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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화정박물관 '고인물전'서 채용신의 초상화 작품 3점 전시

서울 화정박물관이 6월 30일까지 갖는 ‘고인물전(古人物展)​’에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 1850-1941) 의 걸작 3점이 선보인다.
전시엔 ‘​김상웅 초상(1933)’, ‘숙부인 황씨 초상(20세기 초)’, ‘만취(晩翠)선생의 초상(1913년)’이 선보인다.
‘​김상웅 초상(1933)’은 전(前) 건릉참봉. 61세 때 모습이다.(前健陵參奉號春塘金公相雄六十一歲影幀)
19세기 초기의 초상화에서 주인공의 손은 공수자세 또는 소매 안에 넣은 모습으로 표현됐다. 하지만 1920년대에는 이 작품처럼 오른손에는 부채, 왼손에는 안경을 쥐고 있는 형식의 초상화가 다수 만들어졌다.
이와 같이 형식화된 지물은 그림 속 인물의 문인적 모습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의견이 있다. 안경의 경우 조선 후기에 대중적으로도 널리 애용됐으나, 공식적이거나 예를 갖추어야 하는 자리에서는 착용하는 일은 드물었다고 한다. 이처럼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근대기 지식인을 상징하는 매체로 쓰였으리라.
‘숙부인 황씨 초상(20세기 초)’은 신원 미상. 49세의 숙부인(정3품 당상관 부인)이다. 아주 기가 막히게 잘 그렸다. 전시 포스터를 장식할 만한 걸작이다. 병풍 그림, 옷 무늬, 심지어 돗자리 무늬까지 일일이 담아낸 섬세한 솜씨가 탄식을 자아낸다.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 작품인 ‘숙부인 황씨 초상’은 기계가 기록한 사진 속 정보를 전통 초상화 양식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채용신의 솜씨를 잘 보여준다.
아담한 네 폭 병풍을 배경으로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은 황씨는 또렷한 눈매에 야무지게 힘주어 입을 다문 얼굴로 그려졌다. 장수를 기원하는 무늬를 넣은 한복 저고리, 장도노리개와 가락지 등 지체 높은 양반 가문의 여성임을 보여주는 치장보단 그의 얇은 피부 위로 비쳐 보이는 꼿꼿하고 슬기로운 인상에 더욱 눈이 가는 그림이다.
‘만취(晩翠)선생의 초상(1913년)’도 보인다. 누구는 독립운동가 궁인성(弓寅聖, 1874~?)을 그린 초상화라고 하는데, 절대 아니다.
궁인성 초상이라 보는 이유는 '만취(晩翠)'라는 호가 명기돼 있기 때문이다(만취 궁인성). 그런데 같은 호를 쓰는 사람이 여럿일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 판단하면 안된다.
그림에 쓴 기록을 조금만 자세히 따져보면, 만취가 궁인성이 아니란 걸 금세 알 수 있다. 정3품 통정대부 호 만취 54세 상으로 만취라는 호를 가진 정3품 통정대부의 54세 모습이다. 궁인성은 정3품이 아니었다.
‘개국 522년 계축 8월 상간(上幹) 종2품 전(前) 정산군수 채용신 호 석지 이모(移摹)’로 나와 1913년 8월 상순에 정산군수를 지낸 석지 채용신이 옮겨 그렸다. 그렇다면 모델은 1913년, 혹은 그 이전에 54세여야 하니, 즉 1859년 이전 생이어야 맞다.
궁인성은 1874년 생이니 1913년(그림 제작 연도)에 40살이 채 안됐다. 그리고 그는 평안도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21년에 체포돼 징역 12년을 선고받았고, 이후 행적 불명이다.
그의 54세 모습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니 이 사람(통정대부, 54세)은 궁인성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취선생’의 초상으로 보는 것이 아주 합리적이다.
채용신은 역대 임금의 어진을 그렸고 벼슬이 종2품에까지 오른 최고의 초상화가로 서울에서 낙향, 정읍, 부안 등 전북에서 활동했다.
한편 이 전시회엔 ​숙종 때 이조·예조판서를 지낸 이정영(李正英, 1616-1686)의 초상도 보인다. 의자에 앉은 풀샷을 '전신교의좌상'이라고 한다. 이정영은 이경직의 아들(이경석의 조카), 이광사의 증조부. 빵빵한 전주 이씨 가문. 서울 사당동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다. 쌍학흉배가 아름답지만 작자 미상이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