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지(全北誌)’는 1962년 6월 15일 유도회 전라북도본부 전북지편찬소가 펴낸 책이다. 1-5(仁, 義, 禮, 智, 信, 卷1-10)으로 신활자본으로, 서(序)는 임인(壬寅, 1962) 전일건(田鎰健), 발(跋)은 곽한영(郭漢永)이다. 이 책은 전북의 ' 연혁', '명묘', '충절의거', '명현', '기문' 등 다양한 내용을 수록, 소중한 자료로 보인다.
‘황산대첩비와 황산사적비’가 들어온다. ‘만력 3년(선조 8, 1575)에 전라도관찰사 박계현(朴啓賢)이 보고하기를 “운봉현 동쪽 16리 되는 곳에 황산이 있는데, 이곳은 태조강헌대왕(太祖康獻大王)께서 왜적을 크게 무찌른 곳입니다. 세월이 오래 지나 지명이 엉뚱하게 바뀌고 길도 잘 알 수 없어 정확한 지점을 분별할 수가 없게 됐으니, 수천 수백 년 후에 높은 산은 평탄해지고 낮은 곳은 메워져 갈수록 더 희미해지면 아무도 그 위치를 모르게 될까 심히 두렵습니다. (중략) 왕이 그 건의를 받아들여 전라도에서 그 일을 주관하도록 하고, 이어 신 (김)귀영(金貴榮, 1520~1593)에게 글을 짓도록 명했다. (중략) 만력 5년 정축(선조 10, 1577) 8월 일 조봉대부(朝奉大夫) 행운봉현감(行雲峰縣監) 남원진관병마절제도위(南原鎭管兵馬節制都尉) 겸춘추관기사관(兼春秋館記事官) 신(臣) 박광옥(朴光玉)이 세움’
이는 황산대첩비이다. ‘누정당대(樓亭堂臺)’를 보면 전주 혜학루도 모습을 드러낸다. 유분은 유일재(遺逸齋)에서 학문을 연마하면서도 혜학루에서 문인들을 훈도하고 절의를 고취시켰다. 대표적인 문인은 이경동·이계맹 등이다. 고창 영귀정도 보인다. 고창읍에는 매월정, 취석정, 석탄정, 상풍루, 도산정, 만수당, 동오정, 춘곡정, 공북루, 영귀정 등의 전통 누정이 있다. 또 장수 풍욕정, 남원 격양정, 무주 제월정, 임실, 풍욕정 임실, 무주 관수대 등 중국 고사에서 비롯된 정자가 즐비하지만 지금은 사라진 곳이 많다.
가람 이병기가 읊은 전주 오목대(梧木臺)도 보인다. ‘뒤의 오목대를 나는 매양 오른다. 허술한 주필각은 외로이 서있으며 즐비한 몇만 가옥이 내려다 다 보인다. 그 옆의 자만동(滋滿洞)은 목조의 고적지요. 그 뒤의 발산(鉢山)은 이르노니 발이산(發李山) 과연 그 오백 년 왕기가 여기 결인(結因)했던가’ 오목대에 대해서는 오동나무가 많았기에 언덕의 이름했다는 설이 있다. 여지도서(전주)에 “발산 아래에 오목대가 평평하게 펼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완산지(完山誌)에 “발산(鉢山) 아래에 있는 돈대이다. 평탄하게 펼쳐져 위에서 전주성을 아래로 굽어보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전라도 정도 천년 사업이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책이 아쉬운 것은 100% 한문으로 기록됐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소장한 가운데 널리 활용하는 곳이 전북엔 몇곳이나 될까. /이종근(삽화 정윤성 새전북신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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