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16>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익산 춘포역사(春浦驛舍)
원형 그대로 보존된 역사(驛舍)론,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익산 춘포(春浦)역이 2014년 건립 100주년을 맞았다.
1914년에 건립된 춘포역은 1996년 일본식 이름인 대장촌에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뀐 뒤 2011년 5월 폐쇄됐다.
춘포역사는 슬레이트를 얹은 박공지붕(양쪽으로 경사진 지붕)의 목조 구조로 소규모 철도역사의 전형이란 평가를 받는다.
춘포역의 지붕 차양 네 개는 돌출되고 겹친 정도가 불규칙하게 변하면서 절묘한 건축미를 보여준다.
역사·건축·철도사적 가치가 커 2005년 11월 문화재로 등록됐다.
최근들어 익산의 문화유산을 실감나는 문화콘텐츠로 경험하는 '이리열차타고 익산행'이 전국의 참여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리열차타고 익산행'은 지난 5월 까지 진행한 네 번의 프로그램이 모두 조기 매진되는 인기와 함께 전국에서 200명 이상이 참여했다.
'이리열차타고 익산행'은 국가유산청이 공모하는 '우리고장 국가유산 활용사업-생생 국가유산사업 분야'에 선정, 추진하는 사업이다. 지난 4월 시작, 11월까지 13회를 진행한다.
'생생 국가유산사업'은 지역 문화유산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재발견하고 문화 향유 기회 확대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돕기 위한 사업이다.
생생 국가유산사업 '이리열차타고 익산행'은 철도중심지로 일제강점기 수탈의 아픔을 간직하고 그대로 보존돼 있는 익산의 이야기를 이리열차에 담아 역사·교육·문화 체험 여행을 선보이고 있다.
프로그램은 1박 2일 일정인 '이리열차타고 익산행'과 당일체험 '기찻길에서 찾은 이리의 향기', '레트로 감성 영정통거리' 등 3가지 테마로 구성해 근대역사의 재미를 다양하게 느낄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익산 솜리근대역사문화공간과 익산역 일원을 거닐며 역사투어, 버스킹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시대 의상을 입고 추억의 상점&뽑기도 해볼 수 있다.
솜리근대역사문화공간과 구 삼산의원, 구 춘포역사에서 펼쳐지는 이리열차퀘스투어는 이색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이리열차퀘스투어는 임무를 수행하며 독립운동과 익산 근대역사의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체험이다.
또, 참여자들과 함께 생태정화활동인 봄나루플로깅, 줍깅 등을 통해 멸종위기종, 천연기념물 등이 서식하고 있는 만경강의 보존가치를 몸소 체험하는 시간도 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철도의 날’을 맞아 춘포역을 비롯 '한국철도 기네스 30선’을 선정했다.
코레일이 운영하는 전국 691곳(광역전철역 295곳 포함)의 역과 노선, 열차 차량, 시설 중 주목할 만한 사실을 추린 것이다.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은110년 전인 1914년에 세워진 익산시 춘포역이다. 이 역사는 2005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국내에 현존하는 최고(最古) 역사(驛舍)로, 지금은 폐역이지만 당시엔 호소카와(細川) 가문의 대농장이 생산한 쌀을 일본 열도로 실어 나르느라 바쁘기 그지없었다.
춘포의 우리말 이름은 ‘봄개’. 봄개는 봄나루라는 뜻으로 음이 변해 ‘봉개’가 됐다.
봉개산(춘포산)은 춘포면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중심지이고 익산천이 흐르는 곳으로 옛날 배가 들어와 군사적으로나 산업적으로도 요충지였다.
조선 중기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춘포란 지명이 기록돼 있다. 그보다 120여 년 후에 발간된 '동국여지지에 춘포산이 등장한다. 이는 지금의 봉개산을 뜻한다.
춘포역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차역으로 꼽힌다. 겹겹이 쌓인 시간만큼 공간이 품은 사연도 다양하다.
일제 수탈의 아픈 역사를 만날 수 있는 대장도정공장과 에토가옥, 소작쟁의와 4.4만세운동 등 춘포 사람들의 뜨거웠던 저항을 기록한 낡은 신문과 빛바랜 사진, 여기에 춘포역사 내부에 들어서면 전주와 이리(지금의 익산)로 통학하던 학생들의 풋풋한 추억까지 더해진다.
이름까지 바뀐 사연 많은 기차역 춘포역의 원래 이름은 ‘오오바역(おおばえき)’이었다. 물론 이는 일본인들이 지은 이름이고, 조선인들은 해방 후부터 그 뜻을 따서 대장역(大場驛)으로 불렀다.
이름으로도 짐작할 수 있듯 대장역 주변은 사방이 드넓은 평야로 이뤄졌다. 바로 옆으로 만경강의 풍성한 물줄기까지 흐르니 쌀농사를 짓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이 비옥한 땅을 일본인들이 가만히 두었을 리 없다.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며 잘 여문 쌀을 일본으로 빼돌렸다.
1914년 건립돼 ‘넓은 들’이란 의미의 대장촌이란 지역 명을 본따 당초엔 대장역(大場驛)으로 명명됐지만, 결국 1996년 춘포역(春浦驛)으로 바뀐다.
춘포역 광장에 자리한 마을 기차에는 1917년 만경강 목교를 달리던 협궤열차의 사진이 실린 신문 기사도 전시돼 있다.
인근 지역 학생들이 춘포역을 통해 전주와 익산으로 통학하면서 기차역은 아침저녁으로 북적였다. 한창나이의 청춘들이 매일같이 꼬마열차에서 무릎을 맞대고 있었으니 풋풋한 로맨스도 꽃피었을 법하다.
일본이 협궤철도를 국유화하면서 1929년 춘포역도 지금과 같은 열차 궤도로 확장됐다.
광복 후에는 만경강이 모래찜질로 유명세를 얻으며 하루에 수백 명이 춘포역을 드나들었다. 모래찜질은 삼례까지 이어질 정도로 유명했다. 전주 덕진의 단오와 함께 한때 호남에서 알아주는 즐거움이었다.
1970년대엔 어린 여공들이 춘포역을 이용해 익산의 섬유공장으로 출퇴근하곤 했다.
현재 기차도, 철도도 없는 폐역이 되었지만 춘포역의 대합실은 역의 역사를 알려주는 작은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동서남북 방향으로 최북단은 ‘백마고지역’(북위 38.257), 최남단은 ‘여수엑스포역’(북위 34.753)이다. 최동단은 ‘영일만항역’(동경 129.434), 최서단은 ‘목포역’(동경 126.387)이다.
‘고도가 제일 높은 역’은 해발 855m에 있는 강원 태백시 추전역이다. 1973년 태백선으로 무연탄을 운송하기 위해 개통한 것이다. 다만 현재는 일반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은 정동진역(50m 거리), 규모가 가장 큰 역은 연면적 7만8495㎡인 광명역, 수송량이 가장 많은 역은 하루 11만명이 이용하는 서울역으로 나타났다.
가장 먼저 개통한 노선은 1899년 9월 운행이 시작된 경인선 노량진∼제물포 구간이다. 이후 125년간 전국 철도 노선은 총 106개, 영업거리는 4147.7㎞(코레일 운영 기준)으로 늘었다.
현재 코레일이 보유한 고속열차 차량은 105대다. KTX 46대, KTX-산천 38대(22대는 SR에 임대), KTX-이음 19대, KTX-청룡 2대다. 가장 빠른 열차는 시속 320㎞를 내는 KTX-청룡이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이 됐음에도 춘포역은 여전히 대장역(大場驛)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기간 사용됐다.
기차역은 그대로였지만 역 분위기는 달라졌다.
학생들의 등굣길, 익산의 섬유공장 출퇴근길, 만경강에 여행 온 사람들 등 한때 하루에 수백 명이 드나들 정도로 붐볐다.
1978년 철도통계연보에 의하면 1977년 춘포역 이용자 수는 29만 9,022명으로 기록됐다.
이는 당시 전라선 전북 구간 21개 역(익산역 제외) 중 7번째로 많은 수치였다.
하지만 도로가 발달하면서 춘포역은 점점 사람들의 필요에서 멀어졌다.
대장역에서 춘포역으로 이름이 바뀐 이듬해, 보통역에서 간이역으로 격하된 춘포역은 2004년 역무원이 근무하지 않는 무배치간이역이 됐다. 2007년엔 결국 폐역이 되면서 더 이상 기차가 멈춰 서지 않는다.
철로도 모두 거둬내 역사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러나 춘포역 뒤로 새롭게 놓인 기찻길엔 고속열차가 과시하듯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간다. 그 변화무쌍한 세월에도 춘포역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섰다.
나는 항상 정미소를 동경했다.
건장한 주인 아저씨가 쌀가마를 들었다 놨다 하시며 도정을 살피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다소 권위적이고 무서웠지만 가래떡을 뽑을 땐 거룩해 보였다. 세월이 흘렀다. 방앗간 아저씨도, 어머니도 고인이 됐다. 양철지붕은 녹슬고 기울어졌다.
춘포면에는 110년 된 폐공장이 있다.
1914년, 춘포 일대를 소유했던 일본인 대지주 호소카와 모리다치(1883~1970)가 세운 정미소다. 이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다 1998년 폐업했다. 그렇게 한동안 방치돼있던 공장이 이제 전시장으로 탈바꿈하고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소설 '1938년 춘포(지은이 박이선, 펴낸 곳 보민출판사)'는 이를 배경으로 한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그리기도 했다.
장편소설 '춘포'는 1938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평범했던 청년 해준이 모순된 현실 속에서 어떻게 변해가는지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지난 역사의 암담했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춘포가 고향인 평범했던 조선의 청년 정해준은 일본인 미유키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사랑과 이별의 과정, 그리고 불행한 가족사를 통해 차츰 민족의식이 차츰 싹트게 된다.
해준과 미유키는 민족을 뛰어넘은 순수한 사랑을 하고,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 시대의 모순과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평범했던 청년 해준이 모순된 현실 속에서 어떻게 변해가는지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일제강점기의 그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이 소설에서는 주요 등장인물 12명 이외에도, 약 20여 명의 다양한 등장인물이 등장하여 역할별로 시대의 현실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1938년, 과연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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