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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전주부에 52개, 남원도호부에 48개 요지 및 유물 산포지 있다


[전주부와 남원도호부의 도기소와 자기소를 알고보니]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이 24일 오전 10시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대강당에서 ‘세종실록 지리지 내 전라도 지역 자기소․도기소 현황과 성격’을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조선시대 전라도 지역의 자기소·도기소 현황과 성격을 분석한 주제 발표가 지역별로 이어지는데, 나주목(김희정, 국립광주박물관), 장흥도호부(성윤길,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전주부 (권소현, 국립부여박물관), 남원도호부(이애령,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대한 국내 연구자들의 자기소·도기소 연구발표가 있었다. 연구 결과, 전주부에 52개, 남원도호부(전남 곡성 9곳 포함)에 48개 요지 및 유물 산포지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이날 발표 가운데 전주부와 남원도호부의 현황을 앞서 말한 2명의 전문가로부터 들어본다.

전주부 지역 자기소·도기소

세종실록지리지의 전주부 소속 군현 중 고부군, 금구현, 만경현, 임피현, 옥구현, 함열현, 용안현, 태인현, 고산현, 여산현 등은 조선 전기 당시에는 독립적인 행정구역이었으나, 현재 고부군은 고창군, 만경현은 김제시, 임피현과 옥구현은 군산시, 함열현·용안현·여산현은 익산시, 태인현은 정읍시, 고산현은 완주군의 소속 읍·면 단위로 변화됐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전북 전주시, 완주군, 익산시, 고창군, 김제시, 정읍시, 부안군, 충남 금산군 등 8개 시군이다. 금산군은 현재 충청남도이고 나머지 지역은 전라북도 서부 지역에 해당한다. 그 중에서 자기소·도기소 기록이 있는 지역은 전주부, 금산군, 익산군, 고부군, 금구현, 부안현, 정읍현, 태인현, 고산현 9개 지역에 자기소 7개, 도기소 8개의 기록이 있다. 그러나 당시의 지방 명칭이 대부분 현재의 지명과 일치하지 않는 점, 세종실록지리지의 자기소와 도기소를 확인하기 위한 학술적인 요지 조사가 미흡한 점, 그리고 당시 자기와 도기를 구별한 기준이 구명되지 않는 점 등으로 아직도 자기소·도기소 기록을 둘러싼 많은 의문점이 남아 있다. 현재까지 전주부와 그 소속 군현에 대한 문헌과 현지 조사를 바탕으로 한 53개의 요지 및 유물 산포지를 대상으로 전주부의 자기소, 도기소의 현황과 출토 도자의 특징을 살펴본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기록된 8道의 자기소 총계는 139개소이고, 전라도에는 31개의 자기소가, 전주부에는 7개소의 자기소가 기재되어 있다. 자기소 기록은 군현별 자기소의 수, 상·중·하로 구분된 품(品), 군현 내 동서남북의 방위 등이 포함되었다. 한편, 도기소의 총계는 189개소이고 전라도에는 39개소가, 전주부에는 8개소의 도기소가 기재되어 있다. 자기소와 마찬가지로 수, 품, 방위 등이 기록되어 있다. 전주부와 관할 군현의 자기소 7개소와 도기소 8개소가 해당되는 곳은 전주부, 금산군, 익산군, 고부군, 금구현, 부안현, 정읍현, 태인현, 고산현이다. 전주부와 관할 군현에는 자기소는 상품은 없고 중품이 4개소, 하품이 2개소 그리고 품 표기가 없는 곳이 1개소이다. 도기소 역시 상품이 없고 중품이 4개소, 하품이 3개소, 품 표기가 없는 곳이 1개소이다.
요지로 추정되는 곳은 전주부 중품의 자기소는 완주 안덕리 장파마을 요지, 전주부 중품의 도기소는 김제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 요지, 고부군 하품의 자기소는 고창 부안면 수동리
요지, 금구현 중품의 도기소는 김제 화율리 상화마을 요지, 금구현 자기소는 김제 금산리 안양마을 북방골 요지, 부안현 중품의 자기소는 부안 우동리 감불마을 요지, 태인현 하품의 자기소는 정읍 비봉리 수약동 요지이다. 한편, 자기소·도기소 기록은 없지만 전주부 지역에서 공납 자기로 대표되는 관사명 자기가 조사된 완주 화심리 요지, 완주 용암리 원용암 요지, ,완주 완창리 현동마을이다.
이들 요지에서 출토되는 분청사기의 기종은 발, 대접, 접시, 잔과 같은 반상기가 주류를 이루고 병, 매병, 편병, 호, 합, 대발, 주구발, 장군, 마상배, 향로, 벼루, 연적 등의 기종도 제작되었다. 그 외에 작, 보와 같은 제기가 제작된 곳도 있다. 완주 안덕리 장파요지에서는 고려 말 팔각형의 상감청자 기형과 문양을 가진 접시편이 출토됐고 정읍 비봉리 수약동 요지에서도 국화문이 상감된 각접시편과 고려 말 상감청자의 여운이 남아 있는 연당초문이 흑백상감된 대접편이 출토되어 고려 말의 흑백상감청자의 여운이 남아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분청사기를 장식한 시문기법은 상감, 인화기법이 주를 이루지만, 조화박지, 조화, 귀얄, 덤벙, 무문의 회청사기까지 모두 나타난다. 인화기법은 국화문, 연판문, 원문, 승렴문, 집단연권문 등 빽빽한 전성기의 인화문에서부터 귀얄기법과 함께 시문되는 성긴 인화문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섬(內贍)명은 발과 접시의 인화 분청사기에서만 나타난다. 자기소, 도기소 관계없이 나타나는 공통점이다. 부안 우동리 요지에서는 다양한 분청사기의 생산 외에도 다량의 갑발, 잘 만들어진 도지미, 인화 기법의 백자편이 출토되고 있어 양질의 제품이 생산됐음을 알 수 있다. 동반유물을 살펴보면, 백자가 동반 출토되는 요지는 완주 안덕리 장파요지, 김제 청도리 동곡마을, 부안 우동리, 정읍 비봉리 수약동, 완주 용암리, 완주 완창리 현동 유적이며, 조선청자가 동반 출토되는 곳으로는 완주 화심리 요지가 있다. 완주 안덕리 장파 요지에서는 백자와 함께 흑유자도 출토된다. 자기소와 도기소, 중품과 하품에 따른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백자가 동반 출토되는 점은 공납용 분청사기를 생산하던 자기소들이 관요가 설치되기 이전부터 백자를 생산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남원도호부 지역 자기소·도기소

세종실록지리지엔 공납 도자기의 체계적인 관리를 목적으로 조사했던 전국 도자기 생산 현황이 수록됐다. 공납 도자기 제작을 담당한 전국 자기소 139개소와 도기소 185개소의 상세한 위치와 상·중·하 품등이 기록됐다. 자기소 6개소와 도기소 7개소가 있었던 남원도호부 지역은 전라도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남원도호부 지역 가마터를 조사한 것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다. 남원도호부 지역 도·자기소는 남원도호부, 순창군, 임실현, 장수현, 무주현, 진안현, 곡성현의 7개 군현에 분포하였고 용담현, 구례현, 운봉현, 광양현의 4개현에는 없었다. 7개 군현에 속한 도·자기소는 모두 13개소다. 중품 자기소 2개소, 하품 자기소 4개소, 하품 도기소 4개, 미상 3개소이며, 상품 자기소는 없었다. 남원도호부 지역 도·자기소가 있었던 지역은 현재 전라남도에 속한 곡성현을 제외하면 모두 행정구역상 전북에 해당된다. 지금까지 15-16세기 가마터가 확인된 남원도호부 지역은 남원 11개소, 순창 6개소, 임실 8개소, 무주 1개소, 장수 2개소, 진안 9개소, 곡성 11개소로 모두 48개소이다.
가마터에서 채집된 도편의 종류는 청자, 분청사기, 백자, 흑유자, 도기, 요도구로 구분되며, 그중에서 분청사기가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한다. 분청사기의 주요 특징인 문양 기법을 분류 기준으로 삼아서 공통적인 특징을 보이는 가마터들을 묶어서 정리한 결과, 남원도호부 지역 15-16세기 가마터는 크게 4개 유형으로 분류가 가능했다. 먼저, 제1유형 가마는 고려말 상감청자 계통과 성긴 인화문 분청사기가 함께 출토되며 집단인화문이 확인되지 않았다. 제2유형 가마는 집단인화문으로 장식한 인화 분청사기가 주를 이루며 인화귀얄, 귀얄, 조화박지 등 다양한 기법의 분청사기가 확인된다. 제3유형 가마는 쇠퇴기 인화귀얄 분청사기와 귀얄 분청사기가 함께 출토되거나, 귀얄 분청사기만 확인되었다. 제4유형은 분청사기는 사라지고 백자만 채집되는 단계이다.
제1유형으로 분류된 가마에서는 연당초문양 등 고려말 상감청자 계통과 국화문, 삼원문 등 단독 인화문을 성글게 새긴 인화 분청사기가 확인된다. 인화 문양의 개체가 비교적 크고 엉성하며, 무늬 사이의 간격을 듬성듬성 띄웠다
남원도호부 지역에서는 ‘내섬시(內贍寺)’, ‘예빈시(禮賓寺)’, ‘장흥고(長興庫)’의 관청 이름과 관련된 명문이 확인되며, 관청 이름을 표기하는 방법은 끝이 뽀족한 도구로 글자를 새기거나, 글자가 양각된 장방형 도장을 찍기도 했다.
남원도호부 소속 중품 자기소에서 실제로 어떤 품질의 백자를 구웠는지는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문집인 ‘점필재집’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김종직은 그의 부친 김숙자(金淑滋, 1389-1456년)가 1442~1447년까지 경상도 고령현 현감으로 있을 때, 매년 공물로 상납하는 백자의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그가 장인들에게 백토를 아홉 번 체질하여 정제하는 ‘구절지법(九篩之法)’을 가르쳐 광주나 남원보다 우월해졌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 내용은 김숙자가 부임하기 전에는 남원 지역 공납 백자가 상품 자기소인 고령보다 더 뛰어났다는 의미가 된다. 김숙자가 부임한 1442년 이전에는 경상도 고령, 경기도 광주, 전라도 남원의 세 개 군현에서 분청사기와 함께 백자가 공납자기로 제작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1442년 이전에 상품 백자를 번조했던 남원도호부 중품 자기소는 어느 곳일까라는 의문점이 든다. 남원도호부의 중품 자기소인 ‘아산리(阿山里)’는 임실 학정리 가마터A, 임실현 중품 자기소인 ‘사아곡(沙阿谷)’은 임실군 사곡리 새터마을 2호 가마터로 추정되고 있다. 남원도호부에서는 대체로 중품 자기소를 중심으로 다량의 분청사기와 함께 왕실용 백자가 소량 제작됐던 것으로 추정된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