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진안용담

<16> 정천 조림초등학교




    

 

진안군의 중북부에 위치한 정천면은 북쪽으로 진안군 주천면과 용담면, 남서쪽으로는 부귀면, 남쪽으로는 진안읍, 동남쪽으로는 상전면과 접합니다. 정천면이라는 지명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면 가운데를 흐르는 정자천(程子川)에서 유래됩니다.

정천면 지역은 본래 용담현의 남면(南面)이었스빈다. 뒤에 일남면(一南面)과 이남면(二南面)으로 나뉘었다가,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병합해 정천면이라 이름했고, 진안군에 편입돼 구룡리·망화리·용평리·모정리·갈용리·봉학리의 6개리로 개편 관할합니다. 197371일 대통령령 제6542호에 의거 상전면 월평리를 병합, 7개리가 되었다가, 1983215일 대통령령 제11027호에 의거 구룡리를 상전면으로 편입시키고, 198711일 대통령령 제12007호에 의거 용평리를 다시 상전면으로 편입시켜 5개리가 되었다. 용담댐 건설로 인한 수몰로 2000311일 면사무소를 봉학리 상조림 마을로 신축 이전합니다.

면의 동쪽에는 용담호가 있으며 서쪽은 운장산이 완주군 동상면과 경계를 이루고, 남서쪽의 옥녀봉이 부귀면과 경계를 이룹니다. 부귀면에서 흘러온 월평천과 운장산에서 발원한 봉학리의 개천, 갈거리 계곡의 개천은 모두 용담호로 합수됩니다.

면은 5개 법정리에 26개 행정리가 있었으나 갈용리·모정리·망화리의 대부분과 봉학리, 월평리의 일부분이 용담댐으로 수몰됩니다. 이에 지금은 5개의 법정리와 15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마조·학동·상항·조림·신양이 속한 봉학리, 갈두·무거·갈거·조포가 속한 갈용리, 용정·정자동이 속한 모정리, 이포가 속한 망화리, 상초·하초·원월평이 속한 월평리입니다.

정자천 주변은 예로부터 경치와 풍광이 아름다웠으나 용담댐의 건설 이후에 대부분의 마을들과 시설물들이 물속에 잠겼습니다. 용평리 신연 마을의 경우에는 조선 시대 마을에 내려진 신도비가 있었던 바. 지금은 용담호를 건너는 대교 옆으로 이전해 세워져 있습니다.

정자천의 이름을 아시나요. 주변에 정자가 있다고 해서 정자천이라고 불렸으나, 이웃한 주천면과 용담면 지역에 주자천(朱子川)이 흐르므로 이에 견주어 중국의 현인인 정자(程子)와 맞추어 이름을 고친 듯하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여지도서용담현 산천조에는 정자천은 현의 남쪽 15리에 있는데, 진안에서 발원하여 달계천으로 들어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1996년 봄 사랑이 넘치는 조림꿈동산조림초등학교 운동장에 동생과 형이 카메라 앞에 서있습니다.

춘삼월의 봄볕이 뿜어 나오기 전, 형의 손을 잡고 입학하는 아이들의 궁금함과 약간의 두려운 듯한 눈빛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마냥 어린 아이 같기만 했던 우리 아이들,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가 나오면 철부지 같았던 이 녀석이 언제 이렇게 컸을까 내심 대견하기도 하지만 학교에서 잘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흰 손수건 달고, 코훌쩍이며 땡깡 부리던 이제는 어렴풋하게만 기억나는 나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떠오릅니다. 50 여년전 입학식을 떠올리면, 선생님 구령에 맞추어 앞으로 나란히하며 굳은 표정으로 줄을 맞추어 서고, 왼쪽 가슴엔 코 닦을 흰 손수건을 달고 뒤에 엄마가 있는지 불안한 모습으로 뒤돌아 보곤 했던 낯설고 엄숙한 자세의 입학식이 연상됩니다. 가제 손수건의 용도는 훌쩍이던 코를 닦기 위함이었는데 그 시절 아이들은 왜 그렇게 코를 흘렸던지요. 정작 시퍼런 콧물은 가슴에 단 손수건에 닦지 않고 옷소매에 스윽 문질렀지만요. 코를 유난히 많이 흘렸던 친구는 코찔찔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부모의 품에서 처음으로 벗어난 두려움과 새 친구들을 만나는 설렘으로 한껏 들떠 있었으며 부모 역시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덩달아 설레는 날이 바로 그날이지요.

입학식이 끝나고 학교생활이 시작되는 다음날부터 부모님들은 학교까지만 아이를 데려다주고 가거나 대부분 언니, 형과 함께 등교하지만 그래도 못미더운 부모님 특히 할머님은 아이가 끝날 때까지 복도에서 서성거리기도 했습니다.

조림(照林)초등학교(정천면 봉학로 52)는 청정 진안의 고원길이 아름다운 정천면 용담호 자락에 위치한 아름다운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앞쪽으로는 옥녀봉을 바라보며 뒤쪽으로 운장산 정기를 안고 있는 1963년 개교한 이해 용담댐 건설로 현 위치로 이전습니다.

2008년 아토피 친화 학교로 지정된 이래 지금까지 자연 친화적 교육환경, 유기농 식단 제공, 숲체험과 아토피 힐링캠프 등 아토피 개선과 연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1960년 정천 국민학교 봉학 분교장으로 인가되어 196145일 개교했고, 1963년에 조림 국민학교로 승격됩니다. 1990년에는 학동 분교장을 통합하여 7학급으로 편성했고, 1996년에 조림초등학교로 개칭합니다.

당초엔 용담댐 건설로 수몰 예정 학교로 지정됐으나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유치 운동으로 1998년 정천초등학교를 통합합니다. 20001220일 현 위치인 진안군 정천면 봉학리에 학교를 신축하고 이전해 정천면의 유일한 초등학교가 됩니다.

날마다 새롭게 미래를 펼쳐 나갈 우리들/ 푸르른 꿈을 향해 쉼 없이 앞으로 가지/ 우리 모두 배움 찾아 여기에 모였네/ 사랑하는 좋은 친구들 사이좋게 지내자/ 세상을 변화시킬 큰사람이 자라는 곳/ 온누리에 퍼져 가는 조림 초등학교

이는 임태훈 작사, 홍정시 작곡의 교가입니다. 교목은 푸르름과 장수를 뜻하는 소나무, 교화는 사랑의 즐거움을 뜻하는 철쭉, 교조는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는 곤줄박이입니다.

선생님이 고쳐매 주는 왼쪽 가슴의 하얀 손수건은 1학년의 상징이자 시시 때때로 흐르는 콧물 눈물을 닦는 도구, 한창 쌈질하며 크던 남학생들에겐 코피를 닦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선생의 앞으로 나란히구령 앞에 어떻게 해야 할지 어리둥절한 눈망울을 굴리던 어린이들, 짝꿍의 손을 잡으라는 선생님의 지시에 어색한 손을 내밀까 말까 주저하던 기억, 낯선 환경이 두려워 울상이 돼 있는 친구, 개중에는 제법 당당하고 씩씩함이 풍기는 어린이도 있습니다.

뜻하지 않게 부끄러움이 유난히 많았던 동생에게 큰 일이 닥쳤습니다. 공부 시간에 변이 마려워 종이 치기를 기다리며 참고, 참고, 또 참았는데 선생님 이상한 냄새나요!” 짝꿍이 코를 킁킁거리며 손을 들어 선생님께 말했습니다. 동생은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예쁜 담임선생님은 배가 아팠구나!”하면서 화장실로 데리고 가 대충 수습을 하고, 형을 불러다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라 했습니다. 먼 산길을 걸어 오가면서 형은 아무 말도 없었고, 집에서는 엄마가 계시지 않는 틈을 타 동생이 더러워진 옷을 빨아서 널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비밀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짝꿍이 대신 손을 들어 선생님 야 오줌 마렵대요!” 하기도 했고 간간이 땡땡이를 치려고 거짓말로 변소 갔다오겠다 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귀신같이 이를 알고 그냥 싸!” 라거나 인제 시간 다 됐으깨 쪼끔만 참아!”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럼 한바탕 웃음으로 지루하던 수업 시간에 활기가 넘치기도 했지요.

때문에 신입생들 중에는 긴장감 때문에 대변과 배뇨를 잘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당시 지침서를 보면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땐 손을 들고 선생님께 똑똑히 말할 것등의 내용도 적혀있습니다.

오늘, 이들 2명의 아이들의 구김살없는 모습이 오랜 기억으로 남기를 바라며 이 학교에 올해 입학한 아이들이 아름다운 만남, 새로운 행복이 탄탄대로로 자리매김했으면 더 없이 좋겠습니다. <=이종근 기자, 사진=이철수 용담호사진문화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