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출신 황윤석(1729~1791)과 정철조(1730~1781)의 우정이 기록된 <팔도지도>도 눈길을 끈다. 황윤석의 ‘이재난고’는 1700년대를 살아갔던 한 지식인이 겪은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소중한 역사적 자료이다. 1768년 8월 23일의 일기는 지도 제작자였던 정철조(鄭喆祚, 1730-1781)를 만나는 장면이 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아침식사 후 당직을 마치고 나왔다. 이자용, 이윤보 형제를 차례로 방문하였다. 이윤보와 함께 붓동(서울 필동)의 가장 높은 곳까지 가게 되어 참판 정운유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정 참판의 큰 아들인 정철조와 서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본래 이윤보와 정군은 친한 사이여서 내가 (자신의 집에) 왕림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한다. 정군이 말하길 “오래도록 선생님의 명성을 우러르며 한번 만나 뵙길 원하였는데, 지금 어찌 먼저 왕림해 주셨는지요!”라 했다. 내가 그의 나이를 물어보니 경술년생(1730년) 이라고 하였다”
정철조라는 인물은 지도보다는 사실 벼루와 그림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심지어 자신의 호를 벼룻돌에 미쳤다는 의미로 ‘석치’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같은 서울에 살고 있는 황윤석의 학식이 높다는 소문을 듣고 정철조가 중간에 다리를 놓아 만나게 된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지도만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둘 모두의 능력이 너무도 탁월했고 사람들은 그들의 가치를 몰라 주었다. 그런 울분에 찬 두 천재가 만났던 첫 날의 기록이다. 하지만 정철조는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만다.
'알고 보면 반할 지도-박물관 큐레이터가 들려주는 신비로운 고지도 이야기(지은이 정대영, 출판 태학사)'는 지리학 박사인 현직 박물관 학예사가 들려주는 우리 고지도 이야기이다. 20편의 이야기에서 독자들은 옛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지도를 그렸고, 지도에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 어떤 역사적 ‘사연’이 담겨 있는지를 만나게 된다. 막사발처럼 소박한 동람도부터 저잣거리에 만발한 복사꽃과 나룻배 안에서 대화하는 사내들을 담은 전라도 무장현 지도까지 고지도의 갖가지 매력이 가득하다.
보물로 지정된 19세기 중반 '완산부지도'는 10폭 병풍으로, 마치 풍경화처럼 전주에 있던 건물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진산(鎭山·고을 뒤쪽에 있는 산)에 해당하는 산을 위쪽에 배치하다 보니 북쪽이 왼쪽을 향한 점도 특징이다. 이 지도는 건물과 성벽, 주변의 논밭과 하천, 그 땅을 따스하게 에워싼 산지의 모습이 어색함 없이 조화를 이룬다. 특히 민가까지 세세하게 그려 넣은 화원(畵員)의 솜씨와 정성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1850년에는 지도와 지리지의 결합을 시도하다 포기한 김정희의 '동여도(東輿圖)'는 각 지역의 복잡한 행정구역까지 색색의 선으로 표기했다. 현재 섬으로 불리우는 십이동파도, 장자도, 선유도 등이 모두 '봉우리(峰)'로 표기됐다. 선유도의 망주봉(望柱峰)이 망주암(望柱岩)으로 표기되어 있는것이 이채롭다.
1621년 조위한(1567~1649)이 쓴 소설 ‘최척전’은 전쟁으로 뿔뿔이 흩어진 가족이 기적적으로 재회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에는 남원 등 조선 외에 일본, 중국, 베트남, 만주까지 무대로 등장한다. 광해군 때 작가가 이 먼 곳들을 어떻게 상상하고 소설에 담아냈을까.
1600년대 조선에서 유행한 ‘천하도’는 하나의 원 안에 담아낸 세계지도다. 동아시아 일대는 제법 정확히 그렸지만 세계의 변방은 눈이 하나인 사람들이 사는 일목국, 작은 사람들이 사는 소인국 등으로 상상을 담아 그렸다. 지은이는 "이는 당시 제작된 수많은 천하도를 ‘유럽의 지도가 유입되면서 지리 정보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가 확대된 결과’"로 해석한다.
부안읍지에 수록된 '부안읍지도(1877,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는 지도의 내용은 간략하지만 산과 하천, 주요 동네 등을 파악하는데 손색이 없다. 격포진, 위도진, 비안도, 계화도, 두리도 등이 보인다.
'1872년 지방지도' 가운데 전주지도는 오방색 등을 사용했으며, 전문 화원들이 만들었다. 현대적인 감각과 산뜻한 색, 지도 본연의 가치인 지역에 대한 묘사가 일품이란 평가를 받는다.
전라도무장현도(全羅道茂長縣圖, 19세기)'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문화유산으로, 당시 무장현에 있던 무장읍성의 내부가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등 지도를 통해 당대의 풍경과 생활사까지도 엿볼 수 있다.
19세기 전라도 무장현을 그린 지도로, 지도의 여백에는 사방 경계까지의 거리, 민가의 수, 논밭 등의 자료가 적혀 있다. 읍성 남문 앞과 읍성 안쪽에는 시장도 그려져 있다. 서쪽 해안의 심원죽도(心元竹島)에는 전죽봉산(箭竹封山)이 그려져 있는 바, 대나무만을 별도로 관리하던 봉산(封山: 나라에서 나무 베는 것을 금지하던 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고기를 잡던 전통적인 도구들이 그려져 있는 것은 다른 지도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다. 아울러 선운산 근처에는 선운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도 특징의 하나다. 산지는 회화식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산을 독립적인 형태로 그렸다. 남문 앞쪽에는 남산 솔숲의 울창한 모습이 강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버드나무와 복사꽃이 활짝 핀 모습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어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일동면에는 이석탄(李石灘)의 신주를 모신 충현사(忠賢祠)가 그려져 있는 모습이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순창출신의 조선 영조 때의 유명한 실학자인 신경준(1712∼1781)이 그린 '강화도이북해역도'는 북방강역도보다 3배 이상 큰 크기로, 가로 272cm, 세로 83cm이다. 한지에 그렸지만 종이가 훨씬 얇고 워낙 크기 때문에 가로로 3폭의 종이를 붙였으며 세로에도 밑단에 21cm 정도의 종이를 2폭 붙였다. 강화도로부터 왼쪽 압록강 하구에 이르기까지의 크고 작은 섬들의 거리를 오른쪽에 표시해 두었다. 그 상세함과 내용을 볼 때 군사적인 용도로 제작된 게 분명하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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