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스토리]"영웅호걸은 주색을 좋아한다는 말이 맞나요.
-뱀에게 제문을 올린 종실 파성령
조선 선조 임금 무렵 종실 파성령(破城令)은 각지로 돌아다니며 여색에 빠져 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이별하는 기녀들과의 눈물은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전라도 남원에서 또 며칠을 놀았습니다. 관기 무정개(武貞介)가 그를 따르며 여러 가지로 아양을 떨었습니다.
“진사 나리, 낭군과 한번 이별하면 소녀는 살맛이 없소이다. 아주 데리고 가주세요.”
“데려가고 싶지만 종실이 지방의 관기를 데려다 산다고 하면 국가에서 걱정이 대단할거야.”
“진사 나리, 소녀는 못 기다립니다. 이별한 후 이 몸이 죽어서 뱀이 되어 낭군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녀는 따라가겠다고 속여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파성령은 매우 감격하여 슬퍼했습니다
파성령은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다음에 다시 와서 데리고 간다고 간곡히 다짐하고 떠났습니다. 여기저기를 들러 공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목사 정희현(鄭希賢)은 파성령이 남원에서 기생과 이별할 때 나눈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파성령이 공주 관아로 들어와 정목사를 찾았습니다. 구면이었습니다.
“아이구, 파성령, 오래간만에 뵈옵니다. 어려운 출입을 하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정 목사가 반가이 대해주었습니다.
멀리서 온 손님이라 하여 주연상을 차리고 대접했습니다.
정목사는 파성령이 앉을 자리 밑에 거의 죽어가는 뱀을 미리 숨겨놓았습니다. 술이 돌아가고 관기들의 노래와 춤이 어울려갈 때 파성령은 남원에서 이별한 기생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혹시 자기를 그리워하다 죽지는 않았을까 하고 골똘해 있었습니다. 술이 돌아가고 취흥이 도도해지자 정 목사는 파성령의 자리 옆으로 가 술을 권했습니다.
정목사는 금강에서 잡은 잉어를 가져오며 여러 관기를 시켜 술을 권했습니다.
파성령도 이제 술이 들어가자 취흥이 도도해졌습니다. 이러한 기회를 이용해 정 목사는 자리 밑에 숨겨둔 뱀의 꼬리를 슬그머니 꺼냈습키다. 파성령이 이것을 보았습니다. 목사는 진노한 듯 소리쳤습니다.
“여기 괴상한 물건이 있구나. 손님 앞에 이게 웬일이냐? 잡아 없애라!”
하인이 들어와 파성령이 앉았던 자리에서 뱀을 잡아 내리쳤습니다. 거의 죽은 뱀인 까닭에 꿈틀거리다가 죽었습니다.
파성령은 한탄해 마지않았습니다.
“죽었구나. 드디어 가고 말았어. 네 말이 참말이구나.”
“왜 그러시오?”
“미물이라도 사실은 사람의 원한이 붙어 있구려.”
술상이 끝난 후 파성령은 죽은 뱀을 남원 기생 무정개의 영혼이라 하여 자기가 입고 다니던 속적삼으로 싸서 객사 근처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제문까지 지어 제사를 지내주었습니다.
정 목사는 자신이 장난한 것을 파성령은 참인 줄 알고 정중히 대하니 웃을 수도 없었습니다. 단지 ‘파성령이 상당히 미쳤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상사뱀(想思蛇)의 전설을 정말로 여긴 파성령이 애처롭기까지 했습니다.
파성령이 입고 있던 웃옷을 벗어 뱀을 싸서, 잘 묻어 달라고 하고 제사를 모시니 보는 사람들이 모두 웃었습니다.
지난 날 우리 선조들은 술과 여자와 도박, 즉 주색잡기(酒色雜技)를 패가망신(敗家亡身)의 근원이라 하여 경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술은 과음하면 건강을 해치기 십상이고 여색(女色) 또한 탐닉하면 몸을 버리기 일쑤이며 잡기에 빠져들면 영락없이 가산을 탕진해 쪽박을 차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속담에 “주색잡기 밝히는 놈 치고 패가망신 않는 놈 없다”고 한 것도 바로 그런 연유에서입니다.
주, 색, 잡기 세 가지는 모두 말초적 신경을 자극해 쾌락에 빠지게 함으로써 손을 떼지 못하는 중독성을 갖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때문에 이것들은 한번 빠져들면 좀체 헤어나기 어려운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는 “영웅호걸은 주색을 좋아한다”는 근거가 불분명한 속설이 공론이 되어있고 그것이 마치 남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로 잘못 인식되고 있습니다. 모르면 모르되 술 잘하고 여색에 능한 한량(閑良)들이 만들어 낸 말이 아닐까요.
그러나 세 가지 중 어느 것이라도 사회통념상 도를 넘어서는 안됨은 물론이고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도 안 됩니다. 아무리 즐거운 일이라도 그것이 전제조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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