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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16> 한국 최고(最古)의 빵집 군산 ‘이성당’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16> 한국 최고(最古)의 빵집 군산 ‘이성당’

“탁구야, 너는 빵이 왜 좋으냐?”   “빵에서 나는 따뜻 한 냄새가 좋습니다”   “그렇구나.”
“스승님은 왜 빵이 좋으십니까 ?”   “그야 사람이 먹는 것이니 좋지”   “그럼 저도 그리 바꾸겠습니다”

5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장안의 화제였던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탁구의 제빵 스승인 팔봉 선생은 “빵 만드는 사람은 먼저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는

유언을 남긴 채 숨을 거둔다. 대를 이어 내려오는 ‘오래된 빵집’. 세대에 따라 입맛이 바뀌고, 인기 있는 빵의 종류도 달라졌는데 ‘오래된 빵집’은 여전히 성황이다. 

유럽이나 일본에서 첨단기술을 익혀온 제빵사와 파티셰들이 날마다 새로운 빵을 내놓고, 대기업이 만든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전국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간 요즘, ‘오래된 빵집’들이 생명력을 이어온 비결은 뭘까.

'빵의 성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전라북도 군산에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관광 명소. 죽기 전에 꼭 먹어봐야 하는 단팥빵을 파는 곳. 군산 대표 빵집을 넘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이성당(李成堂)’에 붙는 수식어는 화려하다.

1945년 ‘이성당’으로 출발한 이성당은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운영하는 집’,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번성하는 집'이라는 뜻을 의미한다. 

그 역사는 191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인 히로세 야스타로가 1910년대 초반 지금의 이성당 군산 본점의 본관 자리에 제과점 ‘이즈모야(出雲屋(이즈모야)'를 냈다. 

화과자점으로 운영하던 제과점(지금의 영화동 부근)이 시작점이었다. 이는 1910년대에 찹쌀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찹쌀 과자, 떡, 서양식 빵과 과자 등을 파는 작은 상점이었다. 1930년대 이후에는 군산에서 가장 큰 제과점으로 성장했다.

이후 히로세 야스타로의 아들인 히로세 켄이치가 이즈모야를 경영했지만, 1945년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나면서 히로세 가문 사람들은 쫓겨나듯 일본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1945년 이성당의 초대 사업주인 이석호 씨가 현재의 이성당 군산 본관 자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이성당 이름으로 작은 규모의 빵집을 열었다. 

이후 그는 1948년 이즈모야를 인수한 후 이성당으로 탈바꿈했다. 몇 년 후 그는 이종사촌(3대 사업주 오남례 씨의 남편)인 조천형 씨에게 이성당을 넘겼으며, 조천형 씨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내인 오남례 씨가 3대 사업주가 됐다.

3대 사업주 오남례 씨의 뒤를 이어 그의 며느리인 김현주 이성당 대표가 2003년 대표로 취임해 가업을 잇고 있다. 김현주 대표의 자녀들도 이성당에서 일을 배우며 이성당은 4대째 이어져 내려온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역사가 가장 긴 제빵 명가로 자리매김했다. 김 대표의 남편은 별도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대두식품 조성용 대표이사가 제25대 군산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추대됐다. 조성용 대표이사는 이성당 2대 대표였던 조천형씨와 3대 대표인 오남례 씨의 아들이다. 현재 이성당 대표는 조 대표이사의 아내인 김현주씨다.

군산 이성당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역사보다 길다. 1945년 해방되자마자 일본인이 운영하던 양과자점 ‘이성당’을 한국인이 그대로 인수했다.

김현주 대표로부터 ‘이성당’의 역사를 들었다. 

1945년, ‘이성당’을 시작한 사람은 고종사촌 간인 이석우 씨와 조천형 씨였다. 증권회사에 다니던 이석우 씨가 자본을 대고, 남원에서 농사를 짓던 조천형 씨가 빵집을 맡아서 운영했다. 

돈을 댄 이가 이석우 씨라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하는 빵집’이란 뜻에서 ‘이성당’이란 이름이 붙었다. 조천형 씨가 김현주 대표의 시아버지다.

일본인이 북향으로 지어놓은 군산시청 앞 중심 상권에 자리 잡은 이성당은 군산 사람들이 입학식이나 졸업식이 끝나면 으레 들르고, 소풍 전날 과자와 빵을 사기 위해 찾는 곳이었다.

시아버지는 무엇보다 재료를 중시했다.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구하기 위해 먼 곳까지 찾아다니고, 정육점에서도 제일 좋은 고기만 찾았다. 

“이성당은 최고 재료만 쓴다더라”고 소문이 났다. 1978년, 시아버지가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빵집을 떠맡게 된 시어머니에게 당시 스물두 살이던 남편 조성룡 씨는 튼튼한 버팀목이었다. 

남편은 “전통은 지키되, 시대에 맞춰 새로운 제품, 새로운 서비스를 계속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들어 이성당은 서울에서 제빵 전문가를 데려와 다양한 빵과 과자, 케이크를 개발하고, 아침을 거르고 출근하는 직장인을 위해 ‘모닝 서비스’를 시작했다.

 조성룡 씨는 팥의 향을 잃지 않으면서 최적의 식감을 살려 팥앙금 만드는 법을 연구한 끝에 팥 앙금 제조회사(대두식품)를 차렸고, 빵집은 오남례 씨와 김현주 씨 고부가 꾸렸다. 

대두식품은 한때 우리나라 제과점의 80%에 팥앙금을 공급했다 한다.

이성당이 법인으로 전환하던 2003년, 김현주 씨가 시어머니로부터 빵집을 물려받았다. 

군산시청이 신시가지로 옮겨가면서 군산의 상권이 이동해 손님이 줄던 때였다. 그는 젊은 고객층을 겨냥해 스파게티와 피자 등 식사 메뉴를 개발하고, 2006년부터는 100% 쌀가루로 만든 빵을 내놓기 시작했다. 

남편이 개발해 ‘햇쌀마루’라는 브랜드로 내놓은 쌀가루를 공급받는데, 쌀빵 출시 후 매출이 계속 늘고 있다고 한다. 

인공 향료는 전혀 쓰지 않고, 인공 색소 대신 과일 퓨레로 색을 내고, 이스트 대신 천연 효모로 발효하는 등 ‘건강 빵’을 지향한다는 것. 그런데 빵집 어디를 둘러봐도 이를 선전하는 문구를 찾을 수가 없다.

군산에 본점이 있고 서울 잠실과 경기 김포, 용인, 화성, 인천, 충남 천안 등에 매장이 있다.

대두식품은 이성당과 관계회사로, 빵 생지와 앙금 등을 생산한다. 

이성당 대표 빵인 단팥빵을 비롯해 이성당 빵에 들어가는 쌀가루, 앙금이나 양갱, 빙수 팥 등도 모두 대두식품에서 생산한다.

 이성당 뿐만 아니라 국내 대형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에 납품되는 단팥소의 60% 이상을 대두식품에서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성당은 지난해 매출 266억원, 영업이익 34억원을 기록했다. 

이성당은 1945년 해방 직후 일본인이 남기고 간 제빵 기구를 사용해 빵 맛을 재현한 업체로, 당시 개점한 본점을 비롯, 전국에 9개 매장을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다. 

대표 메뉴는 단팥빵과 야채빵으로 매 주말마다 1만개 이상 팔린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빵이 이젠 단순한 주전부리 수준을 넘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단단히 한몫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