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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490년을 거슬러 돌아온 '독서당계회도'에 송인수 모습 보인다

독서당계회도 참고자료.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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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년을 거슬러 돌아온 '독서당계회도'에 송인수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훗날 전라도관찰사가 된 인물이다.
문화재청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지난 3월 미국 경매를 통해 매입한'독서당계회도(讀書堂契會圖)'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언론에 공개하고, 내달 7일부터는 고궁박물관 특별전을 통해 일반에도 공개한다.
중종(中宗, 재위 1506-1544) 연간에 사가독서(賜暇讀書)한 관료들의 모임을 기념하여 제작된 그림으로, ▲ 현전하는 16세기 독서당계회도 3점 중 하나이자 실경산수로 그려진 계회도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고, ▲ 실제 참석자들의 이름과 계회 당시 관직명 등을 통해 제작연도를 파악할 수 있으며, ▲ 조선 초기 산수화의 면모를 보여주는 수작이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된다.사가독서(賜暇讀書)는 조선시대 젊고 유능한 문신들을 선발하여 휴가를 주고 공무 대신 학문에 전념하게 한 인재 양성책을 말한다.
그림의 상단에는 ‘독서당계회도(讀書堂契會圖)’라는 제목이 전서체로 쓰여 있고, 중단의 화면에는 가운데 우뚝 솟은 응봉(鷹峰, 매봉산)을 중심으로 한강변의 두모포(豆毛浦)(지금의 성동구 옥수동) 일대가 묘사되어 있으며, 중앙부에는 강변의 풍경과 누각이 자리잡고 있다. 강변에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안개에 가려 지붕만 보이는 독서당(讀書堂)을 확인할 수 있고, 계회는 독서당이 바라보이는 한강에서 관복을 입은 참석자들이 흥겨운 뱃놀이를 하는 모습으로 표현됐다. 독서당(讀書堂)은 중종 12년(1517) 한강 연안 두모포에 신축되어 사가독서에 사용되었으며, 임진왜란 중에 소실될 때까지 학문 연구 등의 기능을 담당했다.
그림 하단에는 참석자 12인의 호와 이름, 본관, 생년, 사가독서한 시기, 과거 급제 연도, 계회 당시의 품계와 관직 등이 기재되어 있다. 참석자들은 1516년부터 1530년 사이에 사가독서한 20~30대의 젊은 관료들이다. 그림은 1531년경 한강 동호(東湖) 일대 실경 묘사가 단연 압권이다. 인재(忍齋) 장옥(張玉, 1493-?), 노암(魯庵) 홍서주(洪叙疇, 1499-1546), 동애(東崖) 허자(許磁, 1496-1551), 희재(希齋) 임백령(林百齡, 1498-1546), 규암(圭庵) 송인수(宋麟壽, 1499-1547), 졸재(拙齋) 송순(宋純, 1493-1582),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 1495-1554), 척암(愓庵) 이림(李霖, 1501-1546), 수암(守庵) 허항(許沆, 1497-1537), 동강(洞江) 신석간(申石澗, 1493-?), 십성당(十省堂) 엄흔(嚴昕, 1508-1553), 간재(艮齋) 최연(崔演, 1503-1549) 등 12명이 참석했다. 그 중 청백리이자 백운동서원을 설립하여 서원의 시초를 이룬 주세붕(周世鵬, 1495-1554), 성리학의 대가로 추앙받았으며 '규암집(圭菴集)'을 저술한 송인수(宋麟壽, 1499-1547), 약 50년 간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시문에 뛰어났던 송순(宋純, 1493-1582) 등의 관료들이 주목할 만하다. 송인수는 1543년(중종38) 전라도관찰사로 좌천됐다. 관찰사로 있을 때 영암에 ‘기영정(耆英亭)’을 세우고, 이곳에서 면앙정(俛仰亭)송흠(宋欽)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 또 남평현감(南平縣監)유희춘(柳希春), 무장현감(茂長縣監) 백인걸(白仁傑) 등을 불러서 학문을 토론하기도 하였다. 1544년(중종39) 형조 참판이 되어 동지사(冬至使)로서 중국 북경에 다녀왔는데, 명나라 사람들이 그의 고결함를 보고 ‘빙옥(氷玉)’이라고 칭찬한 바 있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