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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김제 전통문화의 산증인 김병학씨 별세





김병학 전 김제문화원장이 지난 1월 26일 별세했다. 향년 96세.
“쓸모없었던 표송이 솔밭을 지키듯 내가 이제 고향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다”
그는 살아생전 고향 김제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니, 김제 전통문화의 산증인이었다, 김제문화원장을 여러 차례 지내고, 국사편찬위 김제시 사료조사위원을 역임하면서 깊이를 더해온 고향에의 애정을 모두어 ‘溫故而知新의 故鄕 김제’를 펴냈다.
고향에 대한 그의 사랑은 이미 여러 차례 발간된 책으로도 과시됐다. 옛 지명을 정리했으며, 충효유적, 성씨 정착사, 벼농사, 인물사, 일제시대 36년사도 책으로 정리했다. “그동안 펴낸 글들이 향토지나 역사적인 글쓰기에 충실한 것일 뿐 문예적인 글쓰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있는 것들을 나열하는 것이어서 글쓰기에 어려움은 없었지만 이번에는 수필형식이라 부담이 됐다”
후배들의 적극적인 권유로 펴냈다는 이번 책도 고향에 관한 것들을 중심에 뒀다. 동학농민혁명으로부터 3.1운동, 해방, 6.25 등 김제의 수난과 투쟁의 역사, 김제가 배출해낸 인물, 성산성지 금산교회 등 그가 추천하는 볼거리 등을 책 앞머리에 뒀다. 지역의 중요한 문화유적인 벽골제도 고찰했다.
‘새만금의 본향 김제’는 지난 2007년 출간한 ‘온고이지신의 고향 김제’의 후편이다. 제1장 ‘인물’편에서 명량해전의 영웅 안위 장군, 한국 최고의 학승 탄허 스님을 비롯해 박석정, 부설거사 등 잘 알려지지 않은 김제 출신 인물을 발굴, 기록했다.
제2장 ‘지리’는 서해의 명승 망해사, 위대한 어머니의 산 모악산, 슬픈 전설의 용자칠총을 실었다. 제3장은 새만금의 땅, 지방자치와 향토사, 지평선축제와 코스모스길 등 수상 작품을, 제4장에서는 호남야산개발과 잠업, 일제 36년 수탈자, 불교의 전래와 김제, 벽골제와 장보고 비 등 역사적 사실을 탐구했다.
‘일제 36년 수탈자’에서 1920년대 광활면 간척지 이주민 심사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해했는데 산모가 기진해 숨을 거두자 남편 혼자 농사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농장에서 쫒겨나는 비극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콩쥐팥쥐 소설의 배경 마을이 완주군 이서면 앵곡마을이라는 완주군측 학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며 김제 금구면 둔산리가 소설 배경마을이라는 것을 고증을 통해 주장하고 있다.
책에 실려있는 ‘백남윤의 농악기록보’는 김제 농악의 역사, 분포, 편성, 내용, 형태 등과 백남윤의 약력, 그리고 상쇠의 사설까지도 보존되어 민속자료로도 가치가 높다.
그는 2001년 10월 20일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문화관광부로부터 화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20년 가까이 김제문화원장을 지내온 그는 지속적인 교양강좌의 실시와 함께 향토사료, 향토문화을 발굴했다. 지난 88년부터 지금까지 1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관내 유적지에 대한 답사를 실시했다.
또한 모악산과 구성산에 일제가 박아놓은 쇠말뚝을 찾기 위해 45차례에 걸쳐 탐문조사를 하고 우리 고유의 지명찾기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여왔다. 47개 노인정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간담회를 가져 고유지명으로 환원하는데 공헌하기도 했다.
각종 문화강좌, 교양강좌, 백일장, 유적지 답사, 전통혼례를 시행하면서 멀게만 느껴졌던 문화예술에 대해 시민의 눈과 귀를 밝힌 공로는 높이 평가받고 있다.
또, 88년도부터 2000년까지 향토사료를 발굴해 향토문화집(1집-17집)과 김제군사, 김제시사 성산문화(1호-12호)를 펴냈다. 또, ‘우리 고장의 옛 지명’ , ‘김제명현 인물사전’. 김제관향성씨, 김제명현인물사전, 조선왕조실록 김제사료집, 김제시고읍지(영인본) 발간 및 한글 국역 등을 했다.
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민족의 자존심과 정기회복을 위해 일제가 지어놓은 마을 이름 6곳을 고유지명으로 환원했으며 모악산 및 구성산에 일제가 박아놓은 쇠 말뚝 제거에도 앞장서는 등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헌신 봉사했다.
그는 김제 지역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성산문화’를 창간했다. ‘성산문화’는 매년 발행되고 있으며, 김제문화원의 주요 사업 중의 하나이다.
김제 시내 주민들의 요긴한 휴식처, 성산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계단길을 오른다. 해발 41m. 성산은 넓고 넓은 김제평야 한복판, 김제시내 주변에 납작 엎드린 야산 중에서 가장 높고 또 아름다운 산(언덕)이다. ‘성산(城山)’이란 이름은 삼한시대(또는 백제 때)에 쌓은 토성에서 유래했다. 토성 바깥을 둘러싼 조선시대 석성이 있었으나, 일제 초기 성벽을 허물어 간척지 매립에 쓰면서 사라졌다. 석성은 찾아볼 수 없고 토성만 흔적만 희미하게 남아 있다.
그는 1930년 7월 22일 김제에서 태어났다. 김제고를 졸업한 그는 한국양잠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김제문화원 2대(1968.8~1972.2). 6~9대(1987.8~2004.3) 원장을 지냈다. 전국문화원연합회 전북지회장, 국사편찬위원회 김제시 사료조사위원, 김제향토사연구회장 등을 지냈다.
1992년 김제시민의 장 문화장, 1997년 서울신문사 제정 제13회 향토문화대상 본상(전통문화부문)과 1996년 광복 50년 유공과 관련,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으며, 2001년 문화관광부로부터 화관 문화훈장을 받았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