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는 적어도 저에게 있어서는 제2의 고향입니다. 2003년 막걸리가 좋아, 친구가 좋아 눌러 않게 됐는데요, 금상첨화로 아내까지 전주 사람이니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뭐가 따로 있을까요. 막걸리 한 잔의 즐거움처럼 이곳 사람들은 투박하고 순수한 만큼 처찌 전주를 사랑하지 않겠습니다.
강승원(63.본명 강승식) 대한가수협회 전라북도지회장은 하지만 전주에 대해 단 한가지의 불만을 토로한다.
“ 대구에 가면 김광석의 거리가, 광주에 가면 친구인 김정호의 거리가 있어 언제가 생기가 넘쳐납니다. 그런데 왜 전주는 가수의 이름을 딴 거리가 없나요. 10여년 전에 작고한 김명곤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는 거리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인가요. 그는 전주고등학교 출신으로, ‘사랑과 평화’의 메인 멤버로 당시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에 버금가는 뮤지션이었지만 정작 이곳 사람들은 이를 기억하지 못해 안타깝습니가.
1974년 ‘하루이틀사흘’로 가수로 데뷔한 그는 서울출신으로, 박상규의 ‘역마’, 박길라의 ‘나무와 새’, 장은숙의 ‘춤을 추어요’, 변우민의 ‘꽃사슴’ 의 작곡가로 유명하다. 미국 생활 끝무렵, ‘스트레스 악성 종양’ 수술을 받고 지난 2003년 12월 입국한 그가 요양차 택한 전주가 주무대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삭막한’ 곳이지만, ‘인심 좋고 살기 좋은’ 전주에 여생을 ‘올인’하기로 마음을 굳힌 , 문화센터와 구청에서 마련한 주부노래교실에서 가수와 작곡가로 재기를 꿈꾸다가 ‘당신이야기’ 5집 앨범을 내놓기고 했다.
“ ‘전북이여! 영원하라’는 양미경(아내)이 작사하고, 제가 작곡과 노래를 맡은 노래입니다. 또 근래에 발표한 ‘아--전주여’는 양미경, 양필식 작사에, 제가 작곡을 했으며, 노래는 양미경 가수가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을 알리는 노래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는 '나훈아가 1971년에 부른 '추억의 대둔산'을 비롯, 김용만의 '남원의 애수', 송창식의 '선운사' 등 14개 시군의 문화, 관광, 역사, 명소를 주제로한 홍보용 노래들이 수두룩하게 전하고 있지만 잊혀져 가고 있어 활용 대책이 전무해 문제라고 말했다.
“전주에 제2의 인생을 걸었습니다. 지난 시절의 아픔을 모두 묻어버린 채 오늘도 노래가 필요한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든지 달려갑니다. 요즘은 서울 무대에서만 필요로 하는 가수가 아니라 지역에 맞는 가수를 발굴해 키우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옥마을 담장 및 개나리가 피기 전에 나는 가라’는 아--전주여’의 가사처럼 그는 오늘도 꿈을 찾아, 혼을 담아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노래 전도사를 자임하고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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