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칠보 무성서원은 유학의 비조인 고운 최치원선생을 주벽으로 모신 곳으로, 조선 성종 15년(1483)에 창건돼 숙종22년(1696)에 지금의 이름으로 사액을 받았다.
사액은 강당 중간에 걸려 있는데 서체는 해서로 쓰여 있으며 필획이 정갈하게 되어 있다. 그 후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전북에서 유일하게 정통성과 당위성을 인정받아 훼철되지 않았고, 좋은 풍속과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근래에는 무성서원의 가치를 인정받아 안동의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영주의 소수서원, 경주의 옥산서원, 대구 달성의 도동서원, 경남 함양의 남계서원, 전남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지난해 12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상태이다.
무성서원에는 여러 개의 편액과 주련이 있다. 우선, 제향공간의 기능을 하는 태산사 편액이다. 이 편액은 좌수체로 석전 황욱이 썼는데 마치 쟁기로 자갈밭을 갈듯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에서 기가 응축됨을 느낄 수 있다.
무성서원 정문에는 현가루편액이 해서로 쓰여져 있다. 낙관을 살펴보니 갑진년에 태인군수를 역임했던 손병호 글씨이다. 승정원일기를 통해 손병호는 1901년 10월 10일 태인군수로 임용되어 1902년 8월 30일 전라북도균전사무를 겸임하였던 것으로 보아 편액은 이 재임시기인 1904년에 썼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100년 이상의 세월을 지켜왔고 1906년 병오년 무성서원 창의와 일제시대, 그리고 6.25를 거치면서도 용케도 잘 견디어 냈다. 정3품 손병호(개명 손병수)는 1907년 조경단 주룡의 무너진 곳을 보축할 때 공적이 있어 조경단 수봉관 이현기와 함께 시상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는 인물이다
현가루는 ‘거문고와 비파처럼 줄이 있는 현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한다’는 뜻으로, 천자문의 현가주연 접배거상(絃歌酒? 接杯擧觴:현악기로 노래하고 술로 잔치하고 잔을 잡고 권함)이란 문장과 상통하고 있다.
즉, 이곳은 불우헌 정극인이 동중향음주(洞中鄕飮酒)라는 친목계 단체를 만들어 고현향약을 만들었고, 이후 후대인들이 이곳 현가루에 올라 멀리 시산을 바라보고 상춘곡을 읊조리며 향음주례를 실시했을 것으로 본다.
거문고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필수품중 하나가 되었고 ‘이 지방에선 선비들이 비록 줄이 낡아 끊어지면 서재 벽에 걸어두고 마음속으로 연주하기도 하였다’고 하나니. 이처럼 거문고는 공자의 음악관이 후대까지 전승된 가운데 정신수양을 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것같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현가루에 오르면 마루 바닥에 경전을 공부하던 학동들이 훈장님 눈을 피해 고누놀이를 하는 그림판이 있는데, 아마도 후대에 그려진 것이지만 전통민속놀이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무성서원 건물의 구조는 현가루를 통과하면 강당 그리고 내삼문, 태산사가 있으며, 동쪽으로 양수재가 있으며 서쪽으로는 선정비가 2점이 있다.
또 여러 곳에 석촌 윤용구의 주련이 걸려 있다. 석촌은 일제시대 일본 천왕이 작위를 주었지만 끝내 거부하고 전국을 주유하며 글씨를 남긴 문장가요 서예가이다. 그는 지조있는 인품처럼 마치 칼로 선을 긋는 것 같은 석촌체는, 서품의 격이 높아 단번에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양수재에도 여러 편액에 걸려있다. 주련으로는 중국 3대의 하나인 하나라 시대 하우전글씨가 보인다.
하우전은 전서 중에서 아주 기괴한 글씨로 글자를 판독하기 힘들지만, 아마도 하우전글씨체로 주련을 한 것은 우님금의 정치와 왕위선양을 후대인들에게 본받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된다. 서원 주변에는 대동천자문의 저자인 김균이 지은 무성서원묘정비를 비롯, 서호순불망비, 신용희불망비, 김직술선정비, 최영대불망비, 김인기불방비, 병오창의기념비 등이 있다.
무성서원은 고운 최치원선생이 신라말 태산군수로 재임하면서 남긴 유풍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서원에 향사하고 있는 사람은 최치원, 신잠,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 등으로, 이들은 모두 역사나 문학사적인 면에서 두드러진다.
태산사 중앙에는 현재 석지 채용신이 그린 고운 최치원상이 모셔져 있다. 그러나 자료를 보니 과거에 중앙박물관에서 구본을 수리해 준다고 가지고 가서 지금까지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는 만큼 하루 빨리 무성서원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성서원은 전라도 선비정신의 원천지이다. 선비는 나라가 위급하면 정신과 몸을 하나로 일원화시키고 경우에 따라서는 육체를 과감히 내던지기도 한다.
1906년에는 면암 최익현과 둔헌 임병찬, 그리고 춘우정 김영상의 주도로 일제 침략에 항거하며 병오창의를 일으켜 많은 의병들이 전투에 참여했으며, 순절했다.
현가루에 올라 전라도의 절의정신과 향음주례를 음미해보고 고현향약의 미풍양속이 전세계로 전파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진돈 전라금석문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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