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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이종근의 행복산책2]칠곡형 보훈도시락

‘칠곡형 보훈도시락’을 아시나요? 경북 칠곡 주민들이 한국전쟁 참전 70주년을 맞은 에티오피아 노병을 위해 '칠곡형 보훈도시락'을 현지로 공수했다. 칠곡은 낙동강 방어 당시 전략적 요충지로 격전이 있었던 지역이다.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1개 대대 규모의 병력을 창설해 1951년 4월 24일 파병했다.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 당시 아프리카 국가로는 유일하게 지상군을 파병한 우리의 전통적 우방국이자 아프리카 최대 개발 협력 대상국이다. 아프리카 55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아프리카연합(AU)의 본부 소재지이기도 하다.

16개 유엔 참전국가 가운데 네번째로 많은 6,000여 명이 참전한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 때 650여 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그러나 1974년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참전용사와 후손들은 역적으로 몰려 20년 동안 심한 핍박을 받았다. 칠곡군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 참전용사회관에서 열린 '6·25 한국전쟁 참전 70주년 행사'에서 참전용사 50여 명은 주민들이 마련한 도시락과 손가방을 선물받았다.

‘도시락’은 밖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도록, 작은 그릇에 반찬과 함께 담은 밥을 말한다. ‘도시락’은 ‘도슭’에서 온 말이다. 이 ‘도슭’의 모양새는 ‘동고리’(고리버들로 동글납작하게 만든 작은 고리)와 같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17C)에 있는 ‘당’과 상관있는 말로 판단된다. 이 말은 경상 방언에 ‘당새기’, ‘당시기’ 등으로 남아 있다. ‘당새기’는 가는 대나무 조각 따위를 엮어 만든 뚜껑이 있는 상자로서 음식, 반찬, 떡 등을 담아 보낼 때 쓰는 것이므로 현대 국어의 ‘도시락’과 유사하다.

도시락 앞면에는 감사의 마음을 담은 백선기 칠곡군수의 글과 사진을 스티커로 만들어 붙였다. 백군수는 우리말로 감사글을 작성했고, 전북대학원에 재학 중인 에티오피아 출신 유학생이 현지 공용어인 암하리어로 번역했다. 그러나 보도자료엔 이 학생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아 천만유감이다.

2013년 6월, 은혜를 갚기 위해 당시 참전했던 사람들의 후손들을 국내로 초청해 기술을 가르쳐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에티오피아 젊은이 20명이 직업교육을 받은 이곳은 경기도 파주 경기인력개발원에서 6개월 과정의 자동차 정비기술을 받았다. 1차 연수생으로 선발돼 우리나라에 온 나머지 40명은 충북 옥천과 군산의 인력개발원에 20명씩 배치돼 전자기술과 용접,배관기술을 익혔다. 교육생들은 직업교육 외에도 매월 한 차례 우리나라 문화유적지를 찾는 등 우리나라 문화도 배웠다.

1970년대 양은 도시락부터 80년대 보온 도시락, 그리고 지금의 편의점 도시락까지. 도시락에는 시대의 풍경과 추억이 담겨 있다. 때로는 도시락 까먹던 학창시절이 생각나고, 때로는 소풍날의 설렘이기도 한 도시락.

너도 나도 어려웠던 시절에는 집안의 형편을 속속들이 알려줬지만 이제 교실에서 도시락은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그 자리에는 급식이 들어섰고, 요즘의 도시락은 혼자 밥 먹기 간편한 한 끼 식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뚜껑을 열기 전까지 속을 알 수 없는 도시락. 이 시대 ‘칠곡형 보훈도시락’은 어떤 모습일까?, 또 어떤 맛이 날까. 자못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