살아생전 이종근 작가에게 호는 장인이 지어줬는데 감히 뜻과 이유를 물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다만 강의 옛말 ‘가람’(스승 가람 이병기)과 목가시인 ‘석정’(夕汀, 장인 신석정)을 아우르는 ‘고하’(古河)라고 추정할 뿐이라고 말했다. 고하는 '저녁 물가’를 의미한다.
원로 서예가 산민(山民) 이용
이용 선생의 호는 원래 '삼민(三民)'이었다. '농민(聾民)', '맹민(盲民)', '아민(啞民)'. 70년대 신산했던 시절, 귀가 있어도 듣지 않고 눈이 있어도 보지 않으며 입이 있어도 말하지 싶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 무렵 찾아간 강암 송성용 선생은 그에게 "그러지 말라"는 말과 함께 '삼'자를 '산'자로 바꿔주었다. 그 때부터 그는 '산민(山民)'이 됐다.
취석 송하진
서예가로 지난해 본격 데뷔한 송하진 전북도지사의 호는 '취석(翠石)'이다.
행정고시(24회) 출신인 송 전 지사는 2022년 6월 전북도지사를 끝으로 40여년의 공직 생활을 마무리한 뒤 서예가의 인생을 시작했다.
아호는 푸른 돌이란 의미의 '취석(翠石)'이다.
이는 양홍정(楊弘貞)이 백락천(白樂天)에게 푸른 돌 셋을 선사한 데 비롯된다.
이는 지금도 날마다 새롭다는 의미다. 그래서 끊임없는 생각의 원천이 된다. 생각은 순간이고 기억은 짧아져가니, 그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는 오늘도 호처럼 '파란 돌'처럼 묵묵히 서예에 정진하고 있다.
그는 현재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이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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