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면은 전북 동부산악권에 위치해 있고 용담댐 건설로 수많은 수몰민이 정든 고향을 떠나는 등 이산의 아픔을 용담호에 묻은 고향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가장 살기 좋다는 해발 300~400m의 고랭지로 수려한 풍광과 맑고 깨끗한 천혜의 웰빙지인 운장산 자연휴양림, 갈거계곡, 옥녀폭포, 월평천 등 청정의 명소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관광과 휴양의 최적지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주요 문화재로는 875년(신라 헌강왕) 무량(無梁)이 창건한 천년 고찰의 천황사 대웅전(전북유형문화제 17호)과 천황사 부도(문화재자료123호)가 있습니다. 더불어 인삼, 표고, 씨없는 곶감 등 건강식품 생산의 고장이기도 합니다. 이제까지의 지표 조사에서 밝혀진 결과에 의하면, 진안군의 60여 개소에 고인돌이 분포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들 고인돌은 진안읍 14개소와 부귀면 16개소, 백운면 10개소, 안천면 7개소 등 대부분 하천을 따라 들판이 펼쳐져 있거나 내륙 교통로가 통과하는 곳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습니다.
금강 상류 지역인 부귀천·진안천·정자천·안자천 등을 따라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정천면 모정리와 안천면 삼락리 일대에 가장 밀집되어 있습니다. 섬진강 유역에서는 교통의 중심지인 마령면 일대에 30여 기의 고인돌이 밀집 분포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안천면 삼락리 수좌동 유적, 정천면 갈용리 농산 유적과 모정리 여의곡 유적에서 청동기 시대의 생활 유적이 발견됐습니다. 이 시기의 주거지가 처음으로 조사된 수좌동유적에서는 유구가 심하게 훼손되어, 그 성격이 분명하게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농산유적에서는 평면 형태가 원형 혹은 장방형을 띠는 주거지와 수혈 유구, 여의곡 유적에서도 송국리형 주거지와 함께 밭 유적이 조사됐습니다.
정천면 농산(農山)은 지금으로부터 5백여년 전 고려말엽에 형성된 마을입니다.
당시 인근 주민들이 이곳에 와서 농막을 짓고 농사를 지었던 바, 매년 풍년이 들어 해마다 풍요로운 수확을 거두게 되자 그때부터 이곳에 정착, 오늘의 농산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주민의 60% 이상을 나주 임씨가 점하고 있는 마을로서 마을 뒷산 양지 바른 언덕에 나주임씨 제각이 건립되어 있습니다.
여름 가뭄이 더해지면서 수몰된 정천면 농산마을이 아득하니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내곤합니다.
그들이 매일매일 거닐었던 길과 집터 너머로 물고기들이 모처럼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면서 육지의 공기를 맛봅니다. 저 멀리, 당산나무와 꼬막처럼 엎어져 있는 곳은 정천면 이포마을로, 지난 상흔을 품은 채 끄트머리만 보입니다.
용담댐 건설로 인해 진안읍, 상전면, 용담면, 안천면, 정천면, 주천면 등 1읍 5면 68개 마을이 수몰되었고, 2,864가구 1만2,000명의 이주민이 이미 오래 전, 새로운 터전으로 떠났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물이 부족합니다.
농산마을에서 1996년 마지막 모내기를 합니다. 오랜만에 손을 모아 마친 공동 모내기이지만 가슴 한 켠에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수백 년 자신들의 마을과 생명을 버팀해 준 농토와 농사일을 다시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곡우에 단비가 내렸습니다. 봄비가 백곡(百穀)을 윤택하게 한다는 의미를 제대로 살렸지요. 곡우에는 조기잡이가 성하고 나무에 물이 오르는 시기로, 이날 비가 내리면 한 해 풍년이 든다고 여겼습니다.
싱그런 돌미역 무침에 들이키는 막걸리 한잔이 고된 논일을 말끔히 씻어줍니다. 오랜만에 마을 아낙들끼리 논둑에 빙 둘러 앉아 먹는 새참 맛이란 꿀맛처럼 달콤했습니다.
교외에 나가보니 벌써 들판이 파랗습니다. 어느 새 모내기가 끝나 6월 햇살에 벼들이 한창 자라고 있습니다.
지금은 트랙터로 기계이양을 하니, 한 줄로 늘어서서 모내기하던 풍경은 추억 속의 한 장면으로만 남았습니다. 못줄에 맞춰 늘어서서 진흙물 튀겨가며 뒷걸음으로 모를 심어나갈 때, 걸죽한 농담과 간드러진 콧노래도 석여 나왔지만, 발목과 종아리에 흐르는 피를 살펴야 했습니다.
거머리는 그야말로 ‘찰거머리’ 같이 달라 붙어 손으로 뜯어도 잘 떨어지지 않았으며, 떨어진 자리에서는 지혈이 되지 않고 붉은 피가 흘러 내렸을 뿐 아니라, 상처는 나중에도 오랫동안 가려웠습니다. 거머리의 공포는 지금도 생생합니다.
풍물소리가 들리는 모내기날 풍경이 아주 보기 좋았습니다. 여느 해보다 모내기 속도가 빨랐는데, 특히 1학년들이 빠르고 정확하게 심어서 다들 놀랐습니다.
아침 일찍 들판에 모내기를 하기 때문에 많이 바쁘고 분주한 모습을 보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들에 나가 직접 모를 일일이 심어서 모내기를 했는데, 지금은 기계로 순식간에 심어서 예전의 그런 운치는 없답니다.
한줄로 길게 늘어서서 길게 줄을 늘어뜨려 노래를 부르며 모를 심었었는데, 그리고 거머리가 다리에 달라 붙어서 놀라기도 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는 그런 풍경은 볼수 없답니다.
하지만 모를 끝낸 논의 녹색의 물결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습니다. 이제 막 심은 모들이 작은 바람에도 춤추며 좋아하는 것은 그것을 심은 농부의 마음을 알기 때문일까요? 올 가을 이 녹색의 생명들이 가을에 풍성하게 결실을 맺기를 기도해 봅니다.
어릴 적에는 어느 한 집에서 모내기를 하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품앗이로 돌아가며 모를 심는 모습을 흔히 봤지요. 못줄 잡이가 둘이 서서 못줄을 잡고 논에 대면, 일제히 허리를 굽혀 손수 모를 심던 풍경을 흔하게 봤답니다.
더불어 모내기하는 댁의 아낙은 어김없이 광주리에 국수나 밥을 싸가지고 와서 논둑에 둘러앉아 막걸리 한 사발과 함께 새참을 먹는 풍경도 무척이나 흔했지요. 요즘은 진짜 이런 풍경은 아무리 두메산골 첩첩산중이라도 거의 볼 수 없는 추억 속의 풍경이 되었지요.
이앙기가 대신하는 모내기, 도회지로 나간 자식들이 일요일에 모두 모이면 그날이 바로 모내기를 하는 날이지요. 그만큼 식구들만으로도 그 넓은 논에다가 모심기를 뚝딱 해치우지요. 어릴 적 추억 속에 머무는 풍경은 볼 수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한나절이면 다 심을 수 있는 모내기를 하면서 농사꾼들의 마음은 얼마나 뿌듯할까요? 농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우리도 이런 풍경을 보기만 해도 가슴 벅차니까요
'시작~'도 아닌, 알아들을 수 없는 신호 '이야~ 어~이차~' 못줄을 띄우시고는 모심기를 시작하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일렬로 줄지어 모판의 모를 한 움큼 떼어 눈금에 맞춰 모를 심기 시작합니다.
못줄을 잡은 이들의 목청이 높다. “어이~ ” 이들의 소리는 모를 심는 농부의 움직임을 조율하고 모심는 위치와 간격을 바르게 잡는다. 못 줄 잡이들의 “줄이야~” 소리에 일제히 사람들 손놀림이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논은 작아도 농사 짓는 일은 힘듭니다. 허기도 집니다. 점심 먹은지 1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중반을 지나니 서로 눈치를 봅니다. 새참이 올때가 되었는데 마침 반가운 소리가 들립니다. "새참 먹고하세요~" 난생 처음해보는 모내기의 즐거움에 새참 먹는 행복까지 더해집니다.
이렇게 쉬엄 쉬엄해도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모내기는 끝이났습니다. 이제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끝났습니다. 땅이 주는 자양분과 하늘의 햇살, 구름의 비가 벼를 키우고 흰뺨검둥오리 가족들이 해충과 잡초로부터 보호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으로 익어갈 것입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풍년이 오길, 그리고 모두가 풍성한 해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글=이종근 기자, 사진=이철수 용담호사진문화관 관장>
'진안용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6]용담면 호암마을 (0) | 2019.07.14 |
---|---|
[24]철거되는 정천면 시장통 (0) | 2019.06.30 |
[22]태고정 (0) | 2019.06.16 |
[20]용담대교에서 본 철거 전 용담교 (0) | 2019.06.02 |
[19]정천면 이포마을 (0) | 2019.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