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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다리

금산사 해탈교

 

 

견훤석성의 무지개다리는 사라지고...

 금산사로 발길을 돌리면, 세상살이에서 얻은 부와 지식, 그리고 크고 작은 가슴앓이까지도 모두 훨훨 벗어던지고 비우라고 종용합니다. 이어 해질 무렵, 발길을 돌려 심포항 언덕 망해사에서 떨어지는 낙조를 보는 쏠쏠한 즐거움에서는. 망해사의 불빛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면 시나브로 소슬한 밤은 이내 절정에 이릅니다.
 금산사는 금산교를 비롯, 만인교, 해탈교, 금강교, 그리고 꼭꼭 숨어 있는 극락교(불이문 뒤에 자리하고 있어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와, 또 이름이 붙어지지 않은 다리가 숱하게 많습니다. 그러나 아주 오래된 견훤석성의 홍예(무지개다리)가 사라져 참으로 아쉬움이 많습니다.
 청산은 발밑에 들판을 키우고 들판은 가슴속에서 산을 그리워한다고 했나요. 평야는 산(山)의 품 안에서 자랍니다.  모악산은 바로 그 호남평야의 어머니 산으로, 평평한 들판에 갑자기 둥글고 밋밋하게 솟은 저 아래 모두 ‘금(金)’자로 시작되는 고을을 품고 있습니다.  금평(金坪), 금산(金山), 금구(金溝), 김제(金堤)…. 
 예로부터 이곳은 금이 많이 나오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모악산 아래에 사람과 똑같은 모양의 금덩이가 묻혀 있는데 머리와 팔다리 부분은 해방 이전에 일본인들이 다 캐 가고 이제는 몸통 부분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금은 물을 낳습니다(金生水). 또, 그 물은 생명을 키웁니다. 만경강과 동진강이 바로 그 젖줄입니다. 생명을 키워내는 엄뫼, 모악산은 풍수학자들에 따르면 떠나가는 배, 곧 행주형(行舟形)의 연꽃배입니다. 나아가는 방향 역시 불교의 서방정토를 뜻하듯 서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배를 둘러싸고 함께 흘러가는 봉우리들도 하나같이 연꽃잎 형상입니다. 중생을 반야선(般若船)에 싣고 서방정토로 향해 가는 모습이랄까요.
  견훤의 유폐지로도 유명했던 금산사의 경우, 그 입구에 지금은 사라져 버린 성문의 모습이 그림에는 그대로 그려져 있는데,  이를 견훤석성으로 부릅니다.
 홍교를 지나 금산사의 대적광전으로 이어지는 길에 있는 금강문과 보제루의 형식도 지금과는 달랐던 것으로 보여지며, 방등 계단 역시 둥근 원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견훤석성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지금은 개화문이 들어서 있습니다.
 견훤석성은 금산리 금산사 성으로 부르며 삼국시대에 절 입구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1920년대 말까지만 해도 아치형의 석조물인 성문 주변에 남북 방향으로 성벽이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성문만이 남아 있습니다.  성문의 북쪽으로는 개천이 흐르고 있고 개천을 건너 편평한 평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 일대에 축대를 쌓으면서 많은 양의 흙이 복토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어 만인교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랜 시간 연구한 결과, 금산사 경내에 자리한 ‘만인교(萬人橋)’가 1920년에 세워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취재 결과, ‘국가지정문화재 지정보고서(문화재청 발간, 2008년)’에 따르면 1920년 ‘만인교(萬人橋)’를 세우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금산사조교기념비(金山寺造橋紀念碑)’가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사진 촬영을 한 결과, 비가 너무 낡아 한자로 쓰인 ‘만인교’란 글자 외엔 판독이 거의 불가능해 탁본(탑본) 등을 통해 시주자들의 이름을 알아내고, 왜 이 곳에 비를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해보입니다. 다만, 안필성이 만인교를 건립할 때 희사금을 많이 냈다는, 일부 자료만 확인됩니다.

 ‘가로질러 가는 시내 위에 변변치 않는 다리를 놓고, 이름만 작은 글씨로 만인교라 하여 기적비를 세웠다. 아무리 보아도 비에 든 비용이 다리에 보다 몇 배였을 듯한 것을 보면, 목적이 다리에 있는 것이 아닌, 실상 비에 있음이 너무도 현저히 드러나 참 한심한 생각이 났다. 중들 이름 위에 직책을 쓰는데, 대본산 모, 연합장 모라고 한 점에 가뜩이나 아픈 허리가 거의 뿌러질 뻔하니 이 짓한 그네들도 어질지 못한 사람이다’
 
 최남선이 발간한 ‘심춘순례’에도 ‘만인교’가 당시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지금까지 건립 연도가 정확히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불가에서는 ‘물 없는 곳에 샘을 파서 물을 공급해 주는 복’, ‘강에 다리를 놓아 쉽게 건너갈 수 있게 하는 복’, ‘험한 길을 닦아 사람들이 잘 다니도록 하는 복’, ‘부모에게 효도하고 잘 봉양하는 복’, ‘병든 이를 돌보아 주는 복(간병복)’, ‘가난한 이를 도와주는 복(구제궁빈복)’, ‘불법승 삼보를 공경하고 공양하는 복’, ‘사람들에게 법문을 알려주는 복’ 등 팔복전(八福田)을 가꿀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유위복(有爲福)’, 즉, ‘함이 있는 복. 셈이 있는 복. 회계가 가능한 복’이라고 하는데, 최남선의 눈에 상당히 거슬린 모양입니다. 만인교 옆에는 ‘태운 김형렬 선생 등 88애국지사 충혼비’가 서 있습니다.
 이어 해탈교를 만납니다. 해탈문 대신 아치형 해탈교가 놓여 있는 것은 산자락의 계곡이 자연스럽게 해자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또한 사찰을 찾는 사람들에게 성속과 세속의 경계를 지으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무거운 마음일랑 말없이 흐르는 계곡물에 씻어 흘러보내고 청정심으로 가람에 들어서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윽고  ‘똑똑똑’ 목탁 소리가 들려옵니다. 구중심처 금산사에서 주인의 참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얀 고무신도 목탁 소리에 맞춰 두 손 모아 기원을 합니다.
 오늘 하루 만큼은 ‘검정색이다 하얀색이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옳다 그르다’ 등에 구애받고 싶지 않습니다. 단, 하루만이라도, 자연성에 맡기며 살고 싶습니다. 무소유가 또다른 소유의 집착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내비둬요', '나 내비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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