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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훈옛그림

묵로 이용우

 

 

 

 

 

 

 

 

 

 

 

묵로 이용우 (墨鷺 李用雨 1904~1952)


 묵로 이용우는 서울 출생으로, 초년에는 모범생적인 인상의 춘전(春田)이라는 아호를 사용하였고, 약 1926년 무렵부터는 매우 저항적인 느낌을 주는 묵로(墨鷺)라 하였다.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등과 함께 근대10대 화가(近代十代畵家) 가운데 한사람이다. 그는 1911년에 9세의 나이로 서화미술회 1기생으로 입학하여, 심전 안중식과 소림 조석진으로부터 전통화법을 익혔다.
1918년 서화가들이 첫 미술가 단체로 서화협회를 창설하자 최연소 나이로 정회원이 됐으며, 1920년 정재 오일영과 함께 창덕궁 대조전의 벽화 <봉황도>(그림1)를 함께 그렸다.
 그는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며 선전에 출품하다가 1929년 성전에서 낙선하자 출가하여 5년 가량을 방랑하다 1933년에 귀가 한다. 그는 이시기에 백두산이나 금강산을  답사하며 조국의 산천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화폭에 옮겨 담았다. 그 후로도 꾸준히 선전에 작품을 잇달아 출품하며 특선을 여러 차례 수상을 해다.
1940년 조선미술관주최 10명가 산수풍경화전에 초대되어 이때부터 근대10대화가대열에 든다. 1945년에는 소개령으로 강릉에 칩거하며, 강릉사범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기도 했으며,  1950년 6.25가 발발하자 전주로 피난 왔으며, 이때 벽천 나상목에게 화법을 전수했다.
 1952년 11월 11일 뇌일혈로 전주 고사동 셋방에서 작고했으며, 장지는 전주 교외의 남고산에 있으며 1978년에 묘비를 세웠다.
“어랍소, 어랍쇼, 어랍쇼” 묵로 이용우는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 이 세 마디의 익살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본인의 죽음을 익살로 희화시킨 것이다.
그는 평범한 일상을 거부하고, 야생마와 같은 출렁거림으로 불꽃과 같았던 삶을 살았다. 일정한 곳에 정착해 고여 있기를 체질적으로 거부한 묵로의 자유분방한 일생은 그의 작품에 그대로 반영되어 다면성을 보인다.
작품 소재부터도 전통적인 산수화를 비롯하여 인물, 화조, 기명절지, 동물 등 다양했다. 또한 전통적이고 관념적이던 화법에서 벗어나 화면구성에 새로운 감각을 불어 넣고자 했다. 삼원법(三遠法)의 거부라든가 소재의 해석 방법이나 선택부터도 다분히 재래적인 화풍에서 벗어난 것이다.  하나의 소재를 형상화하는 필력도 매우 우수한 편으로, 특히 그가 지닌 실험의식과 달필이 합치될 때는 주목할만한 명작으로 이어지곤 했다./서보훈 A-옥션 전무이사

 

 


그림1. <봉황도> 180 x 530 cm, 1918, 창덕궁 대조전 벽화
그림2. <죽림칠현>, 종이에 수묵담채, 45 x 133 cm, 개인소장, A-옥션 제공
그림3. <고사인물도 6폭>, 비단에 수묵담채,  51 x 26 cm, 개인소장, A-옥션 제공
그림4. <사계산수>, 종이에 수묵담채, 126 x 28.5 cm, 개인소장, A-옥션 제공
그림5. <동해물과 백두산>, 종이에 수묵담채, 29.5 x 43 cm, 개인소장, A-옥션 제공
그림6. <사계산수 10폭>, 종이에 수묵담채, 126 x 32 cm, 1952, 개인소장, A-옥션 제공
그림7. <기명절지도 10폭>, 비단에 수묵담채, 116 x 32.5 cm, 개인소장, A-옥션 제공
그림8. <화조>, 종이에 수묵담채, 29 x 25.5 cm, 개인소장, A-옥션 제공
그림9. <제비와 버드나무>, 종이에 수묵담채, 129 x 30 cm, 개인소장, A-옥션 제공
그림10. <물총새>, 종이에 수묵담채, 26 x 24 cm, 개인소장, A-옥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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