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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토리

거시기(송세림)

거시기

 

거시기라는 표현은 너도 알고 나도 아는인식의 공유를 보여준다. '죽음 앞에, 자주 못 보던 지인들이 오래만에들 겁나게 거시기허게 모였습니다. 제아무리 잘나도 거시기만큼은 슬그머니 다 같이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허나, 허는 소리를 듣고 모여 앉은 대형을 본다 치면, 여전히 끼리끼리만 모여 여전히 거시기허게 답갑한 패거리 소리들만을 수군거리구 있습니다. 어차피 거시기허면 다 거시기허는 줄은 눈앞에서 번연히 다 거시기허면서두, 허는 짓은 여전히 다들 거시기헙니다(김익두의 시 '문상-거시기 혹은 거세기' 중 일부)'

 

 

'거시기허게' 모였다는 말은 '많이' 모였다는 뜻에 틀림없다. '눈앞에서 번연히 다 거시기허면서두'는 뻔히 '알면서도'를 의미하고, '허는 짓은 여전히 다들 거시기' 하다는 것은 짓거리, 즉 행위가 '틀려먹었다'는 말이 된다. 이처럼 '거시기'라는 말은 경우에 따라 종횡무진 그 뜻이 바뀌는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어휘다.

 

'거시기라는 마을에 모로쇠란 사람이 있었다. 다리를 절지만 아들·딸 구남매를 두었고 집은 낡아빠져 초라하지만 항상 백설아마(白雪鵝馬)를 타고 다녔다. 모로쇠는 급히 여승 앞에 나아가 낫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고쳐 줄 것을 의논했다. “그건 어렵지 않으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보아라. 말발굽이 닫지 않은 역원이 부엌 아궁이와 불지핀 일이 없는 굴뚝의 꺼멍과 교수관의 먹다 남은 식은 적과 행수기생의 더럽힌 일이 없는 음모와 글 읽을 때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선비와 허리춤에 이를 잡을 때 입을 삐죽이지 않는 노승과 이 다섯 가지를 한데 넣어서 찧은 약을 낫에 바르면 지체없이 낫느니라라고 했다

 

이는 태인출신 송세림(1479-1519)'어면순'에 실린 '모로쇠전(毛老金傳)'이다. 모로쇠전에 나오는 '거시기'를 설명하는 저자는 '거시기 방언동서미정지사야(渠是基 方言東西未定之辭也)'로 주석을 달았다. , '거시기''아직 무엇이라고 정해지지 않은 말'의 뜻으로 이처럼 오백년 훨씬 전부터 사용했다. 호병탁시인(문학평론가)는 형용과 수식어로 어떤 경우에도 사용될 수 있는 전 세계에 유일무이한 단 하나의 어휘란다. 물론 거시기는 유식한 말이 절대 아니다. '참 거시기하다'고 말한다면 '참 좋다'는 뜻도 되고 '참 나쁘다'는 뜻도 된다. 더 나아가 '많다'는 뜻도, '적다'는 뜻도, '높다'는 뜻도 '낮다'는 뜻도 된다. '거시기'는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쓰이거나, 하려는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가 거북할 때 쓰는 감탄사로 쓰이는 거시기는 표준어로, 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원래는 거시키라는 거센 발음을 표준어로 했는데 지금은 거시기를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다. 사투리가 결코 아니다. 오늘 '참 거시기하고만'

 

/이종근(삽화 새전북신문 정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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