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조 시기, 전주판관 현득리(玄得利)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외조카 유양춘과 함께 과거에 응시했다. 조카보다 학문실력이 떨어졌던 현득리는 순간 꾀를 냈다. 시험 답안지의 표지와 색깔을 조카의 것과 똑같이 만들어 몰래 바꿔치기 하는 방법이다.
1465년 문과 회시(會試, 2차)에서 조카인 생원 유양춘의 답안지를 몰래 바꿔 현득리는 급제하고, 유양춘은 낙방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시험 감독관이었던 김수령은 이런 결과를 납득할 수 없었다. 김수령은 유양춘의 학문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결국 유양춘의 답안지를 다시 확인해보니, 그가 쓴 글이 아님을 직감했다. 김수령은 유양춘을 불러 이같은 사실을 전했고, 유양춘은 삼촌에 대한 배신감으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돌봐준 사람이 그런 짓을 저지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외할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유양춘은 도승지 노사신에게 삼촌의 만행을 알렸다.
노사신은 세조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고, 세조는 사헌문에 명을 내려 현득리를 국문하게 했다. 유양춘은 재판정에서 현득리를 만나 힐난했고, 현득리는 거듭 자신의 범행을 부정했다. 수사 결과 진실이 밝혀졌다.
현득리는 홍패(문과의 회시에 급제한 사람에게 내어 주던 증서)를 빼앗겼고, 합격이 취소됐다.
'조선왕조실록' 35권 세조 11년(1465년) 3월 17일, 과거 시험 답안지를 조카의 것과 바꿔치기했다가 적발된 전주 판관 현득리가 처벌받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편 현득리가 세조때 전주 판관으로 재직할 때 관북의 이시애(李施愛)가 반란을 일으켰다.이때 현득리는 전라도 병정 700명을 인솔하여 함경도에 출전했다. 반란군마저 감동시킨 충의장군(忠義將軍)이 바로 현득리였다.
차천로는 문과와 문과중시에 모두 장원급제한 인물이다. 1586년 친구를 위해 글을 대신 지어주어 장원급제시킨 게 발각되어 유배됐다.
허균은 1610년 시험관으로 전시(殿試, 3차)를 주관하면서 조카와 사위를 합격시켰다는 이유로 구금되었다가 전북 함열로 유배됐다.
이석표는 1734년 사간원 정언의 사직상소에서 “봉산군수 조윤성과 20년간 함께 수학하였는데, 시험장에서 시각이 촉박하여 서로 베끼거나 바꾸어 썼다. 조윤성에게서 도움 받은 것이 조금 더 많았는데도 신은 장원을 하고 조윤성은 낙방을 하였으니 수치스럽다”고 고백했다. 영조는 이를 불문에 부쳤다.
이외에도 기준격, 노긍, 채유후, 김만중 등 많은 인물이 과거시험 부정행위에 연루됐다.
'‘만에 하나’가 되겠다고 시험장에 들어갔다가 서로를 밟고 넘어져 죽고 부상한 자가 부지기수로 ‘열에 아홉’은 저승 문턱에 갔다 오게 되니, 그대에게 ‘만에 하나’의 영광을 축하할 마음은 없지만, ‘열에 아홉’은 저승에 갈 위험한 시험장에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아도 된 것만은 축하한다'
연암 박지원이 과거에 급제한 지인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이처럼, 조선시대 문무 관료들의 등용문인 과거시험에는 상상 이상으로 부정과 비리가 많았다.
조선시대 관료들의 등용문인 과거시험에는 상상 이상으로 부정과 비리가 많았는데 특히 왕과 권력층에 의한 특혜와 권력형 부정행위가 만연했다.
오늘날에도 시험문제 유출사건, 부정입학사건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부정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입시비리나 채용비리는 업무방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의 범죄에 해당하므로 엄정한 제재와 처벌은 물론 이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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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 세조 11년 3월 세조 11년 3월 17일 갑자 1번째기사 1465년 명 성화(成化) 1년
전주 판관 현득리의 과거장에서의 부정을 벌하다
전주 판관(全州判官) 현득리(玄得利)는 성품이 본시 간휼(姦譎)했는데, 그가 문과(文科)의 국시(國試)에 부거(赴擧)할 때에 외질(外姪) 유양춘(柳陽春)과 장옥(場屋)에 들어가기를 약속하고 자신의 재주가 유양춘에게 미치지 못함을 분간하고는 먼저 종이 수십 폭(幅)을 유양춘에게 주어 권자(卷子)를 만드는데 색(色)과 모양을 같게 하고는 현득리가 은밀히 표지(標紙)를 바꾸어, 유양춘으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했다. 이미 방(榜)이 나왔는데, 현득리는 급제하였으나 유양춘는 낙제했다. 시관(試官) 김수령(金壽寧)이 평소에 유양춘의 재주를 알았으므로, 낙권(落卷)을 찾아 유양춘이 지은 것을 얻어 보니, 글이 매우 거칠고 졸렬하였다. 김수령이 이것을 유양춘에게 말하니 유양춘은 현득리에게 속았음을 알고 이를 밝히려고 하였으나, 유양춘이 어려서 현득리에게 양육됐으며, 그 외조모(外祖母)가 말려서 얻지 못하더니, 드디어 도승지 노사신(盧思愼)에게 호소했다. 노사신이 이를 아뢰니, 명하여 사헌부에 내려 국문하게 했다. 유양춘이 송정(訟庭)에 이르러 현득리를 면힐(面詰)하여도 조금도 가차(假借)하지 않았다고 하였으나, 마침내 현득리의 홍패(紅牌)를 거두었다.
○甲子/全州判官玄得利, 性本姦譎, 其赴文科國試也, 與外姪柳陽春, 約入場屋, 自分才不逮陽春, 先以紙數十幅授陽春, 作卷子色樣相同, 得利密換標紙, 不令陽春知。 旣榜出, 得利中而陽春落第。 試官金壽寧素知陽春才, 搜落卷得陽春所作詞, 甚蕪拙。 壽寧以語陽春, 陽春知爲得利所賣, 欲發之, 陽春少養於得利, 其外祖母, 止之不得, 遂訴於都承旨盧思愼, 思愼以啓, 命下司憲府鞫之。 陽春至訟庭, 面詰得利, 不少假借, 竟收得利紅牌。
【태백산사고본】 13책 35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7책 677면
*장옥(場屋) : 과장(科場)에서 비나 햇빛을 피하여 들어 앉아서 과거를 볼 수 있도록 만든 곳
*권자(卷子) : 과거(科擧) 때 글을 지어 올린 종이. 시권(試券)
*홍패(紅牌) : 문과(文科)의 회시(會試)에 급제한 사람에게 내어 주던 증서. 붉은 바탕의 종이에 그의 성적·등급(等級) 및 성명을 먹으로 적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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