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정이’는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보통‘숲머리’라고 한다. 전주, 임실, 여산, 고창 등 전북 곳곳마다 자리한 ‘숲정이’는 숲이 칙칙하게 우거져 있는 인적이 드문 곳을 말한다. 일찍이 전주엔 ‘3대 바람통’이 있었던 바 ‘좁은목, 병풍바위, 숲정이’ 등 3곳의 바람 길목 또는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곳, 등골이 시원한 곳을 가리킨다. 유연대(油然臺)의 북쪽 끝, 속칭 부엉바위(현 진북사 터)에서 금암동 북추봉(현 KBS 전주방송 총국이 있는 언덕)의 불거진 벼랑의 암석까지를 직선으로 잇는 지역을 '숲정이'라고 한다.
숲정이는 이서구가 전라관찰사로 도임했을 때, 전주부성의 북쪽이 풍수설에 따르면 허하므로 1794년경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숲정이는 삼례앞 한내, 가래여울 그리고 쪽구름이(반월동), 가련평(가련산 밑), 사평(서신동) 들녘을 타고 불어오는 서북풍의 바람이 닫는 곳으로 현 동국해성아파트 일대를 가리킨다. 이곳은 북쪽이 허한 땅의 기운을 돕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한 숲으로 북서풍의 길목에 해당한다.
전라감영의 군 지휘소인 장대(將臺)가 있어 조선시대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지만 박해가 시작되면서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장으로 사용됐다. 1801년에 이순이와 류항검의 가족이 순교한 이후 1839년 기해박해 때는 충청도 출신의 김대권(베드로), 이태권(베드로), 이일언(욥), 정태봉(바오로)과 경기도 출신의 신태보(베드로) 등 5명이 5월 29일 이곳에서 순교했다.
또 1866년 병인박해 때는 정문호(바르톨로메오), 손선지(베드로), 한재권(요셉), 조화서(베드로), 이명서(베드로), 정원지(베드로) 등 6명이 12월 13일 이곳에서 순교하 바, 이들은 모두 1984년 5월 6일 성인품에 올랐다.
아어 순교자들을 추모하는 현양탑이 1968년에 세워지게 되었고 천주교에서 설립한 해성중 · 고교(현 삼천동으로 이전)도 진북동에 건립됐다. 1935년 6월, 치명비를 세운 직후의 허허벌판이었던 당시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가운데 앉아 있는 사람이 김양홍 스테파노 신부이고, 그 오른쪽이 이춘화 토마스(이학수의 아들), 왼쪽이 김후생 바오로 신부이다.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은 이철연 프란치스코 신부,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은 허일록 타대오 신부이다.
천주교 순교지 숲정이는 1984년 9월 20일 전북 기념물 제71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해성중고등학교가 1992년 삼천동 신축교사로 이전한 뒤 그 자리에 아파트가 건립되면서 본래의 순교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됐다. 숲정이성지는 해성 중고등학교 체육관으로 사용하던 윤호관 앞에 조성됐다. 고사에서 말하는 숲정이에 서북쪽의 찬바람을 막게 되면 만년(萬年)의 영화가 이곳에 같이 한다고 한 바, 한 번 기다려 봄직한 것인가. 배롱나무꽃이 순교자가 흘린 피인양 붉게 피었다./이종근 (문화교육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