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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이종근의 행복산책2] 무(無)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물방울

[이종근의 행복산책2] 무(無)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물방울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모든 것을 그 속에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무(無)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행위입니다.

 분노도 불안도 공포도 모든 것을 허(虛)로 돌릴 때 우리들은 평안과 평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김창열(1929-2021)화백은 1969년 뉴욕을 떠나 파리에 정착하고 파리 근교의 작업실에서 재활용을 위해 씻어 놓은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이 아침 햇살에 빛나는 것을 보게 되는데요,  ‘물방울 작가’로 불리게 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그는 '생명의 근원' 물방울과 조부와의 기억을 환기하는 천자문,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 고향의 기억 속의 모래 등을 캔버스로 가져와 자기 근원으로의 회귀를 통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새들은 물을 마시기 위해 풍경 끝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햇볕에 녹아내린 물을 먹느라, 그것도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을 먹느라 그 많은 몸부림을 해야만 하는 거였습니다. 작은 물방울 하나가 새들의 목을 축인다고 생각하니 건물에 걸린 바람마저 소중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어느 가을날 들녘에서 발견한 야생 열매며 씨앗들이 새들의 먹이가 된다는 사실까지 머릿속에 되살아왔습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하늘로 향하고 말았습니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 것입니다.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하루의 삶으로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 그렇게 만은 살 수가 없는 현실이지 않은가요. 내일이 있기에 오늘을 아껴야 하고 그 안의 것들을 저장하면서 또 내일로 걸어가는 내가 아니던가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많은 영화를 위함도 아니요, 삶의 반경을 지켜가기 위해 부끄럽지 않은 최소한의 법칙이란 것을 말할 뿐입니다.
새들은 머리 둘 곳, 먹을 것에 대해서도 걱정을 않습니다.

그는 "물방울을 그리는 건 모든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다. 모든 악과 불안을 물로 지우는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아를 무화(無化)'시키는 김화백의 물방울이 생각나는 어느 가을날의 아침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만큼 흘러가면서 물방울을 그리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