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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일정집(一亭集)'에 나타난 임실 '일정8경'

'일정집(一亭集)'에 나타난 임실 '일정8경'



일정(一亭)은 임실읍 오정리 1번지에 있었던 정자 이름이다. 이 정자는 이 지역출신 선비 박용성(朴容晟)이
지금의 극락사 자리에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원근(遠近)의 많은 사우(士友)들이 모여 서로 시를 읊으며 후학들을 길러내던 곳이다. 이때 여러 지역의 선비들이 찾아와 남긴 글이 200여 편에 이르며 이 시를 모아 1941년 10월 30일 아들인 박승수(朴升洙)가 일정집(一亭集)을 발행했다. 이 시집 중에서 임실을 중심으로 한 '일정팔경(一亭八景)'이 전한다.


一亭八景(일정팔경)

[葛川垂釣] 갈천(川)에 낚싯줄 드리우고

白首桐江一餌鈞 백수(白首)로 동강(桐江)에서 하염없이 고기 낚다가, 
風塵顧睡復長嘯 풍진(風塵)을 돌아다보니 다시 긴 햇볕 내리 쬐이네. 
羊嘯五月天徵涼 양이 우는 5월이라 날씨는 서늘한바람 불어오건만,
 誓使朱門不奉詔 맹세코 대궐이 조서(詔書) 받들지 않도록 하겠노라.

[極樂靑霞] 극낙(樂)에 푸른 안개

綺羅一幅抹殘霞 비단 한 폭으로 남은 구름을 휩쓸어가지고,
樹樹繁霜醉似花 나무마다 내린 서리가 꽃을 시들게 하더라.
禱佛祈山遐算盡 부처께 빌고 산신에 빌어 천수를 누리니,
人間極樂翠谽欲 인간 세상에 극락은 푸르른 골짜기이더라.

[鸞臺淸風] 난대(臺)에 청풍(淸風)

携手同歸遡晚風 손을 잡고 함께 가서 저물녘바람을 쏘이니,
層臺百尺暮雲中 백자쯤 층층 난대 저녁구름 속에 있네.
輕鸞如惜今人老 작은 난새가 애석케도 지금사람 늙게 했을까,
亂啄殘花數點紅 마구 쪼아 먹고 남은 꽃 두어 송이 붉었더라.

[蛤島吹笛] 합도(蛤島)에 피리 소리

一縷天風吹送笛 하늘이 한번 바람을 불어서 피리 소리 보내고는,
明沙錦石臥蘆荻 명사(明沙)와 금석(錦石)에 갈대를 눕혀버리네.
碧雲孤島雨黃昏 고도(孤島)에 벽운(碧雲)은 황혼에 비를 뿌려서,
樵唱如星碎霹靂 나무꾼의 창가는 별이 벼락에 부서지듯 하더라.

[龍山落照] 용산(龍山)에 낙조(落照)

夕暉冉冉鬢眉照 저녁 석양빛이 뉘엿뉘엿 수염 눈썹에 비추었고,
芳艸如煙野欲燒 방초(芳艸)에 연무는 들판을 태우듯 자욱했는데,
落帽龍山孟萬年 '맹만년(孟萬年)이 용산에서 모자 날아간 일은,
不知今日世人笑 모르겠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그를 비웃을지도.

[鳳樓明月] 봉루(鳳樓)에 명월(明月)

鳳凰臺上一輪月 봉황대(鳳凰臺) 위에 둥근달이 떠올라서,
遍照人間不染髮 두루 세상을 비추고 세속 때 묻지 않았네.
夜夜相尋多別離 밤마다 서로 찾으니 이별이 허다해서
小焉東出復西沒 잠시 동쪽에 나왔다가 다시 서쪽에 숨더라.

[德岫歸雲] 덕수(德岫)에 귀운(歸雲)

德軸蒼蒼萬朶雲 창창한 덕수(德袖)에 일만 타래 구름이,
無心出處氣気 무심히 떴다가 졌다가 뭉게뭉게 피어나더라.
紛紛去作人間雨 분분하게 뭉쳐서 인간에게 비를 내려주셔서,
莫使桑林更禱 *상림(桑林)에 또 기우제 지내지 말게 하소서.

[竹林暮鍾] 죽림(竹林)에 저녁 종소리

竹院深深落暮鍾 죽원(竹院)이 깊을수록 저녁종소리 잦아들자,
黃昏乘月人西峰 석양은 달과 사람을 서쪽봉우리에 탑승하고,
雲林獨臥空門友 구름숲에 홀로 누워서 공문(門)과 벗하니,
窓下鉢孟藏一 창문 아래 바리때에는 한 용(龍)이 담겼더라.

*맹만년(孟萬年): '만년'은 위진(魏晉)시대 진(晉)나라 사람 맹가(孟嘉)의 자이다. 맹가가 중구일(重九日)에 환온(桓溫)이 베푼 용산(龍山)의 주연(酒)에 참석했다가, 술에 흠뻑취한 나머지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는 고사가 있다. '세설신어전주(世說新語箋疏) 식감(識鑑)'


*상림(林): 지명(地名). 상(商)나라를 세운 탕왕(湯王)이 기우제를 지낸 곳이다. 탕왕이 하(夏)나라 걸(桀)을 정벌한 후 7년 동안 혹독한 가뭄이 들었는데, 태사(太史)가 점을 치고는 하는 말이 "사람 희생을 바친 다음에 비를 내려줄것을 빌어야 한다"고 했다. 탕왕이 이에 자신이 희생이 되겠다고 자청하여 재계(齋戒)한 다음, 소거(素車)와 백마(白馬)를 타고 자신의 몸을 흰 띠풀(白茅)로 싸서 희생의 모양을 갖추었다. 그리고 상림(桑林)의 들에 가서 세 발달린 정(鼎)을 놓고 산천(山川)의 신에게 기도하면서 여섯 가지 일로 자책하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해(四海)에서구 름이 피어나고 수 천리 땅에 큰비를 내렸다는 데서 연유한 고사(故事). 후대에는 기우제를 지내는 장소로 일컬어지고 있다. '사문유취(事文類聚) 천도(天道) 기우(禱雨)'

-최성미 | 임실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