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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천인산과 만인산

 

 

진안현감 신영균의 천인산
희천군수 김영철의 만인산


‘만인산’은 조선 후기에 수령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만든 일산(日傘)의 일종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수 놓여 있다. 참여한 사람들의 수나 고을의 규모에 따라 천인산 또는 만인산이라 하는데, 만인산이라는 이름이 일반적이었다.

직장을 떠나거나 다른 부서로 옮겨가는 이에게 그의 공적을 기리며 제작하는 오늘날의 기념패와 그 맥락이 비슷하다.

비단에 오색실로 덕을 기리는 송덕문(頌德文)에 참여자들 이름을 더하고 길상을 의미하는 보문(寶紋)부터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十長生)까지 다양한 문양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일산은 수령이나 감사가 외직으로 나갈 때 햇빛을 가리는 의장의 하나로 큰 양산이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송덕비와 함께 수령의 공덕을 기리는 백성의 선물이 됐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유물보존총서Ⅹ '수령의 선정을 기리는 선물: 만인산'을 펴냈다.

'만인산'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만인산 4점과 천인산(千人傘) 1점에 대한 보존과학 및 민속학 분야 연구 성과물로 향후 만인산 연구의 길잡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만인산 5점은 1873년에서 1887년 사이에 만든 것들로, 구성과 재료, 제작 기법에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다. 직물, 목재, 금속 등의 복합 재질로 구성되어 각 재질의 손상 상태와 특성에 따라 보존처리 방향과 방법에 차이가 있다.

직물의 손상이 심해서 보존처리에 걸리는 시간이 짧게는 1년, 길게는 여러 해가 걸린다. 2006년에 시작한 보존처리는 2024년이 되어 비로소 5점 모두 끝냈다. 만인산의 새겨진 자수 내용으로 제작 시기를 밝히고, 광학 현미경 조사, X선 투과조사 등과 같은 과학적 분석과 상태조사로 제작 재료와 기법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천인산(千人傘, 길이 230×지름 140)'은  1885년(고종 22)에 진안현 사람들이 진안현감(鎭安縣監) 신영균(申永均, 1833-1922)에게 바친 수산(繡傘)으로, 128명의 이름이 수놓아져 있다.

'만인산(萬人傘, 길이 240×지름 144
한민구 기증)'은 1873년(고종 10) 개성 사람들이 개성유수(開城留守) 한돈원(韓敦源, 1820~1882)에게 바친 수산이다.

또다른 '만인산(길이 250× 지름 123, 이만기 기증)'은 1879년(고종 16)에 초산부 사람들이 초산부사(楚 山府使) 이만기(李晩耆, 1825~1888)에게 바친 수산으로 2,166명의 이름이 수놓아져 있다.

또다른 '만인산(길이 250×지름 161)'은 1887년(고종 24) 희천군 사람들이 희천군수(熙川郡守) 김영철(金永喆, 1836-1901)에게 바친 수산으로 4,324명의 이름이 수놓아져 있다.

또다른 '만인산(지름 155)'은 1887년(고종 24년)에 안주목 사람들이 관서병마절도사(關西兵馬節度使) 이종승(李鍾承, 1827~)에게 바친 수산으로 1,526명의 이름이 수놓아져 있다.

이 책은 각 만인산의 도판과 실측 도면, 구성, 재질별  보존처리 내용, 조형적 특징에 대해 수록했다. 직물 보존처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보수 바느질 기법 영상을 처음 공개하며, 책에 담긴 정보무늬(QR 코드)와 연결된다.

논고는 만인산 5점의 송덕 내용과 특징, 만인산에 담긴 문양과 자수에 대해 분석했다. 부록으로 실은 원문 자료는 송덕 내용과 역사 속에 사라진 당시 사람들의 이름을 제공해 학술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1976년 신영균(申永均, 1833~1922) 소장 천인산을 사면서 만인산 수집을 시작했다. 이후 상설전시를 염두에 두고 만인산 수집에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기증과 공개 구입 등으로 현재 모두 5점의 만인산을 소장하고 있다.  KBS 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에 소개된 이만기(李晩耆, 1825~1888) 만인산에 주목한 당시 상설전시 담당 직원이 후손과 인연을 맺고 기증받은 과정은 특별한 뒷이야기로 남아 있다.

조선시대 비단에 오색실로 수놓은 '만인산'을 보면서 온갖 추태를 다 이보이고 있는 작금의 대한민국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