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보훈옛그림

호랑이 그림의 대가 황종하

 

 

 

호도(虎圖)의 대가 인왕산인(仁王山人) 우석 황종하 (友石 黃宗河)(1887-1952)



1887년 12월 21일 개성에서 벽암 황석일(碧巖 黃錫一, 1849-1903)과 설성(雪城) 김씨(金氏)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호는 우석(友石), 인왕산인(仁王山人), 송악산인(松岳山人)이며 자는 동필(東必)이다. 어려서 형제들(황종하, 황성하, 황경하, 황용하 형제 4명이 모두 그림에 뛰어나 ‘황씨 사형제’라고 불렸다.)과 함께 10여 년 동안 사숙을 통해 한학과 고전을 배웠고, 그림을 스스로 익히는 한편 한시, 양금, 활쏘기를 즐겼다.

1922년 2회 문인협회 주최의 ‘문인서화전’에서 초서(草書)가 입선되면서 서화가로 활동하였다. 1922년 12월 2일 동생들과 함께 고향인 개성의 동본정(東本町) 452번지에 송도서화연구회(松都書畵硏究會)를 열고 학생을 모집하여 서화교육을 실시하였다. 또 12월 개성유지들이 고려미술공업진흥회를 조직하자 동생들과 함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24년에는 전북 군산으로 내려가면서 송도서화연구회를 군산 개복동으로 옮기고 명칭도 서화연구소(書畵硏究所)로 바꾸어 운영하였다.


1936년 서울로 이주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호랑이 그림에 몰두하였으며 광복 이후 그의 호랑이 그림은 외국사절들을 위한 선물용으로 인기가 있었다. 1943년 황해도 연안으로 이주, 6년을 거주했으나, 서울에 머무르던 1950년에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둘째 동생 황성하와 함께 서울에 정착하였다. 1952년 66세로 타계했다.

형제 4명 모두가 서화가로 활동하는 것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아 전국을 돌며 함께 전시를 열었다. 1923년 3월 24일부터 남산 경성미술구락부에서 황성하, 황경하, 황용하와 함께 작품 백여점을 모아 ‘황씨사형제전’을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사형제의 전시가 열렸다. 1923년 4월 19일과 20일에는 인천 산수정 공회당에서 4형제의 작품전람회를 개최하였고, 즉석에서 관람객들에게 휘호를 하여 판매를 하기도 했다.

1924년 5월 황종하, 황용하의 작품을 비롯, 송도서화연구회 학생들의 작품을 포함한 제1회 작품전람회를 개최했다. 1926년 1월에는 군산 공회당에서 ‘황씨 사형제전’이 있었고, 12월에는 마산에서 ‘사형제전’이 열렸다. 1927년 5월에도 군산 공회당에서 ‘황씨사형제전람회’가 열렸다. 1930년 12월에는 군산에서 동아일보와 매일신보의 후원으로 ‘황씨사형제서화전람회’를 개최하였다. 또 고향인 개성지역의 여러 전람회에도 동참했다.

1929년 8월 개성의 유지들이 수집한 당대 개성지역의 명화가의 작품과 고서화를 진열한 ‘송도미술전람회’에는 황종하, 황성하, 황용하의 작품 백여 점이 특별 전시되었고, 1937년 7월 개성 출신 동경 유학생들의 친목 모임인 송경 학우회가 주최하여 개성 중앙회관 강당에서 열린 ‘향토미술전람회’에도 4형제가 함께 작품을 출품했다.

그는 호랑이 그림을 주된 주제로 삼은 작가는 호랑이 그림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당대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았다. 벽사의 상징인 호랑이는 예로부터 우리민족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동물로 인식됐다. 암벽위에 서서 천하를 호령하는 이 작품. 호랑이의 모습은 용맹스러우면서도 위엄이 느껴진다. 또한 그는 수염 하나하나까지 사실적으로 세밀한 표현을 위해 주로 비단에 그림을 그렸으며, 이렇게 그려진 그의 호랑이는 가만히 있는 정적인 호랑이가 아닌 포효하는 느낌을 주며, 생동감이 느껴진다./서보훈 A-옥션 상무

'서보훈옛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석정 이정직  (0) 2019.12.30
유당 김희순  (0) 2019.12.30
진환  (0) 2016.02.28
우향 박래현  (0) 2016.02.14
우당 조중태  (0) 2016.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