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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용담

[19]정천면 이포마을


   


 

정천면 이포(伊浦)는 지금으로부터 300여년 전에 최()씨와 정()씨가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용담면과 정천면의 경계인 고남이재 밑, 정자천을 건너 산 기슭 아늑한 자리에 터를 잡은 마을입니다. 처음에는 마을 앞에 흘러가는 금강 상류 맑은 냇물에서 고기를 잡으면서 살았다고 해서 이포라 불렀다고 합니다.

이포마을은 뒷산이 그물을 친 형국으로 둥그스럼하게 둘러 내려와 옆으로 엎드린 산의 모습이다. 천건방에서 물이 들어와 총사방으로 흘러 간다. 앞산은 마치 그물을 친 형국으로 늘어서 있으니 마을 이름인 망화리의 연유가 된다. 앞산은 홍두깨를 옆으로 뉘어놓은 것처럼 늘어서 있어 귀함이 적은 터이다. 서남쪽으로 연꽃이 물 위로 피어 오른다고 하는 연화출수 명당이 있다. 백호에 길이 반대쪽으로 높이 나 있어 터를 압박하는 까닭에 부녀가 드세고, 거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곤봉산이 높아 짐안에 내주장이 강할 형국이고, 백호가 고요체로 되어 있어 배우자를 잃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이는 이곳의 결록(訣錄)’입니다. 1997년 봄 3명의 아낙네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갑니다. 당시엔 이곳엔 70 여명의 사람들이 살았다고 합니다. 까치집이 자리한 고목 1그루와 좀더 키가 작은 또다른 고목이 아 마을의 오랜 역사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 된 봄이 오지 않은 듯 합니다.

꽃피는 봄이 오면 내 곁으로 온다고 말했지 노래하는 제비처럼 언덕에 올라보면 지저귀는 즐거운 노랫소리 꽃이 피는 봄을 알리네 그러나 당신은 소식이 없고 오늘도 언덕에 혼자 서있네 푸르른 하늘 보면 당신이 생각나서 한 마리 제비처럼 마음만 날아가네 당신은 제비처럼 반짝이는 날개를 가졌나 다시 오지 않는 님이여

윤승희의 제비처럼으로 오늘도 언덕에 혼자 서 있네 푸르른 하늘 보면 당신이 생각나서 한 마리 제비처럼 마음만 날라가네 당신은 제비처럼 반짝이는 날개를 가졌나 다시 오지 않는 님이여~’란 부분을 생각하면서 다시금 노래를 불러본다.

정천면 망화리(網花里)는 그물로 자라를 잡는 형국인 어망곡(魚網谷)이 이포 쪽에 있고 척금 쪽에는 이목곡(梨木谷)이 있어 그물의 ()’과 배꽃의 ()’를 취해 불러진 이름입니다.조선 말 용담군 이남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안군 정천면에 편입됐지만 2000년 용담댐 건설로 망화리 전체가 수몰됐습니다.

용담댐 수몰로 주민은 한 사람도 살지 않고 산과 물만 남아 있는 오늘에서는. 북쪽으로 용담호에 접하고, 중부와 남부 지역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몰 이전의 현황은 동쪽에 안천면 삼락리, 서쪽은 모정리, 남쪽은 상전면 용평리와 구룡리, 북쪽은 용담면 월계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수몰 이전 이포 마을은 면내에서 자연 마을로 가장 큰 마을이었으며, 동쪽에는 재궁 마을(척금 마을)이 있었습니다.

옛 지명으로는 배나들이 있습니다. 이포 서쪽에서 모정리 들곡으로 흐르는 내로 예전에는 배가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그외에 모양이 말똥처럼 생겼다고 한 말똥바우, 이포 북쪽 앞에 있었던 서원논이라는 지명이 있습니다. 과거 서원이 있었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는군요,

이천(伊川)은 정천면 망화리를 흐르던 정자천의 하류였으나, 지금은 용담댐의 건설로 수몰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정자천의 유래가 된 중국의 현인인 정자(程子: 程灝)의 동생 정이(程頤)의 호가 이천(伊川)이기에 정자천의 하류를 이천이라고 부른 것으로 보입니다. 고지도인 광여도해동지도에는 이포 앞을 흐르는 강을 이천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천의 지명 유래와 관련이 깊은 이포(伊浦)라는 곳은 이천 변에 위치한 포구라는 의미로, 1872년에 제작된 고지도에 비로소 등장합니다. 호남읍지정자천은 심원동(尋源洞)에서 발원을 하고 이천(伊川)으로 들어간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자천에서 이천이라 불렸던 구간인 망화리 일대는 현재 상당 부분이 용담호에 수몰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천이라 불리던 구간이었을 정천면 북쪽 지역은 용담면 월계리와 맞닿아 있고, 서쪽에는 정천면 모정리와 접하고 있습니다. 남쪽으로는 상전면 용평리와 구룡리가 있는데, 모두 용담호에 수몰되어 있는 구역으로, 동남쪽 안천면 방향으로만 육지로 이어져 있을 뿐입니다.

이천은 정자천의 하류 망화리 일대의 구간이었으나 지금은 용담호에 수몰되어 흔적을 찾기 힘듭니다. 수몰되기 이전에는 모정리와 망화리를 이어주던 이천 구간의 다리들은 여름철 홍수가 있을 때마다 물이 불어 오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향민들은 그때마다 다리를 사이에 두고 멀리서 수화(手話)로 의사 소통을 하였던 시절을 회고하곤 합니다. ‘이천이라는 이름과 관련되어 있는 이포 마을은 망화리의 북서쪽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수몰됐습니다.

성남리 산성(城南里山城, 월계리 산성)은 용담면 월계리 산 62-15번지의 삼국시대 석성이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용담 고적조의 고산성 재현동십삼리 석축주이천이백십일척 금폐(古山城 在縣東十三里 石築周二千二百十一尺 今廢)’에서 고산성은 백제 고지(百濟故地)에 있었던 산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남리산성은 용담면 월계리 성남 마을의 서북쪽 성재산의 정상부와 능선 아래쪽에 자리합니다. 성재산은 동쪽으로 뻗어 흐르다가 금강 변에서 남동 방향으로 돌출되어 금강이 크게 U 자형으로 굽이칩니다. 성남리산성은 전북 동북 지역의 고대 교통의 요충지로 수륙 교통이 활발한 곳에 있습니다. 축성법 및 유물 양상에서 볼 때 백제 시대로 판단되는 바, 인근 백제의 와정 토성, 가야 토기 및 백제 토기가 출토된 월계리 황산 고분 떼 등의 유적과 비교해 보면 이와 비슷한 시기로 생각됩니다. 성남리 산성은 백제 동성왕 대의 대가야 진출과 관련된 관문지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청동기시대 이전의 유적에 비해, 원삼국 시대의 유적은 정천면 망화리 이포마을에서 타날문 토기편이 수습된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확인되지 않아 현재로서 그 성격을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진안군과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비슷한 문화 양상을 보이는 장수군, 충청남도 금산군 일원에서 다수의 원삼국 시대 생활 유적이 조사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조사된 생활 유적들은 평면 형태나 구조, 출토 유물 등에서 전라북도 서해안 지역에서 주로 확인되고 있는 마한의 전형적인 주거 양식과 금강 중류, 남해안 일대의 주거 양식이 혼재된 특징을 보이고 있어 문화상으로 점이 지대를 이룹니다.

진안고원은 삼국 시대 백제, 신라, 가야의 역학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평가될 수 있다. 진안고원의 화려했던 역사와 문화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만 하는 과제로 생각됩니다. 그동안의 각종 지표 조사와 개별적인 학술 조사를 통해, 진안고원의 문화 유적이 상당 수 알려진 만큼, 이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꽃 피는 봄이오면 내 곁으로 온다고 말했지~” 윤승희의 제비처럼노랫말처럼 긴 겨울이 끝나고 따뜻한 봄을 환영하듯 화사하게 핀 꽃들은 제비들이 지저귀는 노래소리 같습니다. 가사 마지막 부분에 당신은 제비처럼 반짝이는 날개를 가졌나 다시 오지 않는 님이여~”를 고쳐 우리네 인생 3막에서는 팬들에게 다시 오는 님이여~”가 되길 기대해봅니다.

<=이종근 기자, 사진=이철수 용담호사진문화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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