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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49> '풍속은 화순이고 인심은 함열이라' 익산 함라8경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49> '풍속은 화순이고 인심은 함열이라'  익산 함라8경

웅포귀범(熊浦歸帆): 웅포 앞바다에서 범선이 돌아오는 풍경

숭림모종(崇林暮鐘): 저물어가는 숭림사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

송당명월(松堂明月): 양진폭포 위에 위치한 송당폭포의 물에 비치는 달빛

양진폭포 (養眞瀑布): 함라산 계곡 아래에 위치한 폭포, 여인들이 목욕과 빨래를 하던 곳 

간교낙안 (艮橋落雁):함열 간다리의 논에 만수가 되면 함라산을 넘어온 수천마리의 기러기와 오리떼 모습이 장관을 이루는 곳

용산부운 (龍山浮雲): 용산의 아침 햇살에 안개가 뜬 구름이 보이면서 오색창연한 경치를 형성하는 곳

나산괘염(羅山掛念): 함라산 중턱에 병풍을 두른 듯 일렬로 서 있는 바위

유제청풍 (柳堤淸風): 함열읍 아래 버들이 울창하게 둘러싸인 아담한 숲  <출처 : 익산시, 함민속마을 지정보고서 및 중장기 복원 활용계획(2013)>

옛 사람들은 이와 같이 사람살기 좋은 함라마을에서도 특별히 뛰어난 경관을 연출하는 '함라8경'을 노래하고 있다.

제1경은 웅포 앞바다에서 범선이 돌아오는 풍경인 웅포귀범,  제2경은 저물어가는 숭림사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인 숭림모종, 제3경은 송당폭포 위에 비친 달빛인 송당명월,  제4경은 함라산 양진폭포를 말한다.

제5경은 간교낙안으로 함라산을 넘어온 수천 마리의 기러기와 오리떼 모습을 볼 수 있는 간교,  제6경은 아침안개 쌓여 오색 창연한 경치를 보여주는 용산부운, 제7경은 함라산 중턱에 병풍을 두른 듯 일렬로 서 있는 바위,  제8경은 버들이 울창하게 둘러싸인 숲인 유제풍경을 노래하고 있다.

함라산(咸羅山, 240.5m)의 풍수와 관련하여 삼부잣집이 부자가 된 내력을 설명하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나산괘염(羅山掛念)은 조선시대에 함라현의 아름다운 경치를 묘사한 '함라팔경'에 7번째로 등장하는 어구로, ‘함라산 중턱에 병풍을 두른 듯 일렬로 서 있는 바위’를 묘사한 것이다. '나산괘염 터의 바리 자리에 집터를 잡은 삼 부잣집'은 함라산의 아름다운 바위 풍경을 배경으로 발우 모양의 땅에 자리잡은 삼부잣집을 표현한 제목이다. 

함라면 함열리 함라마을은 익산의 대표적인 자연 마을의 하나로, 판소리 '호남가'에 등장하는 ‘인심은 함열이라’는 가사의 주무대이다. 

함라마을에는 통칭 ‘함라 삼부자집’이라 부르는 세 명의 만석꾼 부자가 살던 한옥이 있는데, 각각 조해영 가옥(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1호), 이배원 가옥(익산시 향토유적 제10호), 김병순 고택(고 김안균 가옥, 국가민속문화재 제297호)이다. 이 한옥들은 건물과 담장(등록문화재 제263호) 등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있어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한편 '숭림모종'은 위대한 종이지만 일본 사람들이 대동아전쟁 때 수탈해갔다고 전한다.

'웅포귀범'과 '숭림모종'은 '웅포8경'과 내용이 같다.

 ‘풍속은 화순이요 인심은 함열인디, 기초는 무주허고 서해는 영광이라.’ 호남의 여러 지명을 넣어 만든 ‘호남가’의 한 대목이다. 함열은 전북 익산의 지명이다. 익산에는 함열이라는 이름을 쓰는 곳이 두 곳이다. 한 곳은 함열읍, 또 다른 곳은 함열리이다. ‘호남가’에서 노래한 함열은 어디일까.

 정확하게는 함라면 함열리이다. 함라는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기 전까지 함열현과 함열군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일제강점기에 기차역이 들어설 당시 역 이름을 함열로 쓰면서 함열읍으로 발전했고, 함열리의 함열은 조용하게 잊혔다. 그렇다면 ‘인심은 함열’이라는 가사는 어떻게 불리게 된 것일까. 그 답을 찾으려면 함열리의 함라마을에서 찾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