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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이문건, 신잠이 그린 대나무 그림을 보고 지은 화죽십영(畵竹十詠, 畵作十詠)을 짓다



[인문학 스토리] 여러분들의 희망이 우후죽순처럼 아주 크게 ‘쭉쭉(竹竹)’ 반듯반듯하게 커 가소서.

-이문건, 정읍 무성서원에 배향된 신잠이 그린 대나무 그림을 보고 지은 화죽십영(畵竹十詠, 畵作十詠)을 짓다

묵재(默齋) 이문건(李文楗,1494~1567)은 시서화(詩書畵)에 상당한 식견이 있는 인물입니다. 이문건은 1545년(을사년) 이문건은 성주(星州)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23년 동안 시서화의 문예활동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이문건은 1545년 농서공족보(隴西公族譜)를 필사했습다.
1547년 안봉사에 안치돼있던 이장경, 이조년, 이포, 이인민(이상 현존), 이직, 이사후, 이숭인등 그 선조 7명의 초상화를 모사해 농서공족보에 부착했습니다.
이 초상화는 현재 제작연도가 확실한 초상화중에 연도가 가장 앞서며 사의전신적(寫意傳神的) 기법을 적용했습니다.
신잠(申潛, 1491∼1554)은 묵죽화(墨竹畵)를 잘 그렸으며 그를 예찬하는 시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실물은 1폭만 발견됐습니다.
신잠의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원량(元亮), 호는 영천자(靈川子) 또는 아차산인(峨嵯山人)이라고 하며 아차산에 은거할 때 시와 서화에 몰두했습니다.
시·서·화 의 삼절(三絶)로도 유명합니다. 20여 년의 유배 생활을 끝냈을 때 신잠의 재능을 아까워한 임금의 배려로 태인 현감과 상주 목사를 지냈습다. 그때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부모같이 따랐으며 조정에서는 청백리(淸白吏)의 칭호를 내렸습니다.
태인신잠선생영상은 전북 민속문화재 제4호로 지정됐습니다. 영상(影像)은 부처나 사람의 모습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나타내는 바, 신잠선생의 영상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조각상은 모두 나무로 만든 입상으로, 화려한 색을 칠하였고, 조각방법도 매우 정교합니다.
제작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매년 정월 초하루와 대보름날이면 이곳에서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합니다.
정읍 신잠비는 문화재자료 제105호 지정됐습니다. 이는 중종 39년(1545)에 만든 것으로, 그의 공을 잊지 못한 이곳 주민들이 후대에 널리 전하고자 세워 놓은 것입니다. 비는 높은 받침돌 위에 비몸돌을 세웠는데, 비몸돌의 윗변 양 모서리를 깍아 둥글게 처리했습다.
비문은 비바람에 글씨가 많이 닳아 있어 내용을 알아보기 어려우나, 신잠의 공을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문건의 '묵재집'도 신잠이 그린 대나무 그림을 보고 지은 화죽십영(畵竹十詠, 畵作十詠)이 실려 있습니다.
이문건의 묵재집(默齋集)에 '신장원잠원렁소화 적거장여시 송구지지(申壯元潛元亮所畵 謫居長與時 送紙求之)'가 보입니다. 장원을 한 원량 신잠이 그린 것을 귀양살이 하는 집에 오래도록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종이를 보내와 요구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문건은 화죽십영에서 쌍죽(雙竹), 고죽(孤竹) 등 10가지 형상의 대나무를 그린 그림을 보고 10수의 시를 지었습다. 그러면서 신잠이 그린 이 대나무 병풍이 남아 전해오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정기는 꺾이거나 구부러짐이 없는데
본래부터 냉엄함을 견뎠네
참으로 고죽군(孤竹君)의 아들 되어
다만 홀로 서리 내린 모서리에 뾰죽히 섰네(쌍죽, 雙竹)

'고죽군의 아들은'은 백이와 숙제 형제를 가리킨다. 사기 권61 백이숙제열전에 '백이와 숙제는 고죽군의 아들이다'고 했다. 여기서는 대나무(雙竹)가 돋아난 모양을 비유했다.

풀도 아니고 또 나무도 아닌데,
속은 비었어도 다시 마디는 곧도다
소소히 격조와 운치가 높아,
홀로 빼어나 속세의 기미가 없도다(고죽,
孤竹)

굳센 마디 곧곧함을 버리기 어렵고,
마르고 시들더라도 어찌 이미 없어지겠느냐?
봄바람이 도리어 힘을 빌려주어
뿌리 위쪽 죽순이 아롱져 돋아나네(노죽
老竹)

덩어리진 뿌리 비와 이슬을 맞아,
선후로 아들 손자 싹 돋아나네.
낭간(琅玕)이 잘 자라도록 보호해주니,
무럭무럭 후손이 무성하네.(눈죽, 㜛竹)

많은 무리 가운데 있어도,
남의 마음에 대해 방자하게 올리지 말라
조물주 참으로 시기심 많은데,
바람에 꺾이어도 숲에서 빼어나네.(절죽, 折竹)

영광과 쇠퇴 모두 만물의 이치,
너는 홀로 어찌 탄식하느냐?
이건 순전히 곧은 성품 때문이니,
은근히 그림에 올리네.(고죽, 枯竹)

아침 되어 비 맞은 대나무 보니,
짙 푸르고 기름이 자르르 윤기나네.
고고한 사람이 머리 감으며,
머리를 숙이고 들어 올리지 않눈 것 같네.(우죽, 雨竹)

썰렁한 가지 끝 아래로 달빛이 지고,
한 무더기 맑은 구름이 감싸네.
잎새마다 가을 이슬이 맺혀,
구슬 빛이 알알이 빛나네.(노죽, 露竹)

특이한 인물 영천자(靈川子),
붓 들어 풍죽에 붙이네.
신들린 사람처럼 휘두르니,
기풍의 수준을 의연히 볼 수 있네.(풍죽,
風竹)

눈이 그윽한 대나무 흰빛을 누르고,
구름이 걷히어 달빛이 훤하네.
썰렁한 나무 가지 개인 경치 찾으니,
아우러 십분 청아하도다(설월죽, 雪月竹)

이렇듯 대나무 그림을 보고 10수의 시를 지은 시은 사례는 처음인 듯합니다.
따라서 이문건의 '화죽십영'은 사의전신적(寫意傳神的) 기법을 시에 적용해 그 비유적 표현미가 높은 화죽시(畵竹詩)로, 동시대와 후대 화죽시 가운데 에서 최우수이라고 그 의의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대바람소리 들리더니 소소(蕭蕭)한 대바람 소리 창을 흔들더니 소설(小雪) 지낸 하늘을 눈 머금은 구름이 가고 오는지 미닫이에 가끔 그늘이 진다. 국화 향기 흔들리는 좁은 서실(書室)을 무료히 거닐다 앉았다, 누웠다 잠들다 깨어 보면 그저 그럴 날을 눈에 들어오는 병풍의 낙지론(樂志論)을 읽어도 보고 그렇다! 아무리 쪼들리고 웅숭그릴지언정 ‘어찌 제왕의 문에 듦을 부러워하랴’ 대바람 타고 들려오는 머언 거문고 소리’

신석정시인의 ‘대바람소리’는 살창 너머로 서걱서걱 바람에 댓잎 부대끼는 소리를 그리고 있으면서, 중국 후한 때 중장통이 전원에서 자유롭게 사는 행복을 노래한 ‘낙지론’을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세상 풍경은 전쟁에 패퇴한 군대처럼 어수선하고 인생은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덧없지만 저도 ‘낙지론’을 펼쳐놓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라앉습니다. 아무리 쪼들리고 위축되어도 작은 행복에 만족하며 자유롭게 사는 인생을 꿈꿔 봅니다.
비 개인 하늘에 소슬한 바람들어 달빛에 노니는 듯 하루 해 저물어도 봄이면 대바람 소리에 죽순의 꿈이 불쑥불쑥 솟아납니다.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청량한 대바람과 댓잎의 사각거리는 소리를 듣노라면 기분 또한 상쾌해지곤 합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는 풍죽(風竹), 비에 함초롬히 젖은 대나무는 우죽(雨竹), 눈을 머리에 인 대나무는 설죽(雪竹)이다. 어린 대나무는 신죽(新竹) 또는 치죽(稚竹), 늙은 대나무는 통죽이라고 하지요.
저는 종종, 도산서원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낙강에 비치는 달빛을 보고, 대바람에 섞여 오는 소쩍새 소리를 듣고, 퇴계가 밟았던 곳을 골라 디뎌보며, 금방이라도 대바람 소리가 새어나올 것 같은 소쇄원의 죽림(竹林), 그 옆에 서서 한 점 청정한 고요함과 한가함을 맞이하곤 합니다.
서슬 시퍼런 권력의 칼날에도 무릎 꿇는 비겁한 선택을 하지 않고, 학처럼 고고하게 세속의 모든 그리움, 그 안에 묻어 두고 대잎을 싹틔우며 하루하루를 진지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다짐일 터 입니다.
‘싸아악~ 싸아악’ 선비의 바지런한 발걸음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한데, 소쇄원에서 살다간 양산보의 유훈으로 인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듭니다.
“어느 언덕이나 골짜기를 막론하고 나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이 동산을 남에게 팔거나 양도하지 말고 어리석은 후손에게 물려주지 말라”
500여 년의 세월이 쏜살같이 흘렀건만 학처럼 고고하게 살다간 한 선비의 체취가 여름날에 뿌려지는 소나기처럼 흠뻑 묻어납니다.
이 봄, 대나무를 직접 찾아가렵니다. 건강한 웃음 푸른 대나무에 희망 가득 담고서. 감히 초록 융단을 펼쳐놓은 웃자란 청보리보다 더 시원한 봄기운을 선사하는 게 대나무. 그대여, 바람 부는 대숲에서 귀를 기울이시라.
대나무는 속이 텅빈 것 같으나 실상은 속이 꽉차 실속이 있으며, 갈라질 때는 양단간의 구분만 있을 뿐. 대나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길쭉하게 솟아 올라 머리 위를 뒤덮고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를 자랑하는 연유입니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마구 흔들리지만 부러지지 않는 것은 땅속 깊이 내린 든든한 중심 덕분은 아닐런지요.

옛 이야기에서 비밀을 발설하던 숲이 왜 하필 대나무숲이었을까요. 그건 아마도 대숲이 다른 어떤 숲보다 많은 소리를 가지고 있어서 일테고, 나이테를 만드는 나무들과 달리 그 속에 아무것도 담지 않는 것 또한 이유일 것입니다. 대나무의 속은 비어 있지만 덧없지 않습니다. 속을 비워놓아야, 버려야 채워지지 않겠습니까. 채워도 채워도 부족한 게 우리의 삶 일찌니. 하지만 위아래로 마디가 있습니다.(竹有上下節)

백낙천은 양죽기(養竹記)를 통해 대나무의 속이 빈 것과 위아래의 마디는 선가의 무심과 절도있는 생활을 나타내면서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고 달이 물밑을 뚫고 있으나 수면에 흔적 하나 남기지 않습니다’

지조 있는 선비는 풍진세상에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지요. 선비에게 풍진세상이 시련이라면 대나무는 바람입니다. 모진 풍파에 선비가 그렇듯 대나무도 한결같습니다.

전주 경기전 대밭에는 올곧은 선비의 결기같이 솟은 대나무가 봄바람에 흔들리면서 서늘한 소리를 떨굽니다. 밤이면 태조로의 밤을 수놓는 청사초롱 하나둘씩 불을 밝혀 반짝반짝. 댓잎 사이로 산산이 부서지는 아침 햇살이 오늘따라 눈이 부실 정도로 황홀한 내 심사.

‘한 병의 술을 가지고 꽃밭에 들어가/친구 한 명 없이 술을 마실 때 잔을 들어 저 달을 맞이하니/그림자 대하여 세 사람 되었구나/ 달은 술을 마실 줄 모르고 나만 취하였네....'

소쇄원 담벽, 흰 바탕에 여덟 자의 ‘소쇄처사 양공지려(瀟灑處士 梁公之廬)’라는 검정 글씨는 ‘회사후소(繪事後素)’ 즉,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이후에 한다’는 공자의 말을 현실화한 징표를 떠올리게 하나니. 기본이 없으면 제아무리 재주를 부려보아도 사상누각이 되기 쉬운 만큼 본질 또는 밑바탕을 청아하게 하라고 하니, 숱한 인고의 시간은 거센 비, 바람과 싸우며 끝내 소중한 대나무로 다가섭니다.

색즉시공. 낮은 저음으로 지옥 중생에게 까지 부처의 법음(法音)을 전해준다는 범종 소리는 가슴 밑 바닥 무뎌진 감수성을 적시는 단비요, 메마른 내 가슴에 꽃비가 됩니다.

그대여! 너무 무겁지 않은가요, 탐욕과 성내며 사는 인생길이여. 만행(卍行). 후드득! 산사의 바람이 연주하는 풍경 소리에 꾸벅꾸벅. 그 소리, ‘땡그렁 땡그렁’ 여울져 사바의 세계에 그윽히 울려 퍼집니다.

푸른 댓잎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은 에메랄드빛처럼 참으로 곱기만 합니다. 대나무의 꽃, 나는 지금 일상에 지쳐있는 당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희망이 우후죽순처럼 아주 크게 ‘쭉쭉(竹竹)’ 반듯반듯하게 커 가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