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白雲) 경한,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의 발원문 작자로 확인돼 눈길을 끈다.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및 복장 유물'이 최근들어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가 됐다.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은 현존하는 유일한 고려 후기 금동약사불상이다. 발원문(發願文·부처에게 비는 소원을 적은 글)에 고려 충목왕 2년(1346)이라는 제작 시기가 적혀있다.
표현에는 단아하고 정제된 14세기 불교 조각의 전형적 양식이 반영됐다. 약 그릇인 약합(藥盒)을 든 약사여래 도상이 온화하고 자비로운 표정과 비례감 있는 신체, 섬세한 의복 장식 표현 등으로 정확하게 나타난다.
길이 10m가 조금 넘는 발원문도 역사·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물이다. 시주자, 발원자 등 1117명의 이름이 기록돼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고려 단일 복장발원문으로서 가장 많은 인명을 담고 있다"며 "공민왕의 몽골식 이름인 '바얀테무르(伯顔帖木兒)'도 발견된다"고 했다. 발원문 작자인 승려 백운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을 편찬한 백운 경한(白雲景閑, 1298~1374)과 같은 인물로 추정된다.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은 1377년 간행된 현존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이다.
백운 경한은 고려 후기의 대표적 선승(禪僧)이다. 나옹 혜근(1320~1376), 태고 보우(1301~1382)와 함께 고려 말을 대표하는 ‘삼화상(三和尙)’으로 불린다. 태고는 현재 조계종의 중흥조이자 태고종의 종조로 추앙되고 있고, 나옹은 석가모니불의 후신後身으로 추앙되고 있다.
그러나 백운화상에 대해서는 한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고부 출신으로 호는 백운(白雲), 10세를 전후로 출가했다는 기록 이외 50대 초반까지 행적이 거의 나타나 있지 않다. 경한의 행적은 <백운화상어록>과 <고려사>에 단 한편의 기사만이 전할 뿐이다.
중국 절강성 호주(湖州)지역 하무산 석옥청공화상에게 가르침을 전수받고, 인도 지공화상에게도 가르침을 받았으며 고려 불교문화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기고 1374년(공민왕23년) 입적했다.
1351년(충정왕 3)에 원나라에 가서 고승들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귀국 후 1372년(공민왕 21)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을 지었다.
이 책은 경한이 입적한 3년 후인 1377년(우왕 3) 7월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됐으며, 1378년(우왕 4)에는 여주 취암사에서 ‘백운화상어록’도 간행되어 후세에 그의 선사상(禪思想)을 알리는데 기여했다.
그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인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을 초록해 만든 주인공이다.
'직지' 이외에 백운에 관한 저술로 '백운화상어록' 상·하권이 전해져 온다. 이 책의 서문을 쓴 이구(李玖)의 글에 ‘白雲和尙 海東古阜郡籍 髫齔出家’이라는 대목이 보인다. 즉 백운의 고향이 당시 ‘고부군’이고, ‘초츤髫齔’ 즉 젖니를 가는 7-10세의 나이에 출가했음을 알게 한다. 어린 나이에 출가한 것으로 보면 아마도 정읍의 어느 사찰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내용에 근거하여 근래 정읍시는 백운의 고향을 ‘정읍시 고부면 백운마을’로 비정하였고, 이곳에 ‘백운화상 탄생지 기념비’를 세웠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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