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의 ‘高’자는 높을 고, 창 자는 높을 ‘敞’이다. 옛 이름 모양현(牟陽縣)엔 ‘보리 모(牟)’자가 들어 있고, 고창고등학교 교가에도 한겨울의 추위를 잘 이겨낸 보리를 통해 고창정신을 노래하고 있다.
방장산은 그림으로 치면 고창의 배경이 된다. 한없이 높고 드넓은 방장산을 굽어보는 바, 고창 동쪽으로 꼬막등 같은 집들과 명매기샘의 물줄기가 주진천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래서 ‘고(go)’창으로 불러도 좋을 이름이다. 주진천은 고수면 은사리 칠성마을 수량동의 명매기골에서 발원하고, 증산제를 통과한 뒤, 고창군 심원면 용기리 곰소만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이다. 고창천과 합류한 이후의 구간은 인천강(仁川江) 또는 태천(苔川)으로 부르고 있다. 명매기샘골(명막골)은 고창을 남북으로 관류하는 인천강의 시원지다. 천년고찰 문수사의 원시림으로 꽉메운 취령산 북쪽 건너 등성이 장무재의 동쪽 진등자락 남녘 골에 자리잡은 이 샘은 아무리 눈이 많이 내린 혹독한 겨울에도 결코 얼지 않아 고창 사람들과 꼭 맞닿아 있다.
저 멀리로 불어난 문수사의 계곡물은 가람을 에두르고 물이끼는 돌의 이마에서 한층 짙푸프다. 시나브로 계곡의 청량한 바람은 맑고 청아해서 꿈길을 걷는 듯 행복한 새벽길을 펼쳐놓는다.
그대여! 행여 시린 마음 달래려거든 '하늘닮은' 사람들의 희망, '하늘담은' 고창에 눈길 한 번만 주시기를. 엄동의 서해 바다로 물줄기가 향할지라도 윤슬은 더 찬란하고 이내 삶은 뜨거워집니다. 보리 피리를 잘라 고창에서 하룻밤만 묵어도 천년의 세월이다.
공음면 선동리의 학원농장은 울퉁불퉁 기묘한 산을 뒷그림으로 보리밭의 파란색과 농부가 갈아놓은 황톳빛 땅이 교차하면서 미묘한 5미6감의 하모니를 이룬다. 반짝반짝 보리밭 사잇길로 산산이 부서지는 아침 햇살을 맞는다. 사람들처럼 '까칠하고' 않고 '까실까실 정이 메마르지 않았던' 선조들이 생각나는 오늘이다. 고흐의 ‘종달새가 있는 보리밭'이 현실로 다가오는 징표인가. 종달새 몇 마리가 하늘 높이 떠 ‘파르르’, ‘뽀르르’ 목놓아 울부짓고 있다. 고개를 내밀고 내려다보면 오금이 저릴 만큼 아찔하기만 하다. 아니, 푸르다 못해 눈이 다 시릴 지경이다. 이곳의 마을의 형체가 부채 모양과 같다고 하여 ‘부채울’이라고 한 바, 그 바람이 지금 웰빙으로 불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경관농업 1번지 고창군의 ‘청보리밭 축제’가 21일부터 5월 13일까지 학원관광농원 일원에서 열린다. 25만여 평의 들판에 식재된 청보리가 봄기운을 가득 머금은 채 하루가 다르게 푸르름을 쑥쑥 채워가고 있으며, 원활한 교통과 주차환경 제공을 위해 신규로 주차장을 조성했다. 보리 물결이 출렁이면서 상념에 찌든 마음도 어느 새 맑아진다. 파란 꿈으로 수를 놓고 있는 희망도 종달새 지저귐과 더불어 여물어만 가는 여기는 고창이다.비바람에 찢겨져 흩어지느니 차라리 목을 꺾는 고창 사람들의 비장함에 이내 맘도 푸르게 푸르게 언제나 떨리며 흘러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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