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군에 가면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전형적인 형태를 온전히 간직한 고택이 하나 있다.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29호로 보정 김정회의 생가(전북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 151)로, 조선 숙종 8년(1682)에 지어졌다고 하며 이 집은 김정회가 고조 때부터 살아온 집이다.
김정회(1903-1970)는 호를 보정(普亭), 연연당(淵淵堂)이라 하였고, 본관은 안동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종조인 항재(恒齋) 순묵의 문화에서 글을 배우고, 전남 장성의 유학자인 송사 기우만(松沙 奇宇萬, 1846-1916)에게 한학을 배웠다.
우리나라 근대 고등교육기관의 하나인 성균관대학교 전신인 명륜전문학원에서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에게 글씨와 서화 등을 연마한 가운데 시서화 3절을 이루었다. 그의 저서로는 연연당문고가 10권 전하고 있으며 많은 서화작품과 금석문이 전하고 있다.
1958년부터 1967년 까지 꾸준히 개인전을 가졌으며, 그는 작품 활동 외에 후진 양성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어 1931년에는 중죽 유학에서 대륙적인 필력과 호방한 서화를 배우고 돌아와 명성을 떨치며 왕실에 출입하였고 영친왕에게 서화를 가르치기도 하였으며, 이때 해강서화연구회를 설립하여 3년간 운영했다.
1934년 고향에 돌아와 고향집인 만수당에서 도산보통학교를 설립하고 학교 육성에 진력했으며, 1941년에는 성균관 경학원 강사에서 선임되어 강의를 하며 인재 육성 사업에 헌신했다.
그는 여러 차례 정부의 부름을 받았으나 모두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으며, 자기의 심정을 붓으로 달래면서 1938년 이본문전에서 출품해 특선을 수상하고, 1956년 1957년 국전에서 입선을 하면서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김정회는 상류 사회 출신이지만 많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었으며 덕행으로 많은 주위 사람들을 계도한 가운데. 특히 일반적으로 매화, 난초, 국화를 즐겨 그렸으며 특히 대나무 그림이 아주 유명하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외형에 치우치지 않고 내면의 마음 상태가 붓끝을 통하여 밖으로 나와 있을 때 진정한 예술의 경지에 이른다고 생각했다. /서보훈 A-옥션 전무이사
그림1. <난죽석도 10폭>, 종이에 수묵, 125.5 x 33 cm, 개인소장, A-옥션 제공
그림2. <묵죽도 8폭>, 종이에 수묵, 126 x 31 cm, 개인소장, A-옥션 제공
그림3. <난죽도 10폭>, 종이에 수묵, 107 x 33.5 cm, 개인소장, A-옥션 제공
그림4. <행서 8폭>, 종이에 먹, 108 x 33 cm, 개인소장, A-옥션 제공
그림5. <풍월도(風月徒)>, 종이에 먹, 32 x 114 cm, 개인소장, A-옥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