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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이종근의 행복산책2] 포스베리 플롭과 혁신

포스베리 플롭과 혁신

‘포스베리 플롭(Fosbury Flop)’을 아는가.

1968년 10월 20일, 해발 2277m 고지에 자리 잡은 멕시코시티. 멕시코올림픽경기장의 7만여 관중은 육상 높이뛰기 경기에 출전한 깡마른 미국 청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관중석은 놀라움과 기대로 충만했다. 장내 아나운서는 청년을 리처드 더글러스 포스베리라고 소개했다. 애칭은 '딕', 당시 21세. 육상 역사에 길이 남을 이름이었다.

포스베리는 국제대회에서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 기술로 금메달에 도전하고 있었다. 이때까지 높이뛰기 기술은 정면도(正面跳;Scissors jump)와 복면도(腹面跳;Belly roll over)가 주류를 이뤘다.

정면도는 다리를 차례로 차올려 바를 넘는 기술, 복면도는 배 쪽으로 바를 넘는 기술이었다. 그러나 포스베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등 쪽으로 바를 넘었다.

높이뛰기를 뒤로 넘은 혁명적 발상이었다. 결국, 포스베리는 2m24㎝를 넘어 4년 전 도쿄대회에서 발레리 브루멜(소련)이 기록한 올림픽 최고기록(2m18㎝)을 6㎝나 경신하며 시상대 꼭대기에 올라섰다.

포스베리가 멕시코올림픽에서 사용한 기술은 배면도(背面跳) 또는 포스베리 뛰기(Fosbury flop)라고 불리며 현재 거의 모든 높이뛰기 선수들이 사용하고 있다.

'새 기술로 올림픽을 제패하고 세계기록을 바꿨다'는 포스베리의 신화는 오늘날 많은 기업과 학교에서 새로운 발상을 강조하는 사례로 인용된다.

과거의 관념이나 기술 중 지켜야 하는 것도 있지만 새로운 기술과 환경에 대한 변화를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도 필요하다. 자신의 앞에 벽이 놓여 있다면 과거의 방법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고 시각의 변화를 시도해보기 바란다.

무한경쟁시대에 살다 보면 이같은 혁신을 멈추면 죽는다고 한다.

혁신이란 자기 가죽을 벗겨 새롭게 하는 것이니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혁신(革新)의 한자를 살펴보면, ‘가죽 혁(革)’ 자에 ‘새로울 신(新)’자를 쓰는지도 모른다.

솔개는 70년을 산다고 한다. 40년은 먹이 사슬 상위에서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40년이 되면 부리와 발톱이 너무 자라 휘어지며, 또한 날개털도 너무 커지고 굳어져 날렵하게 날 수 없어 자칫 결국 먹이 사냥이 불가능해져 굶어 죽게 될지도 모른다.
솔개는 2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를 골라 적용한다. 멀쩡하게 두 눈 뜨고 죽음을 기다리냐, 또는 6개월의 고통스런 과정을 이겨내느냐 뿐이다.

후자의 경우, 솔개는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변화를 위한 혁신을 시도한다. 우선, 까마득한 절벽에 둥지를 튼 후, 하늘 높이 올라가 바위를 향해 돌진해 부리를 부러뜨리죠. 부리가 빠질 때까지 이같은 행동을 되풀이 하곤 한다. 이때 고통이란 글자 그대로 혁신 즉, 자기 가죽을 벗기는 아픔과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그 후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부리가 돋아난다. 그 다음에는 새로 돋아난 부리로 발톱을 전부 뽑아낸다. 다시 발톱이 돋아나면 마지막으로 부리와 발톱으로 크고 무거워진 깃털을 전부 뽑아낸 후, 새로운 깃털이 나면 가벼운 몸으로 창공을 다시 난다. 솔개는 이런 혁신을 통해 다시 30년을 더 살게 된다.

자기를 온전히 버릴 줄 아는 솔개가 참 부럽다. 몸이 가볍게 단촐해야 푸르른 창공을 날 수 있다. 혹시 당신, 날로 날로 새롭고 또 새로워진다는 말을 일삼으면서 여전히 변화를 모색하지 않은 가운데 살고 있지는 않나.

실천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새로울 게 하나도 없고,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추억이 생기지 않는 법이다.

혁신은 꿈을 꾸는 게 아니라, 안일한 자기를 접는 일이 아닐런지. 꿈은 꾸기 때문에 지나가고 버려지는 것이므로 결과물로 얻어질 따름이다. 그래서 멈춰서면 혁신이 수명을 다한다.

누구에게나 아픔이 있고 어려움이 있다. 지금은 당신만 힘든 것 같고, 아픈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 조차도 소중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터이다. 더 이상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기를 바란다. 당신, 조금만 더 힘내기를 바란다.

‘지금 이대로’식의 안주하는 습성은 도약하는데 가장 큰 적이 된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변화 그 자체가 아닌, 변화를 온몸으로 거부하려는 혁신정신의 부재(不在)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