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신, 임실에서 82원에 초상화를 그리다
"호가 무엇인가." 고종이 채용신에게 물었다. 그가 답했다. "석지(石芝)입니다." 임금은 말을 이었다. "너의 거처가 부안현에 가까운데, (그곳에는) 채석강이 있지 않으냐? 네 성이 이미 '채'이니, 이제 호를 '석강(石江)'이라 한다면 저 채석강과 음이 우연히 합치되어 그 아름다운 이름과 비슷하게 될 것이니, 이 또한 옳지 않겠는가."
1902년 고종은 임금 초상을 그리는 '어진(御眞)화사' 채용신에게 호를 내렸다. 각별한 애정이 느껴진다.
20세기 초 최고의 초상화가로 인기를 누리던 석지(石芝) 채용신(1850~1941)이 전라도에서 한 부농의 아내를 그린 작품이다. 칠순 등 특별한 날을 기념해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1923년부터는 아예 직업작가로 나서 정읍시 신태인읍 육리에 ‘채석강 도화소’라는 공방을 차렸다. 이 공방은 아들 채상묵과 손자 채규영 등과 같이 운영했다. 이 때부터는 주로 사진을 받아 초상화를 주문제작 했다.
“사진이 없으면 출장 촬영도 가능하며 초상화가 실물과 닮지 않으면 책임 지겠다”는 안내문구와 가격표시, 작가 이력 등을 담은 전단지를 배포해 널리 홍보했다.
그의 초상화는 고가에 팔렸다. 쌀 한말(18ℓ)이 3.5원 하던 시절 전신초상 100원, 반신상은 80원이나 받았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이 시기에 생산된다.
이때 그가 도입한 파격적인 방침이 있었으니 ‘정찰가격제’다.
그 시절 이 돈이면 뭘 살 수 있었을까. 소 한 마리다. 1928년 임실에서 소 한 마리를 82원에 거래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그의 초상화 한 점을 받으려면 제법 큰 ‘현금’이 필요했던 거다.
'한국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채용신의 '8도 미인도'에 부안 매창도 있네 (0) | 2022.01.18 |
---|---|
어진 화가 채용신이 그려준 부농의 아내 (0) | 2022.01.18 |
고창의 호랑이 이야기 (0) | 2022.01.05 |
황윤석과 정철조의 우정이 기록된 ‘팔도지도’,‘알고 보면 반할 지도’에 다양한 전북의 모습 나타나 (0) | 2022.01.03 |
전북의 호랑이 그림 대가들 (0) | 2022.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