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深遠)은 심원 고개,심연 고개,심미재로 부릅니다. 이는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와 정천면 봉학리를 연결하는 고개입니다. 심원재는 과거 부귀면 황금리 주민들이 정천장에 가기 위해 이용했던 고개입니다. 과거 가리점 마을(마조 마을)에 심원사(심연사)가 있어 이름이 유래됐습니다. 심원재는 운장산에서 시작된 능선에 있는 487m 고개입니다. 남쪽에 부귀면 황금리 봉황골과 방각 마을이 자리하고, 북쪽에 정천면 봉학리 마조 마을·학동 마을이 자리합니다. 방각 마을에서 마조 마을까지는 2.6㎞가량 떨어져 있습니다. 심원재는 현재 임도가 개설되어 있습니다. 시멘트 포장보다는 비포장의 비율이 높으며, 차량이 다닐 만큼 충분히 넓지만 포장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진안고원길의 6구간이 지나고 있다. 임도 주위에 자작나무를 비롯한 숲이 풍성합니다.
정천면 동촌(東村)은 1914년 2월까지 용담군 일남면 시변리(市邊里) 지역이었습니다. 3월부터는 진안군 정천면 봉학리 지역이 됩니다. 용담군 일남면 시절 봉산리와 학사리를 합하여 봉학리가 됩니다. 봉학리의 동쪽에 있어 동촌이라 했습니다. 옛날에는 전주로 가는 길목이어서 주막땀(뜸)이라고 이라고도 했고, 조림장터로 5일과 10일에 장이 선 뒤로 마을이 불어났습니다. 이 마을은 조림 소재지 4개 마을 중 시장과 점포 등을 가지고 있는 상가 마을로서 진안, 주천, 용담의 삼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입니다.
금강너머로 이어지는 황금(黃錦) 모래밭과 자갈벌이 양탄자가 되어 쭉쭉 뻗어 자리를 잡아있고 망화교를 지나면 저 구릉 사이로 이어지는 소나무 숲들의 불협화음이 이어지고 잘 정리된 논과 밭과 마을들의 언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촌락(村落)을 이루었도다. 가을걷이가 수확(手穫)되는 이포(망화리)마을에는 웃음의 메아리가 떠나지 않음이리니 산새들도 좋아 머물다가는 살기 좋은 장소 이곳이 이포 마을이라네.
망화리(網花里)는 진안군 정천면에 속하는 법정리로, 그물로 자라를 잡는 형국인 어망곡(魚網谷)이 이포 쪽에 있고 척금 쪽에는 이목곡(梨木谷)이 있어 그물의 ‘망(網)’과 배꽃의 ‘화(花)’를 취해 두른 이름입니다. 2000년 용담댐 건설로 망화리 전체가 수몰되어 현재는 사람이 살지 않습니다.
망화리는 수몰 전, 당시에는 보기 좋은 마을인데 금강사이로 징검다리가 놓여 망화리 아이들은 멀리 떨어진 모정 초등학교에 등교 하던 기억들이 나지요. 망화교(이포)가 생기면서 무진장 버스가 다니는 그 시절 지금은 물에 잠겨서 그 흔적을 볼 수가 없습니다. 망화리는 용담면으로 가는 북쪽에 자리를 잡고 있어 장날이면 정천장이나 용담장으로 시장 일을 보았고, 멀리로는 안천과 용평리가 자리를 잡았죠, 망화리에서 바라보는 촌락들의 모습이 자연 경관을 이루며 포장도로 이전에는 먼지가 펄펄 날리는 신작로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마을에서 바라본 동쪽은 덕유산의 한줄기인 마을뒷산까지 뻗어내린, 구름속에서 한마리용이 꿈뜰거리는것과 같다는 산과 앞냇물(남양강)을 따라 올라가면 운암보가 있었으며 금당(비대), 불로티, 세동마을이 있었다. 또한 할미재, 불노티재를 넘어 동향, 안천, 무주로갈수 있었고, 정천보다는 안천시장을 많이 다녔으며, 대부분이 안천중학교를 다녔다. 서쪽으로는 구름밭들을 반원을 그리며 휘감아도는 새보밑의 강을 건너 병풍을 두른듯 막아서 있는 원굴이재가 있다. 원굴이에는 나무를 벌목해 굴러내리던 곳이 있었는데, 그곳이 봄에 딸치(쉬리)가 잘 잡히는 곳이라 봄이면 유리병으로 많이 잡았던 곳이다. 초고추장 만들어 갖고나가 먹었던 때가 그리워진다. 골짜기는 앞재가 되고 앞재를 넘으면 정천면 모정리, 갈머리마을 앞으로 이어져 봉학리에 있던 재래시장(정천장)을 보러 다니기도 했고, 면사무소 등이 그곳에 있어 농사용 비료를 면사무소에서 지게로지고 운반했기에 많이도 넘어 다녔던 고개다. 운암리출신 안재인(안재희씨의 큰형으로 작고)씨가 몇대인지는 확인 못했으나 면장을 지내기도 했다. 남쪽은 앞냇물이라 불려오는 남양강을건너 새벼루 마을이 자리잡고있다. 꼭지봉 줄기를뒤로 두르고있는 새벼루 마을에서는 옛날 소심이재를 넘어 월포와 통하였는데 도로가난 뒤에는 소심이재는 이용하지 않았었다. (계속)
이는 구름바위(안태석)님이 ‘나의 살던 고향은 [3] 운암’을 자료실에 올린 글입니다.
진안의 정기시장은 진안읍의 진안장이 1일과 6일에 열리고, 용담면의 용담장, 동향면의 동향장, 마령면의 마령장은 3일과 8일에 섭니다. 안천면의 안천장, 부귀면의 부귀장은 4일과 9일에 서고, 백운면의 백운장, 주천면의 주천장, 정천면의 정천장은 5일과 10일에 열립니다. 이 중 가장 오래된 장은 용담시장으로 1912년에 개장됐습니다. 진안시장이 1918년, 안천시장은 1950년, 동향시장이 1959년, 백운시장이 1953년, 성수시장은 1972년, 마령시장은 1923년, 부귀시장은 1971년, 정천시장은 1953년, 주천시장은 1962년에 각각 개장됐습니다.
1997년 여름 정천면의 시장통이 불도저에 의해 철거되고 있습니다.
"야야~ 불도저 모는 총각 나 좀 보라우.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논밭을 내놓고 어디로 가란 말이고?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못 간다. 논밭을 뺏으려거든 나를 죽여라. 송충이가 솔잎을 묵고(먹고) 살아야 할 거 아이가. 농사 짓는 기술빼기(기술밖에) 없는 우리보고 고향땅에서 나가면 뭘 먹고 살란 말인가. 아, 오백년 묵은 느티나무라도 한 그루 남겨둬야 할 거 아닌가. 그래야 커는 자식들한테 여기가 조상 대대로 지켜왔던 조상님 고향이라고, 여기에서 어떻게 살았다고 말이라도 해 줄 거 아닌가"
그랬습니다. 어르신들 말씀이 맞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고향에서 쫓겨나던 그 어르신들은 고향 마을에 있었던 오래된 느티나무, 전설이 깃든 바위, 오래 묵은 기왓집,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성터 등은 남겨놓아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하지만 용담댐건설로 한 번 사라진 그 아름다운 풍경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아야 할 그 나무,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도 남았던 그 고인돌과 그 집들은 영원히 찾을 수 없게 됐습니다. 어릴 때 동무들과 소꼽장난하며 놀았던 그 많았던 고인돌, 호박을 심기 위해 땅을 파면 불쑥불쑥 튀어나오던 빗살무늬토기, 밭둑에 하얗게 깔려 있던 선사시대 조개껍질들, 도랑 곳곳에 살던 가재와 새우, 자라, 뱀장어, 은어 등도 사라졌습니다. 그 살가웠던 마을 사람들과 동무들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정천면 소재지는 그렇게 기억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래. 한번 사라진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없애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하지만 한번 없어지고 나면 원형 복원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정천장에 가면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시장 사람들의 구김살 없는 모습을 통해 만고풍상을 겪어야 했던 지난 일들을 잊는 가운데 삶을 재충전 할 수 있고, 마음이 내키면 시장의 허름한 주막에 들러 텁텁한 막걸리 한사발을 마시며 내일의 희망을 기약해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지만요. 이열치열 더운 날씨에도 뜨거운 소머리국밥을 땀흘리며 먹는 즐거움이 있었지요. 소머릿고기가 듬뿍 들어 있는 국밥에 하얀 쌀밥을 풍덩 말아 먹으면 속이 든든했습니다. 장날 풍경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재래식으로 국수를 생산해서 태양볕에 말리는 모습입니다. 자연 바람과 태양볕에 말리기 때문에 면발이 쫄깃하고 구수합니다. 시장가는 길가에는 빨간 햇고추가 나와 길가에서 말리고 있기도 했지요. 한여름의 더위에도 부지런한 농부의 땀방울이 고추 속에 스며있는것 같아 마음이 짠했습니다. 정천장 하면 그 옛날 푸근했던 고향 모습이 떠오릅니다. 장에 가면 갓 내온 각종 먹을거리와 희귀한 물건들이 보기만 해도 넉넉해지기 때문입니다. 라면 상자에 담긴 강아지나 노끈에 다리를 묶인 토종닭을 갖고 나온 전주댁 아주머니. 대학에 다니는 자녀의 학비 조달을 위해 소를 몰고 장터에 나온 순창 양반 아저씨, 그리고 새색시에게 분첩을 사주려고 집에서 만든 농기구를 걸머 멘 고창 새 신랑 등은 타지에서 잘 살고 있겠죠.<글=이종근 기자, 사진=이철수 용담호사진문화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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