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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47> 다산 정약용, 관찰사의 지시로 강도를 때려죽이다

 



사형 결정 권한이 없는 지방의 관찰사나 수령이 죄인을 장살시키는 관행은 서유구(徐有榘)가 전라감사 재임 중에 쓴 공문을 모은 '완영일록(完營日錄)'에서 확인된다.
1834년(순조 34) 5월에 관내 무주부에서 박동이(朴同伊)란 자가 강도 방화를 저질러서 불행히 백성 한 명이 불에 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보고를 받은 서유구는 범인 박동이가 체포되어 오면 즉시 곤장으로 때려죽인 후 물고장을 올리라고 운봉현감(雲峯縣監) 유상호(柳相鎬)에게 지시한다.

당시 운봉현감은 도적 체포 업무를 전담하는 영장(營將)을 겸하고 있었다. 서유구는 강도 방화범의 경우 주범, 종범 모두 법전에 사형으로 다스리게 되어 있는데다 당시 흉년이 든 힘든 상황이므로 즉시 처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조정에 보고하더라도 어차피 사형죄 선고가 명백한 죄수 아닌가!

다산 정약용, 관찰사의 지시로 강도를 때려죽이다

이보다 앞선 정조 말년에 고을 수령을 지냈던 다산 정약용도 강도살인범을 곤장으로 때려죽인 일화가 전해진다.
사건은 이렇다.
다산이 황해도 곡산부사로 있던 1797년(정조 21) 7월에 관내에서 강도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는다. 범행 현장은 우뚝 솟은 산과 우거진 숲이 있어 평소에도 도적이 자주 출몰하던 곳이었는데, 피해자는 함경도 영풍 시장에서 소를 사가지고 오던 김오선(金伍先)이란 백성이었다. 죽은 자의 몸에서는 목과 가슴, 배 네 군데에서 칼자국이 발견됐다.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직접 현장에 달려간 다산은 오랜 탐문 끝에 마침내 범인을 특정했다. 이렇게 해서 체포된 범인은 머슴 김대득(金大得)이란 인물이였는데, 그는 소를 빼앗기 위해 김오선을 죽게 한 사실을 자백했다. 그런데 사건의 수사 결과를 상세히 보고받은 감영에서는 조정에 보고하는 대신 김대득의 처형을 명령하였고, 결국 다산은 감영의 지시에 따라 김대득을 장살시켰다.
감사는 사안이 명백하므로 중앙정부에까지 보고하여 사건 처리를 오래 지체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때의 황해감사는 이의준(李義駿)이었다.
아무리 용서받지 못할 중죄를 저지른 악인(惡人)이라도 사형 결정권이 없던 고을 수령이 즉결 처형하는 것은 지금 우리의 관점에서 결코 공정한 재판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피의자에게 방어 기회도 제대로 주지 않고 더군다나 죽을 때까지 끔직한 매질이라니! 하지만 정조가 심리한 재판 기록인 '심리록(審理錄)'을 보면 당시 살인사건이 관에 접수되어 국왕의 판결이 나기까지 평균적으로 3년 6개월의 긴 시간이 걸린 것으로 나온다. 이는 판결 이후 사형 집행까지 걸린 기간을 뺀 수치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죄상이 명백한 경우 고을 내에서 사건을 신속히 마무리하려는 조치는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지도 모른다.

■ 민사 1심 재판에만 1년…형사 구속재판도 4.5개월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22 사법연감'에 따르면, 판사 3명으로 구성된 민사 1심 합의부에서 지난해 본안사건을 처리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364.1일로 집계됐다.

1심 재판에 평균 1년이 걸린다는 얘기인데, 2020년 309.6일 걸렸던 것에 비하면 55일가량 늘어났다.

2021년 민사 본안사건 1심을 접수하고 첫 기일이 열리기까지의 기간은 평균 137.2일로 역시 길어졌다. 2018년에는 소장 접수 후 재판 시작까지 116.4일 걸렸던 반면 2019년 133.2일, 2020년 134.9일로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민사소송법은 1심 재판을 5개월 안에 마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특히 2021년 접수된 민사 본안사건 수는 892,600여 건으로, 1,012,800여 건이 접수된 2020년에 비해 11%가량 줄었지만 재판에 걸리는 기간은 오히려 늘었다.

형사재판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1심 합의부 기준 구속 사건의 경우 끝나기까지 138.3일, 불구속 사건은 217.0일 걸렸다.

2020년 구속 재판이 131.3일, 불구속 재판이 194.2일 걸린 것에 비해 각각 7일과 23일 정도 늘어났다.

형사 본안사건도 2021년 319,700여 건이 접수돼 2020년 같은 기간 352,800여 건과 비교하면 9.38% 줄었지만, 역시 걸리는 시간이 늘어난 셈이다.

■ 복잡해지는 사건…판사 수는 '정원 미달'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 2022년 7~8월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변호사 666명 중 89%(592명)가 ‘최근 5년간 재판 지연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사건 수가 전년도보다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처리하지 못한 채 쌓여있는 사건 수가 워낙 많고, 사건이 예전보다 복잡해지는 것이 가장 큰 원인에다.

민사 1·2·3심에서 1년 넘게 선고를 내리지 못하는 미제 사건은 2021년 67,410건으로 집계됐다. 형사의 경우 18,920건이었다.

전국 법원에서 피고인 불출석으로 구속영장이 2회 이상 발부되고 공소제기 후 1년이 경과됐지만 소재 불명으로 집행이 되지 않은 이른바 형사 '영구미제' 사건도 지난해 503건으로 2020년 467건 대비 늘었다.

여기에다 판사 수는 부족하고 판사들에게 예전처럼 밤새워 일하도록 강요하거나 동기부여를 할 수 없는 환경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4년 개정된 각급 법원판사 정원법상 판사 정원은 3,214명(대법관 제외)으로 되어 있지만, 현재 판사 수는 3,026명(지난해 6월 기준)으로 여전히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민사소송과 형사소송 모두 재판에 걸리는 시간이 전년도보다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신속한 재판을 위해 판사 증원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