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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토리

채용신 ‘금마산방’ 찾았다

 


조선말 익산출신 <어진화가 채용신>이 작품 활동했던 100년 된 ‘금마산방’이 발견됐다. 이 금마산방은 정읍 신태인 육리에 있는 ‘석강도화소(石江圖畵所)’보다 20여 년 앞 선 대한민국 최초의 상업공방으로 평가돼 학계와 예술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011년 11년 11일 제보로 찾은 금마산방은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원촌마을 61-8번지 위치한 대지면적 509㎡(154평)에 건축면적 100㎡(30평) 규모의 기와집으로, 원형이 절반 정도 보존돼 있었다. 건축물대장에는 1910년에 등재된 것으로 기록돼 있어, 최소한 100년 전에 건축이 된 것으로 보인다. 서까래와 대들보, 주춧돌과 기둥 등 가옥의 옛 모습은 절반 정도가 보존돼 있어 앞으로 채용신의 생애 및 작품연구에 소중한 사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가옥은 부엌, 큰 방, 작은 방 등 3칸 겹집이며 큰 방은 다시 3개로 나눠 이 중 한 칸을 화실로 쓰인 것으로 보이고 있다. 벽장과 방문, 창문 또한 옛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마을에 사는 이양원(80·전 금마초등학교 교장)씨는 “그 집에 채정산이라는 유명한 화가가 살았다. 원래 원촌마을은 전은 이씨 집성촌으로 아무도 이주할 수 없으나 채용신은 화가로 유명해 특별히 거주할 수 있도록 문중에서 배려했다는 이야기를 할머니한테 들었다”고 밝혔다. 채정산은 정산군수를 역임한 채용신의 별칭 중의 하나이다. 이씨는 지금도 증산(정산)선생이라는 호칭으로 채용신을 불렸다.현재 금마산방에 살고 있는 조구봉(70)씨는 “20여 년 전에 이 집을 매입해 외벽과 내부 일부를 고쳐서 살고 있지만 상당히 잘 지어진 집이다”고 밝혔다. 이 집의 건축물대장을 보면 사용승인일자가 1911년으로 돼 있어 최소한 100년 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동고도리에 거주하던 채용신이 이곳에 금마산방을 짓고 본격적인 프로화가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채용신의 4대 직계 손인 은석(75·익산 남중동)씨는 “할아버지가 작품 활동한 금마산방은 항상 물이 넘쳐 흐르는 우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시어머니한테서 들었다”고 말했고 실제로 이 집 화단자리에 우물이 있었으나 몇 년 전 집을 정비하면서 이 우물을 메웠다고 조씨 부인은 말했다.

김복현 익산문화원장은 “채용신이 살았던 금마산방은 문헌과 작품의 관지에 나타나 있었지만, 이렇게 보존상태가 상당히 우수한 상태로 가옥이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며 “조만간 전문가들과 함께 금마산방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활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1910년대 본격적인 전업화가의 길에 들어선 채용신은 금마산방에서 ‘석강실기’‘복명사기’ 저술과 삼국지연의도,우국지사와 의병장 초상화 등 굵직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하대성기자 haha@domin.co.kr

 

▲ 대한민국 최초의 상업공방인 채용신의 금마산방이 전북도민일보 <채용신팀>에 의해 발견됐다. 김복현 익산문화원장 등이 금마산방의 가옥구조를 살펴보고 있다.

▲ 금마산방이라는 관지가 있는 채용신의 <화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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