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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반달리즘

반달리즘

문화유적을 파괴하는 행위를 반달리즘(vandalism)이라고 한다. 5세기 중반 유럽의 민족 대이동 때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이 북아프리카 지역의 고대 로마유적을 무차별 약탈하고 파괴한 행위에서 유래한 말이다.

반달리즘은 다른 문화와 종교에 대한 무지 내지는 멸시에서 비롯된 파괴행위다. 현대에 들어서는 약탈과 방화, 공공시설 파괴 등의 도시범죄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환경보호론자들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명화나 유적지에 페인트 칠을 하는 일도 유챙처럼 번지고 있다. 일종의 문화테러다.

우리나라에도 서양에서 벌어지는 나쁜 풍조가 들어왔다. 우리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경복궁에 낙서를 하는 범법행위가 이틀째 일어났다. 16일 새벽 경복궁 영추문 근처 서쪽 담장이 스프레이 낙서로 훼손된 데 이어 17일 밤에도 그 옆에 또 다른 낙서가 추가됐다. 두 번째 낙서를 한 용의자는 자수해 모방범죄임이 밝혀졌다. 첫날 용의자들은 ‘영화 공짜’ 문구에다 불법 영상 공유 사이트 이름을 대대적으로 낙서하곤 인증 사진까지 찍는 대담함을 보였다.

낙서로 인한 문화재 훼손은 일반 관람객 뿐 아니라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의 철없는 장난으로 빚어져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국가지정문화재를 손상, 절취하는 경우 문화재보호법 위반죄가 적용돼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문화재 훼손으로 인해 1년에 한화로 400억 정도를 사용한다. 호주의 경우 매년 100만 달러를 낙서를 제거하는데 사용하고 있고, 공공장소에 낙서했을 경우에 징역 5~7년을 선고한다. 싱가포르는 문화재 낙서를 ‘공공시설물 손괴죄’를 적용해 최대 8대의 태형과 3년 이하의 징역, 한화로 2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무허가 행위 등의 죄’를 규정한 법령에 따르면 국가지정문화재의 현상을 변경하거나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를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 92조 3항에 따르면 문화재청 허가 없이 위와 같은 행위를 한 경우 2년 이상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상, 1억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이번 경복궁 낙서 사건과 비슷한 낙서로 인한 문화재 훼손에서의 형량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2009년 사적으로 지정된 전동성당 출입문에 스프레이로 낙서한 2명은 각각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된 바 있다. 또 2017년 사적인 울산 언양읍성에 마찬가지로 스프레이를 사용해 낙서한 1명은 징역 2년이 선고됐다.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공공장소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자 및 기타 흔적을 남기는 그래피티(graffiti) 행위를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공공재, 특히 문화유산에 악서를 하거나 페인트 칠을 하는 것은 예술행위가 아니라 테러행위에 속한다. 종이에 낙서를 하듯 장난질을 하고 도망치는 수법은 비겁한 행위이며, 범법행위다. 인류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행위는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