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군엔 진안고원의 마을과 마을을 잇는 도보 문화 여행길이 있습니다. 진안고원길은 마을길·고갯길·숲길·옛길·논길·밭길·물길 등을 통해 진안군을 환형으로 이은 도보길입니다. 100여 개 마을과 50여 개 고개를 지나며, 마을과 마을의 문화를 이어 주는 길이기도 합니다. 전북도가 2010년 14개 시군에 15㎞ 내외의 도보길 조성 사업인 ‘예향 천리 마실길’ 사업을 합니다. 이에 마실길이 전북 여기저기에 생겨나게 됐고, 결국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과 진안만의 특성을 갖는 진안고원길로 명칭을 변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북은 개마고원, 남은 진안고원’에서 고안했으며, 고원이란 단어가 갖는 청명함과 생태적인 이미지가 긍정적인 느낌을 자아냅니다. 2011년 비영리 민간 단체인 ‘진안고원길’ 설립과 함께 도보길 ‘진안고원길’도 정식으로 명명됐습니다.
이 가운데 11구간은 용담면사무소에서 안천소운동장에 이르는 16.6㎞ ‘금강 물길’입니다. 용담호에 잠긴 금강 본류를 따라 걷는 길입니다. 용담댐 공도교를 지나 용담호변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 다소 깁니다. 안천면소재지에 이르며 용담댐 아래에서 감동마을에 이르는 감동벼룻길이 샛길로 이어져 있습니다. 11-1구간은 용담체련공원에서 감동에 이르는 3.7㎞ ‘감동벼룻길’입니다. 자연스럽게 굽어지는 물길을 따라 섬바위와 벼룻길을 지나는 매우 아름다운 공간으로, 벼룻길은 바위와 로프, 양치류 숲길이 위치, 반짝이는 금강을 만나 수 있습니다. 12구간은 안천소운동장에서 동향면사무소에 이르는 19.8㎞ ‘고개 너머 동향길’입니다. 갈티재, 갈골재, 가래재, 말고개로 이어지는 동향면 고갯길입니다. 골짜기마다 자리한 마을을 지나 숲이 무성한 오래된 임도를 걷다 보면 멀리 백두대간과 덕유산이 눈에 들어옵니다. 마지막으로 구량천을 따라 면소재지에 닿는 가장 긴 구간입니다.
1998년 봄엔 이미 망향정이 세워졌습니다. 저멀리로 안천면 면소재지 왼편엔 당산나무, 오른편엔 학교의 모습이 보입니다.
‘‘물에 잠긴 내고향’. 까마득한 옛날 햇볕과 달빛만 내려 쬐던 소백과 노령의 골짜기 금강 줄기따라 펼쳐진 이곳. 움집과 귀틀집 오막살이 초가에 기와집 슬레트 집터 다져 한껏 맵시내어 지어놓고 오손도손 아들 낳고 딸 낳고 부지런히 일하며 서로 돕고 아끼며 삶의 보금자리 닦아온 내 고향. 먼먼 할아버지 할머니 점지해준 터전이라 그 마음 그 핏줄 이어받아 가꿔온 열한마을 오백다섯가구 이천이백이십다섯 사람들. 이제는 동서남북 살길 찿아 뿔뿔히 헤어지니 언제나 예전처럼 스스럼없이 마주하리. 물결만 넘실거리는 용담호에 고즈넉이 잠겨있는 내 고향 내집 살구나무엔 언제나 봄이 다시 돌아와 꽃을 피울 것인가? 아! 영영 물속에 잠긴 내고향! 내 삶의 터전아! 슬픔과 괴로움 이제 송두리째 지워버리고 새 삶의 앞길에 힘이 솟으라,영광과 번영 있으라!
망향의 탑에는 그 때의 고향을 그리는 글귀가 이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물 속에 잠긴 고향 땅에서 떠 밀린 수몰민들의 하눌이 터전 ‘망향의 동산’. 수몰과 함께 지난 1998년 안천면 노성리 보한마을에 망향탑과 함께 세워졌습니다.
금강 줄기를 따라 오백여가구 이천이백여 주민들이 오순도순 논밭을 일구면서 정을 나누며 모여 살던 고향의 자취는 이제 저 깊은 물속에 옛추억과 함께 말없이 잠겨 있습니다. 망향의 동산 한쪽엔 그동안 마을을 빛냈던 사람들의 공덕비 등이 옮겨져 놓여있는 모습이 웬지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요, 아마도 그들이 공들였던 마을도 사람도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의 곁을 지켜주지 않기 때문은 아닐런지요.
안천면(顔川面)은 용담현(군)의 지역으로 용담과 연혁과 역사를 같이 합니다. 백제시대에는 물거현(勿居縣), 757년 통일신라 시대에는 청거현(淸居縣), 1313년 고려 충선왕때에는 용담현(龍潭縣)의 지역이었습니다. 1895년 용담현이 용담군이 되면서 안천지역은 용담현의 북면 이었다가 오늘의 삼락리와 송풍리를 묶어 일북면으로 면소를 설치하였으며 노성리, 신괴리, 백화리를 이북면으로 했습니다. 면의 지명은 안천면을 흐르는 안자천(顔子川)과 관련이 있습니다. 안천면은 본래 용담현의 지역으로서 북면이라 했습니다. 뒤에 일북면, 이북면으로 나뉘었다가,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이북면과 일북면의 삼락리 지역 및 무주군 부남면의 교동 일부를 병합, 만들었습니다. 안자천이 흐르므로 안천면이라 이름을 붙이고 노성리·백화리·신괴리·삼락리의 4개 법정리로 개편 관할하고 있습니다.
동부는 지장산, 쌍교봉(雙轎峰), 형제봉 등을 경계로 무주군 부남면과 접하고, 북서쪽은 금강을 사이에 두고 진안군 용담면과 마주하며, 서남부는 고산 줄기가 상전면·정천면과 경계를 이룹니다. 면내 각지에서 흘러내린 물은 안자천으로 흘러 용담댐으로 들어갑니다. 삼락리의 모든 마을과 노성리의 대부분, 백화리·신괴리의 일부분이 용담댐 건설로 수몰됐습니다. 주요 산업은 미작 위주의 농업이었으나 용담댐 수몰로 농경지가 상당 부분 수몰되고, 지금은 특용 작물인 머루·영지·포도 등의 과수와 축산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1997년에 50여 세대가 살았던 정천면 여의곡엔 이장 전용 앰프가 보입니다. 여의곡(如意谷)은 진안 용담간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 교통이 편리하고 비교적 넓고 기름진 들을 가지고 있는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약 200여년 전에 김씨 일족이 정착하게 되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모든 일이 뜻대로 잘 이루어진다고 해서 마을 명칭을 ‘여의실(如意室)’이라 불렀으나 그후 주민들이 이 마을 주위에는 산골이 많으니 ‘실(室)’자를 ‘곡(谷)’자로 고치자고 해서 ‘여의곡(如意谷)’이라 개칭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뒤에는 금반이라는 형의 큰 명당이 있는 바, 삼정승 육판서가 나오는 곳입니다. 앞산에는 옥배형의 명당이 있으며 금반 왼쪽에는 옥저와 옥병 등 금반형 주변에 해당되는 명당을 고루 갖추고 있어 마음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의 여의곡이란 마을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여의곡 이장은 주민들에게 전달할 것이 있으면 앰프를 켭니다. "아아, 잘 들립니까." 이장의 구수한 목소리가 시작되면 앰프 소리에 놀란 동네 개들이 모두 짖어대기 시작합니다. 이때를 놓칠리 만무한 닭과 오리들도 함께 웁니다. 이장님의 앰프 소리로 조용했던 마을이 요란해집니다. 급한 일이 있으면 새벽에도 앰프가 울어 잠을 설칠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이장의 앰프소리가 좋았습니다. 이장의 전달사항은 농사에 관한 일과 마을 대소사들입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그 소리에 마을도 저도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곤 하지 않았나요.
알뜰한 그 맹세에도, 실없는 그 기약에도, 얄궂은 그 노래 가사처럼 봄날은 무정하게 갑니다. 가는 세월 막을 수 없듯이 가는 봄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이든,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이든,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이든 우리네 인생길. 봄날은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무지개와 구름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꿈이 있고 사랑이 있으면, 당신은 아직도 봄날입니다. 봄날은 가지만 용담호에 사랑과 희로애락, 보은지정을 그대 곁에 두고 갑니다. <글=이종근 기자, 사진=이철수 용담호사진문화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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