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전주에서…… 철길 옆동네에서 살지 않았나요?” (중략)나는 전주 사람이었고 전주에서도 철길 동네 사람이었다. 주택가를 관통하며 지나가던 어린 시절의 그 철길은 몇 년 전에 시 외곽으로 옮겨지긴 하였지만 지금도 철로연변의 풍경이 내 마음에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나서도 전화 속의 목소리는 또 한번 뜸을 들였다.“혹시 기억할는지 모르겠지만 난 박은자라고, 찐빵집 하던 철길 옆의 그 은자인데…….” (중략) 박은자. 그러나 나는 그 이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하략)'
전주출신 소설가 양귀자는 단편소설 ‘한계령’을 통해 1960년대 주택가를 관통하며 지나가던 어린 시절의 철길과, 또 철길 옆 찐방집 딸 ‘은자’ 등 1980년대 이전 전라선이 이설된 전주시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전라선이 전주 시내를 관통하고 달렸던 적이 있다. 지금의 덕진광장 자리에 있었던 덕진역에서 전북대 구 정문 앞으로도 철로가 지났다. 기린로는 그 철로가 있던 자리이며, 시청 또한 철로의 흔적을 안고 있다. 특히 한옥으로 아담하게 지어진 역사(驛舍)는 전주다운 풍모를 자랑했었다고 전한다. 슬픈 이야기이지만, 옛 기차길 터널 ‘한벽굴’은 일본이 일제강점기를 틈타 한벽당의 정기를 자르고 철길을 만들었는데 전라선 터널이었다.
전주출신의 소설가 양귀자의 소설 ‘한계령’은 어린 시절 추억의 철길, 가슴 저리는 그리운 풍경 속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전주역 앞 6지구가 40년 만에 '첫 변신'을 하면서 옛명성을 되찾을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전주역 앞 첫 마중길이 윤곽을 드러내고, 전주역사 전면 개선을 위한 사전타당성조사가 시작되면서 역세권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기 때문이다. 전주역에서 명주골사거리까지 백제대로 약 1㎞ 구간을 문화광장과 명품가로숲 길 등으로 조성하는 첫 마중길 사업이 마무리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전주의 6지구는 고유 명사가 아닌, 보통 명사이다. 1지구에서 5지구까지의 개발이 이미 완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6지구처럼 지명으로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6지구 개발은 1982년에 끝나게 되고, 1981년 5월에 전주역이 현 시청 자리에서 우아동으로 이전하게 된다. 특히 지난 1970년대 후반 전주시의 늘어나는 도심팽창 현상을 충족시키기 위해 조성된 육지구 공공업무지구는 완주군청, 한국전력공사, 전북농협, 농어촌공사 등 도내 굵직굵직한 기관과 공기업 등이 입주하게 되면서 최고의 황금상권을 형성한 바 있다. 이번 기회에 육지구라는 명칭을 변경할 수는 없는 일일까./이종근(문화교육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