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완산동은 완산칠봉 자락에 형성된 마을로 전주천을 경계로 전주도심과 연결되어 있다. 전주의 옛 지명은 완산으로 완산칠봉에서 유래한다. 완산칠봉은 전주의 정신적 뿌리와 같은 곳이다. 그래서 고종황제는 전주를 황실의 고향으로 성역화 하면서 오목대ㆍ이목대와 함께 완산에 비를 세웠다.
완산은 신령스런 정기가 서린 산으로 알려져 있다. ‘완산(完山)이란 산은 나지막한 한 봉우리에 불과할 뿐인데, 한 고을이 이로써 부르게 된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이규보의 남행월일기) 완산칠봉은 전주의 옛 지명 완산의 유래가 되는 산이다. 고려시대 이규보는 완산이 작은 산에 불과한데 고을 이름을 삼은 것이 묘하다고 하였다.
완산은 풍수상 전주의 안산에 해당되고, 남복산(南福山)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기러기 형국의 산형이다. 외칠봉, 내칠봉, 좌우칠봉으로 구분되어 삼면칠봉이라고 한다. 완산은 조선왕실의 뿌리로 인식되어 땔나무를 채취하는 것을 금했다.
완산은 영기가 어린 산으로 시신을 거꾸로 묻어도 해가 없을 정도로 명당이라 한다. 그래서 평장(平葬)의 형태로 몰래 묘를 쓴 경우가 많았다. 완산자락은 동학농민군과 관군이 치열한 접전을 벌인 곳이며, 호남최초의 교회 은송리교회가 있던 곳이다.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원로들의 경로당 기령당과, 전주에서 두 번째로 개교한 완산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완산동 시외버스정류소 옆에 세워져 있는 ‘우리 마을 빙고리 이야기’를 알고 있는가. 현 완산동은 조선시대 부남면(府南面)의 은송리(隱松里)ㆍ곤지리(坤止里)와 부서면(府西面)의 빙고리(氷庫里)이다.
빙고리는 조선시대 전주천의 얼음을 보관해 놓은 굴이 있던 곳으로, 이 동네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
현재 ‘엄마랑 아가랑 어린이집’뒤 다가산 자락에 몇 개의 굴이 있다. 우리네 선조들이 예로부터 만든 석빙고의 천장은 아치형을 하고 있다. 그 공간을 이용해 빙고 안의 더운 공기를 빨아들인 다음 바깥의 환기구로 배출시키는 구조를 하고 있단다. 차가운 공기는 밑으로 가라앉고 더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는 성질을 현명하게 이용했다. 또 얼음과 맞닿은 벽과 천장의 틈 사이에는 볏짚, 톱밥 같은 것을 채워 넣어 외부의 열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볏짚은 속에 빈 공간이 많아서 열을 잘 흡수하기 때문에 훌륭한 단열재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전주야사’(이철수)에 빙고가 더 큰 규모로 기록되어 있어 이 굴들과는 다르지만, 옛 예수병원 아래에 빙고가 있었고, 다가산 아래 소가 깊어 얼음이 두껍게 얼으므로 이 얼음을 떼다가 저장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이 굴들의 위치가 천변이라는 것으로 미루어 빙고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 요즘처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빙고리를 복원, 피서지로 널리 활용할 방안을 생각해보게 된다./이종근 (삽화 ㅛ새전북신문 정윤성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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