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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근대를 살아낸 화가, 채용신'국립전주박물관, 채용신의 회화 세계 조명

국립전주박물관은 지난달 20일부터 4월 27일까지 상설전시관 2층 전주와 조선왕실실에서 '정몽주순절도' 등 8건 27점을 전시한다.
상설전시관에서 주제전시‘채용신과 근대’를 진행한다. 채용신蔡龍臣(1850~1941)은 고종 어진을 그리며 초상화가로 명망을 높였다. 20세기 초 고향으로 돌아와 전북 지역에서 초상화를 비롯해 화조영모화, 산수화, 고사인물화 등 다양한 그림을 제작했다. 이번 전시는 2021년과 2023년 두 차례의 채용신 학술 총서 발간 및 학술 콜로키움의 결과를 바탕으로 20세기 전반 전북 지역에서 활동한 채용신의 다양한 회화 세계를 조명한다.
전시는 박물관이 2023년에 구입한 신소장품 5건을 최초로 선보인다. '정몽주순절도(鄭夢周殉節圖)'는 고려 말 충신인 정몽주(1338-1392)의 죽음을 그린 역사고사 인물화이다. 정몽주가 조영규의 철퇴를 맞고 선죽교 위에 쓰려져 피를 흘리는 장면이 묘사되었는데 생생한 인물 표현, 건물과 나무의 채색 등에서 채용신의 화법을 확인할 수 있다.
또 한밤중의 호랑이와 다람쥐를 그린 이색적인 '영모도'는 채용신이 1906년 정산군수직에서 물러나 김제 일대에서 그림을 그렸던 시기의 작품으로 그의 초기 영모화풍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림 상단에는 전북의 선비인 이정직(李定稷, 1841-1910)이 쓴 글이 있는데 이를 통해 채용신과 이정직, 이정직의 제자이자 그림이 제작된 호문당의 주인인 송기면(宋基冕,1882~1956) 3인의 관계를 알 수 있어 흥미롭다.
고향에 돌아온 채용신은 익산에서 금마산방(1906-1923)을, 1926년 이후 정읍에서 채석강도화소를 운영하며 주문에 응하는 그림을 그렸다. 꽃나무와 암석을 배경으로 한 쌍의 새를 그린 '화조화10폭병풍'(1914)은 화려한 진채와 구성, 규모에 있어 궁중화조화의 영향을 보여준다. 채용신은 부부 금슬이나 화합 등 상서롭고 좋은 의미를 갖는 화조영모화를 공방에서 반복해 제작했으며 주문자의 요구에 맞게 소재와 배경을 변형했다.
'화조영모화8폭병풍'은 사실적이면서도 독특한 동물 표현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어미젖을 빨고 있는 강아지, 풀꽃을 뜯어먹는 토끼, 작은 벌레를 바라보는 공작 한 쌍 등은 채용신이 구상한 독특한 도상이다.
1928년에 그린 '정자관을 쓴 선비 초상'은 주인공 얼굴 표현에서 근대 사진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 작품은 인물 뒤에 산수병풍을 넣어 하단에 깔린 화문석과 함께 공간감을 구현했다. 후에 쓰기 위해 비워둔 사각 제목란, 족자 뒤쪽 배접지의 낙관, 상단과 좌우에 비단을 붙이는 대신 문양을 그려서 표현한 점 등은 채용신의 후기 초상화의 제작 양상을 잘 보여준다.
국립전주박물관은 ‘다시 찾는 박물관’을 만들고자 정기적으로 상설전시실의 전시품을 교체하고 있다./이종근기자

 

도1. 채용신, <정몽주의 순절>, 20세기 초, 면에 색, 국립전주박물관 전주78789 

고려 말 충신인 정몽주鄭夢周(1338-1392)의 죽음을 그린 역사고사 인물화이다. 그림 중앙에 정몽주가 조영규의 철퇴를 맞고 선죽교 위에 쓰려져 피를 흘리는 장면이 그려졌다. 정몽주가 타고 온 갈색 말은 놀라 도망가고 이를 지켜본 두 명의 하인도 달아나고 있다. 생생한 인물 표현, 건물과 나무의 채색 등에서 채용신의 화법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의 상단에는 송도(지금의 개성) 성곽이 그려져 사건이 일어난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하단에 정몽주의 절의를 기리며 조선 후기에 세워진 비각이 함께 묘사된 것이 흥미롭다. 


도2. 채용신, <호랑이와 다람쥐>, 20세기 초, 종이에 색, 국립전주박물관 전주78791  

이단으로 나뉜 화면의 아랫부분에는 커다란 소나무와 두 마리의 다람쥐가, 윗부분에는 달이 떠 있는 바다를 향해 가는 어미 호랑이와 새끼 호랑이들이 그려졌다. 호랑이와 다람쥐가 함께 등장한 독특한 구성인데 석정 이정직李定稷(1841-1910)이 그림 위에 당나라 시인 저광희儲光羲의 「용맹한 호랑이 글(猛虎詞)」 일부를 썼다. 채용신은 1906년 정산군수직에서 물러나 김제 일대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이 작품으로 갈색과 푸른색 담채를 사용했던 초기 영모도 화풍을 확인할 수 있다. 채용신과 이정직, 이정직의 제자이자 호문당의 주인인 송기면宋基冕(1882-1956) 3인의 관계를 알 수 있어 흥미롭다. 

도3. 채용신, <화조영모8폭병풍>, 20세기 전반, 면에 색, 국립전주박물관 전주78787

 

제일 오른쪽 1폭은 해가 떠오르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쌍의 학과 거북이 등장하는데 모두 장수를 뜻하는 상서로운 동물이다. 제2폭 파초 앞에 모인 닭과 병아리, 제4폭의 오동나무 아래 어미젖을 빨고 있는 강아지는 가족의 따뜻함, 정겨움을 보여준다. 또 토끼가 풀꽃을 뜯어먹는 장면, 암수 공작이 작은 벌레를 바라보는 장면은 채용신이 구상한 독특한 도상이다. 제6, 7, 8폭에 단독으로 등장하는 매, 사슴, 원숭이는 용맹함, 장수, 관직을 상징하는데, 각 동물의 자세와 시선은 감상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채용신의 도장이나 글은 남아있지 않지만, 새를 표현하는 필법, 녹색과 군청색을 진하게 칠한 바위 처리, 하늘이나 물가를 청색으로 엷게 칠하는 방식 등은 채용신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도4. 채용신 <정자관을 쓴 선비 초상>, 1928년, 면에 색, 국립전주박물관 전주78790

정자관에 심의를 입고 두 손을 모은 학자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이 초상은 함께 전시된 <송병화 초상>을 제작 후 16년이 지나 완성된 것으로, 그 사이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주인공 얼굴 표현에서 근대 사진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며, 인물 뒤편에 펼쳐진 삼폭 산수병풍은 하단에 깔린 화문석과 함께 공간감을 구현했다. 폭이 좁은 화면, 제목을 위해 남겨둔 사각 제목란, 족자 뒤쪽 배접지의 낙관, 상단과 좌우에 비단을 붙이는 대신 그려서 표현한 문양대 등은 채용신의 후기 초상화의 제작 양상과 장황 방식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