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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토리

전봉준 등 동학농민군 판결기록 복원


 

1895년, 전봉준 등 동학농민군들의‘형사재판원본’의 복원이 완료됐다.
국가기록원은 복원된 원문의 디지털이미지를 국가기록원 누리집을 통해 제공한다. 국가기록원의 형사재판원본을 포함한 175건의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대상에 선정(문화재청, 2017), 향후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가능성이 많다는 점에서 형사재판원본 복원이 동학농민혁명의 세계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이번에 복원된 형사재판원본은 근대적 재판제도 초기 구 제도와 혼합되어 있는 모습과 일본이 동학농민군 재판에 관여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형사재판원본 복원을 통해, 기존의 외부에 공개된 훼손된 상태의 흑백의 디지털이미지를 복원이 완료된 천연색의 디지털 이미지로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형사재판원본은 최초의 근대적 형사재판 판결문으로서 전봉준, 손화중, 최경선, 대원군 손자 이준용 등 217명의 최종 판결선고서가 포함된 217매 분량의 판결기록이다.
해당 기록물은 120년 이상의 시간의 지남에 따라 종이에 황변화가 일어나고 일부 부위는 결실과 가장자리 바스라짐 등이 진행되고 있는 등 복원이 시급했다.
이는 한지를 이용한 구조물 보완과 우리나라 전통 오침안정법으로 제책을 마쳐 복원이 완성됐다. 오침안정법이란 책의 등 쪽에 다섯 개의 구멍을 뚫고 (무명)실로 꿰 메는 제본 방식을 말한다.
이 형사재판원본은 갑오개혁기 설치된 법무아문권설재판소(法務衙門勸設裁判所)*, 특별법원, 고등재판소의 판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봉준의 판결선고서는 전봉준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게 된 배경, 1·2차 봉기의 시작과 그 과정 등 전봉준의 행적이 정리되어 있다.
이외에 손화중, 김덕명, 최경선 등 심문기록과 폐정개혁요구안 및 농민군의 진격 경로도 포함되어 있다. 일제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경성 주재 일본 영사 우치다 사다츠치(內田定槌)의 서명도 확인할 수 있다.
특별법원의 판결문은 대원군의 장손이자 고종의 조카인 이준용이 고종을 폐위하고자 청군과 동학농민군을 끌어들이려 한 역모사건에 관한 내용이 있다./아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