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전면 구룡리 금당마을은 대덕산에서 나온 지맥이 감돌아서 보는 형으로 된 곳에 자리잡은 터로, 남향으로 바람이 잠자고 온화한 곳입니다. 상전면 구룡리는 구렁들을 끼고 이뤄졌으므로 한자로 ‘구룡’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고산 줄기가 북쪽으로 이어져 불당골재를 경계로 하여 안천면 신괴리와 접경하고, 이 산등성이가 더 북진하여 대양밭재 등성이를 경계로 하여 안천면 노성리와 접경합니다. 불당골재 아래로 지금은 불노치 터널이 뚫려 국도 30호선이 통과한다. 대양밭재는 구룡리 금당 마을과 안천면 대양밭재를 이어 주는 통로였습니다.
서쪽은 금강이 휘돌아나가는 곳이라 동고서저형의 지세였다. 서쪽은 예전 금강을 경계로 하여 상전면 용평리와 접경하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용담댐 담수로 호수가 되어버려 경계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북쪽은 고산 줄기가 서쪽으로 휘어진 산등성이를 경계로 하여 정천면 망화리와 접경하고, 남쪽은 고산 줄기가 사창산을 이루고 뻗어 내린 산등성이를 경계로 하여 상전면 월포리와 남북으로 접경합니다.
구룡리는 상전면 동북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행정리로는 금당·세동이 있습니다. 용담댐 수몰 이전에는 세동·불노티·코크니(금당) 등의 자연 마을이 있었으나 모든 마을이 물에 잠겨 새로 조성된 세동·금당만 남았습니다. 세동 마을은 마을이 가늘고 길게 형성되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국도 30호선이 용평대교를 거쳐 불노치 터널을 지나 안천면과 연결되는데 면도가 각 마을을 이어 주고,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정천면 망화리 지역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다.
금당마을은 용담군 남면지역이었으며 남면을 다시 둘로 나뉠 때 이남면 비대리였습니다. 1914년 3월 1일부터 진안군 정천면 구룡리 비대가 됐습니다. 1983년 2월 15일에 상전면에 편입되어 진안군 상전면 구룡리 금당이 됐습니다.
금당마을은 웃뜸과 아랫뜸 그리고 건너뜸으로 불려지기도 했지만 한뜸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건너뜸은 옛날 닥나무로 한지를 만들던 지소가 있어 ‘지소뜸이하 하던 것’을 건너뜸으로 고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록에는 ‘동남쪽에 있는 범꼬리 명당은 대지중소로 3등급이다. 천자나 되는 산세로 내려왔기에 권력있는 벼슬아치가 나오는 비단천동혈의 터이다. 동북쪽에 있는 금계포란형 명당은 간룡이 임해입수해 회룡고조격이고, 인건방에서 물이 오니 큰 부자가 나오는 터’로 나옵니다.
금당에는 ‘오탑삼석(五塔三石)’이 있었습니다. 언제 누구에 의하여 쌓아지고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들은 부락의 수구막이었으며 동네의 운이 밖으로 빠져 나가지 않도록 배치됐습니다.
마을에서 보아 구렁들의 반에서 소나무 숲까지의 20미터 거리에 다섯개의 누석단(돌탑)이 일정한 간격으로 있었습니다. 농사짓는데 걸린다고 해서 없애버려 흔적만 남아있습니다. 삼석의 경우, 1번석은 불로티에서 마을에 들어올 때 교회를 지난 오른쪽 둑 위에 있었습니다. 2번석은 소나무 숲을 바라보는 옛날 오탑을 거느린 장방향의 돌이며, 3번석은 마을에서 운암으로 가는 동구밖 길 왼쪽에 서있었습니다.
진안의 돌탑은 마을에 따라서는 주당산(堂山)으로 모셔지기도 하고, 혹은 하위보조신(下位神助補)으로 모셔지기도 합니다. 특히, 풍수 지리적으로는 마을의 수구막이, 비보(裨補)의 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 일컬어집니다.
이상훈선생의 말을 빌리면, 진안 지역에서 현존하는 39개 마을의 탑 형태는 일반적으로 원통형입니다. 원통형은 위와 아래를 똑같이 둥글게 쌓은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자연적으로 조성된 서낭당과 구분됩니다. 탑은 대체로 아무런 장치 없이 쌓지만 예컨대 주천면 무릉 마을, 마령면 계남 마을에서와 같이 탑에 감실을 설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 제를 모실 때 감실에 촛불을 켜고 술을 붓기도 합니다.
보통 탑은 일반적으로 마을 입구에 위치합니다. 특히, 탑이 세워지는 공간은 마을에서 보았을 때 허(虛)한 곳에 세워집니다. 탑에 세워진 숫자는 진안 지역의 경우 보통 1기, 2기가 세워집니다. 탑이 현존하는 39개 마을 중에서 1기가 세워지는 경우는 29개 마을입니다. 이중에서 본래 2기였으나 현재는 1기만 있는 경우가 주천면 용덕리, 안천면 상리 마을, 동향면 상향 마을, 하향 마을 등 4개 마을에서 나타난다는 이선생의 설명입니다.
안천면 상리 마을, 동향면 하향 마을의 경우는 1기만 소실되어 1기만 남은 경우입니다. 주천면 용덕리, 동향면 상향 마을, 정천면 마조 마을은 2기 모두 없어졌다가 1기만 복원하게 돼 1기만 있는 경우입니다. 현재 2기인 경우, 정천면 갈거 마을, 상항 마을, 안천면 율현 마을, 용담면 윈회룡 마을, 진안읍 종평 마을, 내사양 마을, 백운면 원노촌 마을, 대전 마을, 비사랑 마을, 동향면 내금 마을 등 10개 마을에서 나타납니다.
그런데 정천면 하초 마을에는 4기가 있습니다. 하초 마을에는 본래 2기가 있었는데 마을이 새로운 길을 내면서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자 새로운 길에도 양쪽에 1기씩 쌓아 4기가 된 경우입니다.
정천면 원월평 마을에는 5기가 있습니다. 원월평 마을의 경우, 본래 마을에 3기의 돌탑이 있었으나 2기가 수몰 지역 가까이 있어 없어지지 않았는데 2003년 다시 2기를 세워 5기가 됐습니다. 현재는 수몰되었지만 상전면 금당 마을에는 5기가 세워진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금당 마을 앞이 매우 허하여 마을 정면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5개의 탑과 3개의 입석을 세웠다고 해서 흔히 ‘오탑삼석(五塔三石)’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탑삼석’은 금당 마을의 수구막이로 마을의 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성했다고 합니다.
상전면 금당마을에서 용평초등학교 쪽으로 가는 길이 저 멀리 보인다. 이때 30여 세대가 살았으며, 당산나무가 건재했습니다.
폭의 수채화처럼 고요히 자리잡은 작은 마을 어귀에서 당산을 만나고, 뒷산에 오르면 조상들의 선영이 반기듯 맞이하는 살듯한 풍경, 한국화처럼 펼쳐집니다. 얼추 짐작에도 몇 백 년은 족히 되고도 남을 당산나무는 고향의 역사를 대변하는 상징이며 우리의 정체성이며 혼의 상징. 노거수가 자리한 터는 기운생동이 한껏 느껴지는 길지이며, 명당이란 등식을 성립합니다. 무엇보다도 한 곳에서 천 년이 넘도록 살았으니 건강하게 생명 활동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요소와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곳이 아닌가. 만약 그곳에 사람이 집을 짓고 살았다면 장수와 복록을 누렸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리라. 그러나 하늘 높이 솟구친 가오리연의 행방을 찾지 못해서 인가, 꿈과 소망은 아련한 기억 저편 너머로 잠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난, 사연 깃든 나무 그늘 아래, 적막함만이 오후의 햇살과 함께 녹아내리면서 부챗살처럼 펼쳐집니다.
황톳빛땅은 변한 게 하나도 없어 그대로인데, 회상의 그림자만 푸른 솔가지에 슬며시 걸어놓은 채 우리네 인간들은 바람처럼 왔다가 구름처럼 사라져가누나. 소꿉놀이 친구 철영이와 달래는 머리 위에 곱디 고운 이슬이 내렸구요. 무장양반이 타고 간 꽃상여, 그리고 검둥이와 까투리의 행방, 속시원히 알려주세요.
조안 말푸프가 펴낸 ‘나무를 안아보았나요’는 서정적인 언어로 우리를 숲 속 나무 사이로 이끕니다. 피톤치드 이야기, 소나무에 둥지를 튼 독수리 이야기, 바구미가 많은 도토리를 좋아하는 다람쥐 이야기 등을 읽다보면, 나무와 좀더 친해지는 느낌입니다. 또한 환경운동가이기도 한 저자는 과격하지 않은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합니다.
숲에 있는 나무를 베어내 마련한 자금으로 공원을 세우겠다는 시 당국에 맞서 저자는 과격한 반대운동을 펴는 대신, 사람들을 모아 숲 속 나무 하나 하나에 9.11 테러 희생자의 이름표를 거는 것으로 맞섰습니다. 평범했던 숲은 9.11 추모 숲으로 다시 태어났고, 곧 베어질 위기에 처했던 나무는 무사히 제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밥 한 술에서 따사로운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 농부의 땀을 떠올린다고 하는데, 조안 말루프는 종이 한 장에서 나무, 다람쥐, 새, 딱정벌레를 떠올립니다.
그래서 그녀는 종이 한 장을 쓸 때도 조심스럽다. 종이는 자연이 오랜 세월 키워낸 나무와 작은 생물들의 생명을 대가로 얻은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선택이 항상 옳다’라는 소신을 가진 조안 말루프는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하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7대 후손까지 고려해 어떤 일을 결정했다는 사실을 예로 들면서, 무차별적인 개발 풍토에서 벗어나 좀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자연을 대할 때, 우리가 어떤 것들을 얻을 수 있는지 이야기합니다. 조안 말푸프가 진안에 욌다면 뭐라고 말을 했을까요.<글=이종근 기자, 사진=이철수 용담호사진문화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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