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사라지는 것이 용담대교뿐이겠습니까. 진안군 용담면 수천리 고분 떼는 고려시대~조선시대에 걸쳐 조성된 고분들이 모여 있는 유적입니다. 용담댐 수몰 지구 내의 유적들에 대한 발굴 조사를 통해 성격이 밝혀졌습니다. 수천리 고분 떼의 고분들은 보존 상태도 양호하고 출토된 유물도 양질이어서 고려 시대~조선 시대의 지방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수천리 고분 떼는 용담면 수천리 산9-6에 있습니다. 진안군 정천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795호선을 따라 용담면 소재지 방향으로 8.5㎞ 정도 가다 보면 용담 대교에 이른다. 용담 대교를 건너 우측에 자리한 지류에 남쪽 사면부에 수천리 고분 떼가 있습니다.
수천리 고분 떼에 대한 발굴 조사는 용담댐 건설로 인한 수몰 지역에 소재한 유적 조사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발굴 조사는 수몰 지역 유적들의 성격을 파악하고 보존 대책을 수립하는 데 필요한 학술 자료의 수집에 목적을 두고 추진, 1995년에서 2001년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조사가 진행됐습니다.
수천리 고분 떼에 대한 직접적인 발굴 조사는 1998년~1999년에 걸쳐 원광대학교 마한백제 문화연구소가 실시했습니다. 조사 결과, 고려시대 돌덧널무덤 53기, 고려·조선 시대의 움무덤 37기, 조선 시대 돌덧널무덤 5기, 조선시대 회곽 무덤 3기 등 총 98기의 무덤이 조사됐습니다. 수천리 고분 떼는 세 갈래로 뻗은 지류에서 가운데에 고분들이 자리,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를 둔 형상으로 사신 사상(四神思想)에 입각하여 고분의 입지를 선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98년 신용담대교에서 본 철거 전 용담교의 모습이 아스라이 펼쳐집니다. 대형 버스 건너편에 보이는 산하는 말이 없습니다.
진안군 용담면과 용담댐. 진안 용담면은 일제시대부터 댐 건설의 적격지로 지목, 계획을 확정하고 사업을 검토하여오다가 일본 패망으로 무산됐지만 지난 1992년 착공, 2001년 완공됐습니다. 담수가 끝나자 하늘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참으로 기이하게도 댐이 가두고 있는 물줄기가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그대로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용담’이란 ‘용 용(龍)’자에 ‘못 담(潭)’자의 지명으로 ‘용이 자리를 틀고 있는 깊은 연못’이란 의미를 현실화했습니다. 댐 완공 후 수몰선을 따라 물에 잠겨 호수의 형상이 용의 모양을 이루고 있으니, 용담면이라는 이름과 실제 현실이 맞아떨어지게 된 셈이다. 그래서 용이 살 수 있는 땅이 됐습니다.
용담다목적댐은 하천의 흐름을 막아 생활·공업·농업용수의 공급과 함께 홍수 조절 및 발전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하는 댐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도별·지역별 강수량의 편차가 심한데다가 하천은 최대 유량과 최소 유량의 비율 편차가 심해 홍수 때는 물이 너무 많아 피해가 발생하고 갈수 때는 너무 적어 취수에 어려움이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홍수 피해를 막음과 동시에 필요한 용수 화보를 위하여 다목적댐을 건설하기 시작합니다. 1960년대 이전에는 농업용수나 수력 발전을 위한 단일 목적댐을 건설했으나 1960년대 소양강댐을 시작으로 1970년대 이후 다목적댐이 본격적으로 건설됩니다. 용담댐은 건설 교통부·한국 수자원 공사가 1992년 11월에 착공해 2001년 11월에 준공했습니다다. 저수량으로 볼 때 소양강댐·충주댐·대청댐·안동댐에 이어 국내 다섯 번째 규모입니다.
용담댐은 일제 강점기 때 전력을 생산하기 위한 댐으로 거론되기 시작하여 3차에 걸쳐 사업이 추진됐습니다. 1차 사업은 일제 강점기인 1940년부터 1945년까지 계획되었으나 해방으로 중단되었고, 1966년부터 2차 사업을 계획되었지만 대청댐의 건설로 전주권의 급수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취소됩니다. 1987년 전주 광역 도시권 개발 사업 타당성 조사와 함께 10년에 걸친 공사 끝에 2001년에 용담댐을 건설하게 됐습니다.
용담댐은 발전·용수 공급·홍수 조절 등의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주된 목적은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의 고질적인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댐이다. 용담댐 공사는 지역 주민들의 행정 및 언론 기관 방문, 궐기 대회 및 시가행진, 집단 농성 등으로 일시 중단되었으나 1997년 8월 주민과의 합의하여 정상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게 됐습니다. 댐건설로 진안군의 6개 읍면 68개 마을이 수몰되어 2,864세대에 1만2,616명의 이주민이 발생하기에 이릅니다.
진안의 누정 중에는 본래의 장소에서 이전한 것도 있습니다. 태고정은 본래 용담면 옥거리 주자천 절벽에 있었던 것을 용담댐 건설과 더불어 현재의 위치인 수천리로 이건한 것이며, 우화정은 현재의 위치에서 서쪽으로 100여 m 떨어진 등성이 너머 암벽 아래에 위치하고 하고 있었던 것을 지금의 자리에 이건하고 중창한 것입니다. 이들 누정은 비록 누정 건축으로서 장소성은 잃어버렸으나 본래의 건축이 가지고 있던 기능이나 형태는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진안의 누정은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본래 가지고 있던 누정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장소에 건축되었고, 다양한 연유와 배경에서 창건됐습니다. 특히 수선루, 만취정, 쌍계정과 같이 암벽을 이용한 건축과 용담댐 이전 등으로 인하여 장소성을 상실한 누정 건축도 있어 진안의 지역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용담대교는 용담면 수천리와 호계리를 연결하는 교량입니다. 용담호 호반 도로에 있는 긴 다리로, 2000년에 준공된 용담댐 이설 도로로 현 지방도 795호선에 속합니다. 용담면 호계리 분기점에서 수천리 남산 기슭으로 연결됩니다.
용담호 호반 도로에서 가장 긴 다리이므로 용담호의 이름을 따서 용담대교로 명명했다고 합니다. 다리 길이는 480.9m, 폭은 10m, 높이는 지면으로부터 58m입니다. 교각과 이웃하는 교각 사이를 정의하는 경간의 수는 7개이고 경간의 최대값은 70m입니다.
용담호 주변에 11개 노선 64.4㎞의 이설 도로와 월포 대교, 용평 대교, 용담 대교, 언건 대교 등의 교량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댐 왼쪽에 설치되어 있는 여수로 5개가 1억 3700만 톤의 홍수 조절 능력을 갖추고 있어 상습 침수 지역인 금강 중류, 하류 지역의 홍수에 대비할 수 있다. 수력 발전소에서는 연간 1억 9800만㎾의 전력을 생산합니다.
용담댐 건설로 생긴 용담호와 주변 경관이 빼어나 인근의 마이산·운장산·구봉산 등과 연계한 전라북도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 코스가 되고 있습니다.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용담댐 호안 용담댐 물문화관에는 용담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에 대한 갖가지 기록물과 수몰 지역 분포도, 금강 상류의 동·식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진안군은 2013년 9월 11일 송영선 진안군수, 구동수 진안군의장, 김대섭 도의원, 수몰주민 등 약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용담호사진문화관 개관식을 가졌습니다.진안군은 실향민들을 위한 사업을 고민하던 중 방대한 양의 수몰 당시 수몰민들의 생활·고향모습을 찍은 흑백사진과, 수몰민들의 유물 및 생활도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구)모정휴게소를 용담호사진문화관으로 리모델링하여 전시를 하게 됐습니다.
용담호사진문화관에서는 수몰민들의 애환과 추억이 담긴 사진전을 매년 3~4회 열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철수씨를 사진문화관 관리자로 채용하고, 그가 촬영한 용담댐 수몰사진 2만4000점과 유물 2천300점을 순차적으로 공개합니다. 개관식과 함께 문을 연 첫 번째 전시회는 ‘물에 잠긴 고향, 사진에 남은 사람’을 주제로 사진문화관 1층에 전체 작품 중 40점을 선별해 전시하며 2층에는 각종 유물들을 전시했습니다. 이 전시회가 끝난 g후, 전체 작품을 투쟁, 갈등, 이별, 철거, 담수, 준공, 향수 등 갖가지 테마로 엮어 매년 3~4회의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이들 사진은 마을 산천과 집, 빨래터, 나물 캐는 할머니, 농부의 일상사, 낡았지만 정겨운 마을회관, 물장구 놀이하던 냇가 등 수몰민들이 그리워할 고향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있으며 이삿짐을 쌓아놓고 이웃들과 눈물의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나 다 허물어져 내린 집 앞에서 막소주를 들이켜는 할아버지의 슬픈 표정 등 수몰민들의 희로애락도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또한 사진문화관을 찾으면, 문패·일기장·땅문서·족보 등 일상적인 것 뿐 아니라 일제시대 용담댐 건설을 반대하는 탄원서와 농지상환문서 유물 2천300점도 볼 수 있습니다. 진안군은 사진문화관을 향후 지속적 전시 뿐 아니라 전국 60여개 사진학과 대학생들과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찾아와 사진촬영과 필름현상·사진인화까지 체험 할 수 있는 명소로 가꾸어 나나고 있습니다. 송영선 진안군수는 “용담호사진문화관 개관을 축하하며, 용담호사진문화관이 고향을 잃은 수몰민 등 군민이 다양한 당시 사진과 유물 전시를 보며 향수를 달래고,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는 귀중한 장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고 말했습니다. 다 허물어져 내린 집 앞에서 막소주를 들이켜는 할아버지의 슬픈 표정, 이삿짐을 쌓아놓고 이웃들과 눈물의 인사를 하는 사람들 등 수몰민들의 희로애락이 녹아있습니다.
‘물이 차도 안나갈란다’란 사진 앞에 시선을 모아봅니다.
사진가는 용담댐 착공 당시 진안군 5개면 60여 개 자연마을 주민 1만 여 사람들이 조상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죽어도 못 떠난다는 절규를 흑백필름에 담았습니다. 사진을 보면 수몰 예정 마을 주민의 애절한 반대 투쟁과 허망한 일상 생활 모습들이 소박하게 묻어납니다. 대를 이어 물려받을 땅을 일구며 살아온 고향을 지키려는 처절한 투쟁이었으나 지금은 시퍼런 호수가 되어 흰구른과 산그림자만이 찾는 이를 맞이할 뿐인데... 그 언저리에서 그때 그 모습들을 기록한 흑백사진들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글=이종근 기자, 사진=이철수 용담호사진문화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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