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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훈옛그림

석정 이정직


문화란 궁핍한 환경에서는 꽃피기 어렵다. 먹을 것이 풍부하고 삶이 편안할 때, 사람들은 뭔가 가치있는 것,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보고 즐기며 향유하고 싶어한다. 예술가들이 제대로 평가받기는 풍요한 시대, 여유있는 예술애호가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김제는 전국 쌀 생산량 중 40분의 1을 차지, 기초단체 중 최고의 쌀 생산량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곡창지대로, 백제때 쌓았다는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수리저수지인 벽골제(김제 사적 제111호)가 있으며, 벽골제 단지 내에는 1999년 개관한 벽천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예부터 많은 문장가와 명필을 배출해온 김제는 서원, 향교 등을 중심으로 한학이 발달했다.

 김제출신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 1841∼1910)은 매천 황현(1855~1910), 해학 이기(1848~1909)와 함께 근대 ‘호남 삼걸’로 일컫는 인물이다. 김제서단에는 벽하 조주승(1854~1903), 심농 조기석(1876~1935), 유재 송기면(1882~1956), 설송 최규상(1891~1956), 유하 유영완(1892~1953), 운재 윤제술(1904~1986), 강암 송성용(1913~1999) 등이 있으며, 모두 이정직의 문하에서 수학한 서화가들이다.

 석정 이정직은 서, 화, 사상, 의학, 음양오행, 풍수등 다방면에서 옛것의 멋을 살려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으며, 김제 서예, 더 나아가 호남서예와 문인화의 맥을 세운 서화가 이자 학자이다. 그는 중국 동진(307∼365)시대 왕희지의 글씨를 바탕으로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서풍을 보였던 문인예술가다. 사군자와 화훼, 괴석 등의 그림에서도 독자적인 세계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정직의 묵죽(그림 1, 석정 이정직, <묵죽도>, 종이에 수묵, 120 x 30 cm, 개인 소장)은 이간교차법(두개의 가지를 교차하여 그리는 화법)을 사용하였으며, 죽잎은 팔(八)자 모양을 보이며 아래를 향하고 있다. 죽잎의 농담과 대의 표현이 매우 간략하면서도 연약하여 고아한 정취를 나타내고 있다. 대나무 줄기를 작품 우측에 위치하고 자칫 허전할 수 있는 왼편 하단에 화제를 넣어 공간의 구성을 더하고 있다.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표현이 매우 단순하면서도, 단순하지 않다는 느낌을 주고 있으며 연출 구성의 짜임새가 완벽하게 구사되고 있다.이 작품(그림 2, 수운 유덕장, <묵죽도>, 종이에 수묵, 101 x 48 cm, 개인소장, A-옥션 제공)은 수운 유덕장(1675~1756)의 작품으로, 조선시대 묵죽에서 일인자로 손꼽힌다. 좌측에 치중한 구도로 좌측하단에서 시작된 두 개의 대나무 줄기와 듬성한 잎, 종횡으로 전래된 두 줄기, 그리고 동일한 톤의 농묵 등이 단조로움을 전해주나 잎의 길이를 달리해 약간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 그림은 하단에 땅을 나타내고 통이 굵은 두 줄기를 직립하게, 약간 휘어져 각각 배치함으로써 타원구조를 이루었다. 날카롭고 성근 잎은 농묵에 의해 강조되었는데 상단에서 단절된 굵은 줄기와 잘 조화를 이룬다.

 이 작품(그림 3, 해강 김규진, <풍죽도>, 종이에 수묵, 131 x 41 cm, 개인소장, A-옥션 제공)은 해강 김규진 (1868~1933)의 작품으로, 근대시기 대나무를 가장 잘 그린화가로 평가받는다. ‘나이 들어 천수를 누리고 자손이 생기어 또한 면면하네.혹지음하는 사람만나면 가정의 처마 안에 가서 시를 지으리’바람에 흩날리는 풍죽의 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면을 표현하여 아래에서 위쪽 대 끝으로 시선이 이동하도록 표현하였다. 그는 죽순부터 왕죽대까지 표현, 묵죽도의 화려함을 작가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나타낸다.이 작품(그림 4, 석정 이정직, <초서 10곡 병풍>, 종이에 먹, 120 x 30 cm, 개인 소장, A-옥션 제공)은 이정직의 서예 작품 중 초서로 써 내려간 보기 드문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그가 문인화 뿐만 아니라 일필휘지로 힘있게 물흐르듯 써내려간 초서에도 능했음을 보여준다.‘마음을 한결같이 하면 비록 욕심없고 마음 조촐하나, 한 경치를 만나니 변화 하네. 이는 그윽한 장원 속은 아니나, 부귀화(모란)를 심을 자리 정하여 심었네. 파랗게 어찌하여 깎아지른 듯 서 있으며, 엄숙하여 이 어른의 행차인지.우러러 뵈옵고 갑자기 절을 하니, 어찌 홀로 미원장 뿐이리오’이같은 내용이 고스란히 펼쳐지는 다른 작품(그림 5, 석정 이정직, <석국도, 묵모란>, 비단에 수묵, 119 x 28 cm, 개인소장, A-옥션 제공)도 이정직의 작품 세계가 잘 드러나 보이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서보훈 A-옥션 전무이사


석정 이정직



석정 이정직은 김제 백산면 상정리 요교마을 출신으로, 자는 형오이고, 호는 석정, 석정산인, 연석 등이다. 그는 일찍이 몸소 익혔던 성리학을 토대로 서구의 학문을 섭렵하게 되었는데, 독일의 칸트 철학을 한국 최초로 도입, 주자학과 비교 분석해 놓은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또, 중국의 의약, 성력, 지리, 술수학, 서법, 묵화 등을 두루 섭렵하였고, 귀국 후 그동안 익혔던 학문을 체계화한 ‘연석산방미정문고’ 등 30여 권을 남겼다. 이정직은 깊은 학문과 인격을 그대로 반영한 사군자를 특히 잘 그렸다. 시서화 삼절에 높은 경지를 이루었던 그의 사상과 정서가 고스란히 작품에 베어 드러나고 있다. 묵죽을 위주로 사군자를 즐겨 그렸으나 많은 작품이 남아있지는 않다. 그의 대나무 그림은 미술사적으로도 높은 품격을 갖추고 있지만 많은 작품이 남아있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출처 : 새전북신문(http://www.s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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