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스토리] 용성(남원)의 성아래에서 우연히 만나 손을 잡고 서로 보며 옛적을 생각한다
조찬한(趙纘韓)의 '한양협소행 주증라수양(漢陽俠少行 走贈羅守讓)'-
서울의 협객 나수양을 남원에서 만나다
나공(羅公)의 5 형제가 모두 평상시의 협객인데 수양(守讓)씨만 홀로 호남에 낙척(落拓)하여 나를 임실에서 보았다.
등불 아래에서 붓을 잡고 달리듯 써서 주다.
羅公五兄弟皆平時俠客,
而守讓氏獨落湖南, 見我於任實.
燈下把筆走贈.
'서울 태평성대 200년이라
도읍의 남녀는 풍요롭고도 훤칠하네.
집집마다 부유해 밥이 고봉밥이네.
밝게 치장하여 환하고 시끄러운 노랫소리 불러오네.
대궐문 밖에 협객의 소굴을 헤아리니
정씨 세 명과 나씨 다섯 명이 최고라네.
날숨은 무지개 같고 소리는 우레 같으며
큰 바지에 느슨한 띠로 서로 배회한다네.
3월이라 앵두꽃이 궁궐에 가득하니
송현 모퉁이에서 아리따운 이들 납치한다네.
주점에서 술을 찾아 고주망태처럼 취하고선
졸렬한 소인배들과 닭과 돼지처럼 싸워
단오의 좋은 계절에 각저 놀이를 좋아하니
힘이 임비와 같아 맘대로 꼬꾸러뜨리네.
무창과 풍천의 허씨와 이씨는
높은 말로 종루 거리에서 뛰어나와
자웅 다투고 사나움 겨루려 칼을 빼어 겨루니
소리의 기세가 하늘을 당겨 세상의 먼지가 일어나네.
무창의 허씨와 이씨가 범이 포효하는 듯해도
명성은 나씨를 벗어나지 못하지.
이때에 막내 나씨의 나이 가장 어려여러 호걸 지휘하는 것이 아이 장난치는 듯했네.
개를 죽이고 돼지 잡길 날마다 이어져
봄바람이 끝이 없는 날이나 가을밤 달 뜬 날이나
복날이나 섣달이나 날카로운 기운이 더해져
재갈을 잇고 소매를 공유한채 다투어 돌진하며 달리네.
남의 집 10길 담장 넘어 평지처럼 성을 오르락내리락 하네.
고위관직의 집에 절세가인을 보쌈해 나오고
제나라 개 뿐만 아니라 여우 털가죽 훔치네.
서울을 거꾸러뜨려 두렵기가 승냥이 같으니
곽해처럼 날쌔고 사나움을 누가 대적하리?
하루아침에 왜구가 서울과 평양과 개성의 삼경을 짓밟아 서울의 문물이 연기가 되고 티끌이 되며 더럽혀졌네.
호협하던 협객들도 연기처럼 흩어져
호남땅에서 굶주리고 추위에 시달리며 흘러다니니
많던 호협한 이들 열에 하나도 없는데
다만 두 명의 나씨만이 표류하길 부평초처럼 하는 구나.
지금은 머리와 수염이 이미 세어버렸고
천리마도 노쇠하여 고달파져 근력마저 없다네.
용성(남원)의 성아래에서 우연히 만나
손을 잡고 서로 보며 옛적을 생각했네.
아! 아!
집에서 원수를 갚고 망명한 이를 숨겨주리니
후생은 비록 늙었더라도 상객으로 여겼으니.
그대 보지 못했나?
시간이 흘러 진무양 얼굴색이 변한 것을.
어렸을 적 혈기와 용맹을 어찌 족히 책망하리오.'(玄洲集' 卷之二)'
이 시는 16세기 말 서울의 임협(任俠)을 그린 내용으로, 당시의 시정세태의 일면을 엿보게 합니다.
조찬한은 남원출신으로, 무오년(1618년, 광해군 10년) 2월에 형님 조위환이 서울에서 식구들을 데리고 남원(南原)에 잠시 와 살게 되었습니다.
동생 현주공(玄洲公) 조찬한(趙纘韓) 이 또한 토포사(討捕使)로서 삼남 지방을 다스리고자 먼저 남원에 와 있어 서로 떠돌아다니는 중에 다행히 만나게 되니, 아주 기이한 일이었습니다.
이 시는 협객 중의 한 사람이었던 나수양(羅守讓)에게 지어준 형식입니다. 시의 현재는 임진왜란 직후의 어느날, 시를 쓴 장소는 전북 임실입니다.
그런데 서사의 화폭이 펼쳐진 시공은 임진왜란 직전의 서울 성중입니다.
작품은 서두에서부터 무사안일로 사치 향락에 젖은 분위기를 소개하면서 특히 협객들의 소식과 활동상을 들려줍니다.
이른바 삼정오라(三鄭五羅)의 명성이라든지, 시정에서 호기를 다투고 우쭐거리며 노는 정경이라든지 모두 진기하고 재미난 사실로 엮입니다.
그러나 작품은 한낱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흥미로운 세태를 펼쳐 보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협객들의 활동상을 서술한 다음 “저처럼 용맹한데 누가 감히 대적할까[郭解精悍人誰敵]?”라고 일단 찬탄의 말로 정리를 합니다.
바로 이어 왜군의 침략을 받게 되는데 “으스대던 협객들도 연기처럼 흩어지니[豪華任俠散如煙 ]”라고 정작 용맹을 발휘해야 할 자리에 당해서 무력했음을 뚜렷이 인식케 합니다.
7년 전란의 어려움 속에서 침략군을 몰아내고 조국을 수호한 것은 우리 민족의 자랑입니다. 하지만 침략군이 "하루아침 섬놈들이 삼경을 짓밟으니 / 한양성 번화 문물 잿더미로 변했구나[一朝海寇蹵三京 漢陽文物煙塵腥]”라고 시인이 몹시 개탄했던 그 책임과 과오를 엄중히 따져 물어야 옳았습니다.
또한 각기 자기반성도 있어야 할 일입니다. 작품의 주제는 안일에 젖었던 데 대한 자기반성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시인은 시를 주는 인물, 나수양에 대해 의기를 북돋는 말을 결말에서 덧붙입니다.
원수를 갚는 그날에 그대는 늙었으되 참으로 지모와 용기를 내보라는 의미입니다. 시인의 의식의 저변에는 적개심과 원수에 대한 응징의 정신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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