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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다리

한국의 다리

우리나라에서 거짓말을 하는 경우, 흔히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말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이를 ‘나무 가랑이에서 주워 왔다’고 하며, 그런가 하면 미국 사람들은 ‘황새가 물어다 주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양배추 속에서 나왔다’고 각각 말합니다.

서양에서는 양배추 속을 다 까보고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고 운 아동들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넌 다리 밑에서 주워 왔으니까 말을 다시 듣지 않으면 다시 다리 밑으로 보낼꺼야” 라는 말에 ‘진짜 내 엄마는 어디에 있지”, “내 진짜 엄마를 찾아줘”라고 한 아이들이 어디 저뿐에 그치겠습니까.

그제서야 그 엄마는 깜짝 놀라서 “내가 너의 진짜 엄마다. 내가 너를 낳았으니라까”라며 말을 정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엄마가 거짓말을 했다는 생각을 평생 지우기 어려울 것이며, 정말 다리가 원수로 다가서는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라는 말의 유래로 널리 전승되고 있는 설화가 경북 영주시 순흥면 청다리 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현진건의 ‘무영탑’은 불국사의 청운교, 연화교 등 다리가 나오며, 경북 남해군 남면 석교(石橋)마을은 서포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을 생각나게 만듭니다.

박경리의 소설 ‘파시’는 부산 영도대교가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며, 최명희의 ‘혼불’은 전북의 다리가 여러 군데 등장합니다. 삼의당(三宜堂) 김씨의 '완산 남천교를 지나며(過完山南川橋)'는 전주 남천교의 모습이 소개됩니다.

10년 여 동안 한국의 다리를 답사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의 흔적이 미륵사지에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미륵사지 강당지와 북승방지를 오가던 곳으로, 아랫 부분은 석조(石造)이고, 윗부분은 목재로 된 널다리 형식으로 보입니다.

또, 경내에 자리한 통도사 항룡교는 천하지 못한 용 이야이가 전하고 있음을 금산사 경내에 자리한 ‘만인교(萬人橋)’가 1920년에 세워진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최남선이 발간한 ‘심춘순례’에도 ‘만인교’가 당시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지금까지 건립 연도가 정확히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불가에서는 ‘물 없는 곳에 샘을 파서 물을 공급해 주는 복’, ‘강에 다리를 놓아 쉽게 건너갈 수 있게 하는 복’, ‘험한 길을 닦아 사람들이 잘 다니도록 하는 복’, ‘부모에게 효도하고 잘 봉양하는 복’, ‘병든 이를 돌보아 주는 복(간병복)’, ‘가난한 이를 도와주는 복(구제궁빈복)’, ‘불법승 삼보를 공경하고 공양하는 복’, ‘사람들에게 법문을 알려주는 복’ 등 팔복전(八福田)을 가꿀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유위복(有爲福)’, 즉, ‘함이 있는 복. 셈이 있는 복. 회계가 가능한 복’이라고 하는데, 최남선의 눈에 상당히 거슬렸던 모양입니다.

300여 년된 대각교(정읍 태인)의 상판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바위가 근처의 가든에 서 정원석으로 쓰고 있음도 보였습니다. 당초 대각교가 있었던 곳은 현재 태인면 거산리 거산교(居山橋)에서 태인천 하류 쪽으로 약 200m 지점에 해당되며, 이 가든 앞에는 2번째 만들어진 대각교(1933년), 거산교(1986년), 그리고 최근에 만들어진 대각교(2005년) 등 3개의 다리가 나란히 남아 있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1928년부터 1933년까지 만들어진 ‘새창이다리(새챙이다리, 구 만경대교, 군산시 대야면 복교리에서 청하면 동지산리)'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시멘트 콘크리트 다리(원형 손실 크게 안됨)로 확인됐습니다.

또, 전북 완주군 소양면 황운리 소양초등학교 옆에 ‘국회의원유범수건교기공비’도 발견됐습니다. 이 비의 건립 연대는 1969년 가을로, 당시 완주군 국회의원 유범수씨가 명덕리다리를 놓는데 공적이 있다고 해서 지역 주민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완주군수 시절부터 주민들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다리를 여러 개 놓은 까닭에 이른 바 ‘다리 군수’로 통하는 인물로, 임실군에도 또 다른 건교기공비가 하나 더 있습니다.

요즘은 인천대교, 서해대교, 광안대교 등 멋진 다리들이 많이 놓아지면서 한국의 건축이 세계 최고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벌교 홍교 위에서 떨어졌지만 다치지 않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안전한가요. 혹여, 다리가 사람과 사랑을 연결하는 것이 아닌, 강남과 강북의 경계를 구분하는 등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나요.

하지만 무섬 외나다리, 진천 농다리, 부산 영도대교, 김제 새창이다리, 예산 삽교 섶다리 등 다리를 중심으로 한 축제와 행사를 통해 추억을 다시금 상기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빗소리 들리면 떠오르는 모습/ 달처럼 탐스런 하얀 얼굴/ 우연히 만났다 말없이 가버린 긴 머리 소녀야/ 눈 먼 아이처럼 귀 먼 아이처럼/ 조심 조심 징검다리 건너던/ 개울 건너 작은 집의 긴 머리 소녀야/ 눈감고 두 손 모아 널 위해 기도하리라’

 

 왜 젊은 날에는 이처럼 아름다운 노랫말이 들리지 않았는지, 지난날의 눈부시도록 하얀 사랑 앞에 감사하고 미안할 따름입니다.

지금, 청아한 소리로 공명되고 있는 시냇물 저 만치, 징검다리 사이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징검다리는 위태위태하고 아슬아슬 걸을 때 사람이 더 성숙해지고 아름다워질 수 있지 않나요.

과거의 징검다리는 물 속에서 놀다가 지치거나 추워지면 그 위에 나란히 걸터 앉아, 수박 서리를 모의하기도 했으며, 또 도깨비와 만나는 장소 등 짜릿한 추억이 깃들었습니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발길에 단련된 징검다리는 검게 빛났으며 햇볕을 온 몸으로 받아 무척 따뜻하지 않았나요.

하지만 지금의 징검다리는 낭만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있다니 상전벽해인가요, 벽해상전인가요.

요즘의 하천은 그 자체로 훌륭한 생태공간인 동시에 수질정화장치를 설치한 징검다리를 비롯, '물고기들의 어소'인 고기가 하면 하천의 수량 변화에 대응, 돌출되는 징검다리의 개수를 조정할 수 있는 자동 블록도 있습니다. 징검다리를 건너 ‘디딤돌’ 같은 배려가 어우러지면서 생생이 꽃피우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끈과 끈을 서로 이어주던 징검다리가 한 없이 그리울 때는 전북 임실 김용택시인의 고향 진뫼마을을 자주 찾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창변이 올 때면, 징검다리, 무지개다리, 섶다리 등을 건너면서 잊어버린, 아니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